2023년 4월 9일 일요일

남을 대접하라

 

남을 대접하라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산상수훈에서 두 가지 강령을 줍니다.

첫번 째는, (6:32)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리고 
두 번째는 황금률로 알려진 본문의 말씀입니다.
첫번째는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에 대하여 
두 번째는 사람과의 수평적인 관계에 대하여 가르치십니다.

황금률
이 말씀은 성경에서 황금률로 
알려졌습니다

남을 대접하는 사랑의 실천을 베푸시는 주님의 자녀로 축복받으시기를 간구합니다.
본문의 말씀 바로 전에 구하라 
찿으듣 두드리면  리의 필요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받은 충족한 은혜를 남에게도 대접하며 나누어 주라고 가르치십니다.

아브라함:
- 사람의 모습을 하고 온 하나님을 대접
-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을 대접
-
롯을 대접: (13:9-10)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어떤 대접을 받으시기를 바라십니까?
대부분은
덜 주고 더 받기를 원합니다. 덜 주고 더 받기를 원해 갈등이 있고 고통이 있습니다.
그런 저희에게 주님은 빛과 소금의 자녀로서 올바른 삶의 지침을 주십니다.
내가 누군가에 대접을 
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라고 하십니다. 본질적인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남을 대접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애를 쓰지만 잘되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주님의 사랑을 잘 실천하여 잘 대접하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혹은 인색해서 대접하지 못하는 이도 있습니다. 주님은 저희가 남에게 잘 베풀며 대접하는 풍요로운 주님의 마음을 가진 자가 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A.        대접하는 모습

1. 겸손
남을 대접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권리와 주장을 앞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먼저 겸손하게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성에 왕으로 입성하실 때에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주님은 무척이나 겸손하신 분입니다. 주님의 자녀는 겸손해야 합니다.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복 받기를 바라는 저희에게 주님이 보시는 복의 개념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겸손한 자입니다. 교만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모습을 보면 바리새인은 자신이 세리와 같이 죄를 범하지 않아서 감사하다고 하며 기도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죄를 아는 세리는 가슴을 치며 하나님 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저는 죄인이로소이다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바랍니다 (18:13). 바리새인에게서 우리는 그의 겸손함을 볼 수 없습니다. 아마도 바리새인은 가려가며 사람을 대접하였을 거라 짐작을 합니다.

교만한 모습으로 남에게 대접을 하는 것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거만하고 목이 뻣뻣하며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는 대접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겸손하며 진실된 마음으로 남을 대접하세요. 대접을 받는 이도 느낍니다.  


2. 대가를 바라지 말라

대부분 우리는 이해 타산적으로 사람과의 관계를 맺습니다. 저 사람에게 이렇게 하면 나에게 이만큼 베풀지 않을까. 10을 주면 10 아니 그 이상을 받기를 바랍니다. 10을 주었는데 8 이나 9 돌아오면 마음은 찜찜합니다. 저 사람은 받기만 하는 사람 같으니 될 수 있으면 멀리해야지하며 관계 맺기를 꺼립니다.

주님은 그런 저를 잘 아시기에 
베풀 때에 너에게 베풀 능력이 없는 자에게 대접하라고 하십니다.
(
14:13-14)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사람을 대접할 때에 계산적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유익을 바라고 대접하지 마세요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시게 하고헐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곤고하여 병들은 자와 같이 지극히 작은 자를 돌보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십니다. 가난하고 곤고한 자들은 내가 대접을 해도 갚을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 가난하고 곤고한 자들을 주님의 마음을 갖고 긍휼을 베푸십시다.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나 잘났다고 판단하지 마세요. 힘들고 
곤고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


소외된 자를 돌보지 않고 자신만을 살피게 되면 염소가 되어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될 수도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25: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대접을 하지 않아 망한 경우가 있습니다 .

(25:11)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38) 한 열흘 후에 여호아께서 나발를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

다윗이 자기와 함께 하는 자들을 위하여 양이 삼천 마리와 염소가 천마리를 갖고 있는 부유한 나발에게 양식을 나발에게 양식을 구하자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자기 것을 다윗과 함께 한 이들에게 끼니를 때울 수 있도록 양식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부유함이 있는데도 나발은 매물차게 자기 것을 주지 않았습니다. 나발의 이름 뜻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나발은 자신의 이름에 맞게 어리석고 강팍한 행동을 함으로 다윗은 분노하였고 또한 하나님은 나발을 기뻐하지 않으셔서 결국은 죽게 됩니다.

 

B.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주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의 가르침이 무효화 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오심으로 지키기 어려웠던 율법과 선지자의 가르침이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를 한마디로 정리해 주시며 남을 대접하는 것이 곧 율법이요 선지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또한, 우리 인간끼리의 상호관계에 대하여도 가르치십니다. 율법에 이른대로 올바른 인간관계는 남을 잘 대접하는 것을 순종함이 근간이 됩니다.


내가 남들로부터 대접을 잘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남을 잘 대접해야 합니다.
- 온전히 순종하여 남을 잘 대접하게 되면 그곳에는 
더는 전쟁이 없으며, 종과 노예의 관계가 없으며, 갑과 을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으며, 남보다 나아 보이는 교만이 없어지며, 남의 것이 좀 더 좋아 보여 도적질하는 것도 사라집니다. 오직 남을 잘 대접하는 곳에는 놀라운 공의과 사랑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곧 율법이요 선지자입니다.
- 아마도 우리가 천국에 가면 가장 먼저 체험하게 될 것이 전혀 몰랐던 저를 배려하고 
진실한 모습으로 대접하는 사랑을 느끼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세요.

(2:15-17)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베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말로만 베풀지 마세요.

주님의 사랑은 실질적인 체험의 사랑입니다.

이웃이 힘들고 어려우면 말로만 위로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필요한 사랑의 대접을 베푸세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사랑하라 하십니다.
어떻게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습니까?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사랑을 베풀라 하십니다.
남을 대접함으로 우리의 이웃사랑을 실천합니다.

(22:37-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이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주님은 두 가지 계명을 주시며 이 두 계명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하십니다.
곧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웃 사랑의 완성은 남을 잘 대접하는 것이 곧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입니다.

받기를 원해서 하는 대접이 아니라 상대방을 존중하고 이해하며 주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대접을 베푸세요.

서로 서로 위하는 믿음의 공동체가 세워지며 천국을 경험하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귀한 대접을 받으셨읍니까?

한가지 잊지 말아야 것이 있습니다. 곧 대접의 은혜를 베푼 이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베풀 수 있도록 축복을 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남에게 대접을 한 이에게 하나님은 보답을 하십니다.

(4:18-19)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재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요

남을 대접할 때에 무엇이 돌아오기를 원해서 대접하지 마세요.
주님의 자녀라면 남에게 선의를 베풀때 대가를 바라지 마세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

남을 잘 대접하는 것이 율법이요 선지가의 완성이라 말씀하십니다.

남을 대접하며 무엇인가를 대가로 받기 원하는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저희의 마음이 고쳐지기를 원합니다.

제 안에 내주하신 성령님

저의 세상에 속한 성정이 변화를 받아 주님의 마음으로 이웃 사랑을 베풀기를 간구하오니 저를 도와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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