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4일 일요일

가인에게 은혜가 주어졌지만

(4:11-16)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땅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땅에 거주하더니



가인은 하나님으로부터 형벌을 받아 땅이 저주를 받아 유리하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살인한 가인에게 사람들이 가인을 죽이지 못하도록 표를 주시며 은혜를 베푸십니다.

(11-12)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하나님께 죄를 범한 인생은 그 책임이 주어집니다. 자신이 심은 대로 거둡니다.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가인에게 내려진 형벌은 땅이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가인의 직업은 농부입니다. 농부는 땅을 갈고 가꾸어 수확합니다. 농부는 땅이 비옥해야 열심히 일한 대가를 수확할 수 있습니다. 만일 땅이 황무하다면 열심히 일해도 기대한 만큼의 수확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땅이 저주를 받아 황폐해지고 딱딱하게 굳어 있다면 무척이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땅을 의지하고 살았던 가인은 이제 땅을 의지할 수 없으며 하늘을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3:16-17) 파멸과 고생이 그 길이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주가 임한 삶에는 파멸과 고생이 임하여 곤고함이 있습니다.


(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하나님은 가인이 그의 동생 아벨을 죽인 죄에 대해서 심판하십니다. 우리의 죄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죄를 심판하여 체벌을 가하시지만, 가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가인은 그의 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하며 불평합니다

자신의 저지른 죄에 대해선 회개치 않고 단지 형벌이 중한 것에 대해서만 불평하고 있습니다.

가인은 끝까지 그의 죄를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십니다.
(요일1:8-10)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죄가 문제가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죄보다 회개하지 않는 마음을 문제 삼으십니다.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가인은 어떻게 하면 죄를 짖지 않고 살 수 있는지를 하나님께 말하지 않고 쫓겨난 후에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 것을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쫓아내시는지 그 원인을 심각하게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가인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가인의 대화를 통해 아담의 후손이 에덴동산에서 나왔지만 여전히 하나님과 대화를 하며 교제했던 것을 알게 됩니다.  

가인은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가는 것이 마치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쫓아내지 않으면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가인을 통하여 인간은 타인에게 죄의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인은 자신의 저지른 죄에 대해선 생각지 않고범죄한 결과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나갔다는 사실에만 주목합니다.


근심과 불안
가인은 자신이 아벨을 쳐서 죽였듯이 다른 이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까 근심하며 불안해합니다.

(1:4-6)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저희는 죄로 관영한 세상에 속한 여러가지 일로 인하여 불안해하고 근심합니다. 그런 저희에게 주님은 위로하십니다.  

(6:34)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하나님은 가인에게 자비와 은혜를 베푸사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사람으로부터 죽임을 면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심판하시는 중에도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은혜를 보여 주시며 가인이 죄를 획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렇지만 가인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데 깨닫지 못하고 돌아오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49: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도다

(16)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땅에 거주하더니

여호와의 앞을 떠나서
가인은 잘못된 예배를 드렸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가인은 여호와 앞을 떠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며 하나님과 교제했던 기억이 점차로 희미해집니다.

점차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삶이 정상적인 삶이라 생각합니다. 죄에 대하여 습성이 들어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게 됩니다.

여호와 앞을 떠남은 여호와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 행복하지만, 하나님을 떠나면 불행해집니다.

죄악의 삶을 살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손을 꼭 붙드세요.  

-          교회를 떠나지 마세요. 교회로 돌아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세요. 그래야 다시 살아날 기회가 있습니다.

-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곤고함과 고통으로 원치 않는 삶을 살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멀리하지 마세요.

-          말씀을 읽으세요. 말씀은 죄가 죄임을 깨닫도록 인도하십니다.

-          행한 것이 죄로 생각이 들면 회개하세요. 은혜의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십니다.

여호와 앞에 나가게 되면 죄를 끊지 못했던 삶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회복시키십니다.

가인은 여호와 앞을 떠나 더 멀리 동쪽 놋땅으로 이주합니다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여호와의 앞을 떠납니다.
여호와의 앞을 떠났다는 의미는 자신의 힘으로 이 땅을 살아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가인은 땅의 저주를 받은 채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떠돌며 삽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방황하는 시간을 주었지만, 가인에게는 죄를 회개할 기회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도 기회를 주고 기다리십니다.

