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3:1-11)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성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야곱은 20년의 하란에서의 삶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에서가 사백 명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심히 두려워하는 야곱은 (창32:7) 모든 가족을 보내고 자신은 홀로 남아 밤새도록 살려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야곱의 끈질긴 간청을 기뻐하신 하나님은 ‘발뒤꿈치를 잡았다’는 뜻을 가진 야곱의 이름을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의 뜻을 가진 ‘이스라엘’로 부르십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대면하였지만, 생명이 보존되었다고 이곳을 ‘브니엘’로 부릅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만난 후에 변합니다. 야곱은 다시는 에서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반갑고 고마운 형제로 대합니다.
저희 역시 주님을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면 전적인 변화를 겪습니다. 은혜 받은 후에 보는 자연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이며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가 마치 나에게 경이로운 하나님에 대하여 말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주님을 체험적으로 만난 사람은 전적인 변화가 임하게 됩니다.
- 강퍅한 이가 온유한 자로
- 교만한 자가 겸손한 자로
- 자신만 생각하던 자가 다른 이의 입장을 배려하는 자로
- 거친 말을 하는 자가 정화된 말을 하는 자로
- 얼굴에서 광채가 납니다. 그의 얼굴을 보면 왠지 따뜻하며 평강이 전해집니다.
- 죄악된 생각을 하면 이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지만, 주님을 만난 후로는 아 이 생각은 잘못된 죄의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아 그 죄악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합니다.
주님을 만난 자는 많은 곳에서 변합니다.
아직 세상에 속한 세속적인 성정이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변하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주님을 체험적으로 만났을까 생각해 보세요.
야곱으로부터 달라진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겠습니다.
(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야곱은 형 에서를 보자 모두가 보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나아가 몸을 땅에 일곱 번 굽히며 절합니다. 가식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자신의 진실을 나타냅니다. 야곱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진심으로 겸손한 모습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이를 본 에서의 괘씸했던 마음은 눈 녹듯 스러지며 야곱을 용서합니다. 서로 용서한 후에 서로 맞이하여 안고 서로 웁니다. 그동안 쌓여왔던 울분과 죄스러움의 쓴 뿌리가 없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형제애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죄를 범한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 그의 심경이 진실한 성정으로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만나게 되면 우선 진실하며 겸손한 모습으로 변합니다. 삶의 가치관 또한 변합니다.
혹 사람과의 관계로 말미암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성경에서 일러주신 대로 이웃에게 가서 겸손하게 용서를 구하세요.
(잠6:3)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달라진 야곱의 말
(5)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 이다
에서가 야곱에게 가족에 대하여 물어보자 야곱은 우선 자신을 ‘주의 종’이라고 표현합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주’라고 표현합니다.
야곱이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이어받은 장자 권의 축복의 내용입니다.
(창27:28-29)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여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야곱이 그토록 받기를 원하는 장자권의 축복입니다. 기업의 축복과 또한 형제를 포함하여 만민의 주가 되리라는 축복입니다. 형제들과 만민의 주가 되기를 원했던 야곱이 에서를 보며 나의 ‘주’라 고백합니다. 놀라운 변화입니다. 겸손한 모습을 보입니다.
주님을 만난 자의 특징은 교만하지 않고 겸손해진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안하무인처럼 교만했던 자가 주님을 만나게 되면 겸손해집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겸손함일 것입니다.
(눅14: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8)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형 에서를 인정합니다. 이전에는 형 에서를 시기하였습니다. 형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장자권을 가진 자로 부러워했습니다. 형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경쟁상대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 변화된 야곱은 형 에서를 형으로서 인정합니다.
(10)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내 주위의 사람을 보면 하나님의 얼굴처럼 보이십니까?
원수같은 이를 쳐다보면 그로부터 하나님의 얼굴이 보이십니까?
변화된 야곱은 에서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봅니다. 인자하고 사랑이 많은 하나님의 얼굴을 에서의 얼굴을 통하여 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만난 야곱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하여 있어 사랑의 눈으로 상대방을 쳐다봅니다.
저희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영적이 눈이 띄여야 제 주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11)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진실된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는 야곱을 보며 굳었던 에서의 마음이 풀려서 형제의 사랑을 회복합니다.
에서는 야곱이 준비해 온 예물을 받음으로 야곱을 용서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미움의 대상이 아닌 야곱이 아니라 이제는 사랑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이스라엘로서의 형제의 사랑이 회복됩니다.
영과 육의 축복
야곱이 받은 장자권의 언약의 축복은 영의 축복이며 미래의 축복입니다.
비록 에서는장자권의 언약의 축복을 이어받지는 못했지만 육신적이며 일시적인 축복은 받았습니다. 야곱이 아버지 이삭의 집을 떠나 20년을 타지에서 보내는 동안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에서는 이삭의 모든 것을 물려받았습니다. 이삭은 많은 것을 가진 거부였습니다.
영과 육의 축복 가운데 어떤 축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육의 축복은 일시적입니다. 에서가 누린 축복입니다.
하지만 영의 축복은 영원합니다. 야곱이 누린 축복이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뜻을 찾아가는 야곱과 함께하시겠다고 언약의 증표로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혼육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주님과의 체험적인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말을 하고 행동을 하며 주님의 뜻을 따라갑니다.
하나님은 저희에게 평강과 희망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야곱이 주님을 만나 전적으로 변화된 삶을 살며 미래의 소망을 가진 것과 같이 저희 역시 주님의 만남을 통하여 앞으로 다가올 날들과 희망과 영생의 축복으로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변합니다. 이제는 에서가 두려움이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며 땅에 일곱 번 절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그토록 주가 되고 싶었던 야곱은 에서를 주라 부릅니다.
에서의 얼굴을 보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다고 합니다.
이를 보는 에서의 굳었던 마음은 풀어지고 형제의 사랑이 회복됩니다.
야곱이 주님을 만나 이스라엘로 변화를 받은 것처럼 저희 역시 주님을 만나 변화된 성정을 갖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저희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의 평강과 영원한 생명의 소망과 사랑의 풍성함으로 가득하기를 간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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