-  다윗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자 우리아를 죽였습니다. 선지자 나단이 이에 대하여 지적하자 다윗은 지체없이 회개했습니다.

  회심하기 전 바울은 믿는 사람을 핍박하였지만 그가 회개하자 하나님은 존귀하게 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도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며, 그를 어떻게 쓰실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 방황. 주님을 떠난 인생은 방황 가운데서 삽니다.
그곳에서 가인은 자손을 낳습니다. 죄를 지어 여호와 앞을 떠난 가인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후손에게 축복하십니다.

가인의 후손은 문명을 발달시킵니다.
아발: 가축을 치는 자. 식품업
유발: 수금과 퉁소. 음악과 예술
두발가인: 구리와 쇠로 기구를 만듦. Industry

여호와 앞을 떠난 가인의 후손에게 두가지 현저한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분명히 주지해야 것은 가인에게 임한 죄의 저주는 계속해서 여호와 앞을 떠난 이들에게 이어져 갑니다.
(4: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라멕은 가인의 5대 후손입니다. 세대를 내려가며 죄의 강도는 점점 더해져 7배에서 77배로 불어나며 지금은 그 이상으로 커져 죄로 관영한 세대가 되었습니다. 어디에서나 죄는 갖가지 모양으로 깊숙이 뿌리박고 있어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행사합니다.

둘째, 특이한 점이 있는데 가인의 후손은 내려오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를 떠난 이들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아벨을 이어받은 셋의 후손에 의하여 불려집니다.
(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말씀을 마칩니다.
가인은 여호와 앞을 떠났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을 떠나서 간 곳이 놋이라는 땅입니다. 이름의 뜻과 같이 방황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인생은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없어 방황하게 됩니다.

혹 여호와 앞을 떠나셨습니까. 방황하고 계십니까!

여호와 앞으로 돌아가세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기다리고 계십니다.
(15:13-14)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서 궁핍한지라
아버지로부터 멀리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어 둘째 아들은 미리 챙긴 아버지의 유업으로 허랑방탕한 삶을 즐깁니다
허랑방탕하게 인생을 즐기는 것은 육신의 탐욕에 이끌리어 죄악에 묶여 있는 삶입니다. 결국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먹을 것 잘 곳이 없어 곤궁해져서 죽을 지경이 되자 비로서 아버지의 품이 생각납니다. 염치없지만 종이라도 되겠다고 결단하고 아버지 앞으로 돌아갑니다. 놀라운 일은 아버지는 방탕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다시 돌아온 아들을 꼭 껴안고 반지를 끼우고 옷을 입히고 잔치를 차려주고 종이 아니라 자식으로 신분을 회복시키십니다.


방황하는 삶에는 만족함과 기쁨이 없습니다.
곤궁하게 살 때에는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 했지만, 막상 주어지자 더 좋은 집을 가진 자를 부러워하며 더 크고 좋아 보이는 집을 차지하려 합니다.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가지려 합니다. 원하는 것을 차지했지만 얼마못가 더 좋아 보이는 것을 가지려 하며 끝이 없습니다.
본능을 자극하는 세상의 쾌락을 쫓아갑니다. 하지만 세상에 속한 것들을 좋아하여 취하려 쫓아가다 보면 결국 허무함만이 남게 됩니다결국 모든 좋은 것을 잃어버리고 인생의 흉년이 들어 곤핍하게 되어 공허와 외로움과 곤고함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여호와 앞으로부터 떠나셨습니까?

여호와로부터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생명이요 길이요 진리이신 주님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결단하고 여호와 앞으로 나아가세요.
죄로부터 자유로운 구별된 삶을 사세요.

여호와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저희는 여전히 죄에 노출되어 있고 죄를 짓고 또한 그 죄의 모습이 좋아보여 죄를 짓기도 합니다두 마음이 있습니다. 죄를 거부하고 멀리하려는 마음이 있지만 또한 죄를 즐기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 저희를 도와주옵소서저희를 끌어 내리려는 죄로부터 자유롭고 구별된 삶을 살도록 저희를 인도하옵소서죄의 책임을 다른 이에게 전가하지 않게 하옵소서.

저지른 죄는 전적인 저의 책임이여 또한 그에 대한 잘못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행하시는 공의의 하나님 이심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는 저희를 참으로 사랑하시는 긍휼과 자비와 인애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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