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6:7)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오늘의 본문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약속하시는 장면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약속하신 성령을 주셨다.
(요20:22) 숨을 내쉬면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주님께서는 성령을 받으라고 요구하신다.
성령께서 내 마음에 계시는가?
우리의 삶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일 것이다
주님께서 성령을 받아라 말씀하신 자들은 주님을 따르던 자들이었다.
주님을 나도 따른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나는 과연 성령을 받았는가?
믿는 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성령을 받는 것인가?
반드시 그렇지만 않음을 성경은 지적하신다.
오순절날 120명의 성도가 모인 가운데 성령이 바람처럼 불처럼 임하셨다.
오순절 다락방에 모인 자들은 주님의 제자들을 비롯하여 주님을 따르던 자들이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아직 성령을 받지 않았다.
즉 주님을 믿었지만 성령을 받지 못하였다.
그렇다가 주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오순절날 성령이 임함으로 성령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교회에 나오는 모든 자들이 성령을 받았는가?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모든 자들은 과연 성령을 받았을까?
반드시 그렇지 않다.
내 자신에게 물어보자.
나는 과연 성령을 받았을까?
성령을 받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행2:28) 너희가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을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진정한 회개이다.
나의 마음을 찢는 진정한 회개인 것이다.
만일 나의 마음을 찢는 진정한 회개가 없었다면 성령을 선물로 받지 못할 수도 있다.
피상적으로 하는 회개에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이 거듭나야 한다고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고.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게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주님께서 “진실로 진실로”로 시작하시면서 이 말씀을 주셨다.
다시말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의 중요함을 우리에게 강조하신 것이다.
나는 과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을까?
나의 영은 새로이 태어 났는가?
나는 옛사람의 성품을 벗고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났는가?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스스로 느낀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바람이 불 때 내 몸은 피부로 바람이 부는 것을 느낀다. 바람을 내 눈으로는 보지 못하지만 바람의 속도나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은 자는 자신의 영으로 느낄 수 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성령을 받지 못했다고 간주해도 될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임하심을 간구하자.
사람은 어미의 뱃속에서 날이 차서 이 땅에 나올 때 울음을 터뜨린다. 육신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이 새롭게 거듭날 때도 영혼의 울음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진정으로 주 앞에서 회개하게 되면, 주의 영이 임함으로 얽눌렸던 나의 영혼은 주의 임재하심으로 자유함을 얻어 죄사함의 감격함에 울게 된다. 며칠이고 몇달이고 몇년이고 주님의 이름만 불러도 주체할 수 없게 눈물이 흐르게 된다.
나의 모든 죄로 인한 더러움과 슬픔을 씻어내는 울음.
나를 구원하신 주님에 대한 감사함의 눈물.
어쩔수 없이 연약한 나를 이해하시고 용서하는 주님께 대한 고마움으로 흘리는 눈물.
왜 우는지 이해할 수 없는 울음.
이러한 주의 영안에서의 울음은 영혼의 자유함을 얻은 거듭남을 받은 자가 누리는 특권이 아닌가 한다.
성령을 선물로 받은 자에게 어떤 모습이 나타나는가.
성령이 거하는 자에게는 여러 주님의 특성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 중에 하나는 바로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산다.
부모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
형제로부터 받은 상처,
배우자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
자녀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
다른 이들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
많은 마음의 상처들이 내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 있다.
시간이 지나서 잊고 있었다 생각했는데 어떤 계기가 있음으로 또 내 마음을 미움과 증오로 흔들어 댄다. 왜냐하면 아직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로는 용서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용서를 하지 못한 것이다.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삶 가운데 가장 심각한 문제라 생각이 든다.
그것은 바로 나의 마음을 해친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형제를 용서하고 또 용서하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곧 나를 위한 것이다.
용서를 해야지만 내 마음은 더 이상 상처를 입지 않는다.
용서를 못하게 되면 내 마음에 미움과 증오가 자리잡게 한다.
그런데 미움과 증오는 주님의 마음이 아니지 않는가!
내 마음에 미움과 증오가 자리잡고 있다면 주님의 사랑이 거하는 자리가 무척이나 협소하게 된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제대로 전해주지 못하고 이기적으로 편파적으로 조건적으로 사랑을 나누어 주게 된다. 주님의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곳에 미움과 증오가 우선한다면 그것이 곧 우상숭배이지 않겠는가!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
그렇지만 성령이 거하는 자는 남을 용서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안에 예수님께서 계시기 때문이다.
사랑의 주님은 우리를 용서하셨다.
주님께서 안에 계시는 자는 주님과 마찬가지로 남을 용서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주님은 자신을 못박은 자들을 용서하셨다.
자신을 배반한 자들을 용서하셨다.
자신에게 침을 밷고 때리고 돌을 드는 자들을 용서하셨다.
자신을 핍박하고 채찍으로 내리치는 자들을 용서하셨다.
성령이 거하는 자들은 우선 나를 용서할 수 있고 그리고 내 이웃들을 용서할 수 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한때 미움과 증오로 차있던 나의 마음이 깨끗이 비어지고 그 빈 자리에 주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가득차게 된다.
성령이 임한 나는 이제는 주님을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된 것이다.
주님을 믿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반드시 있어야 하는 성령께서 내 안에 과연 거하는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성령을 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주여 저들을 불쌍하게 여기소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너희는 물과 성령을 받아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많은 착각과 오해 가운데 신앙생활을 합니다.
교회에 나가는 것만으로는 성령을 받을 수 없읍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중요 직분을 받았다고 해서 성령께서는 임하시지 않으십니다.
성경지식이 있다고 해서 성령을 받을 수 있읍니다.
아무리 많은 성경말씀을 암송한다고 해도 성령께서 제 안에 계시지 않으시다면
저는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합니다.
성령을 받아야지만 주님의 자녀가 됩니다.
성령이 있는 자에게 주님의 능력이 임하여 이 세상의 싸움에서 능히 대적하고 이길 수 있읍니다.
성령이 있는 자는 말씀의 능력이 함께 임합니다.
성령님의 조명하심으로 말씀을 읽을 때
잠자고 있던 저의 영혼을 깨우쳐 주시고
주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게 하시고
주님의 성품을 닮아 가도록 인도하시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경외하는 법을 배우도록 인도하십니다.
성령을 받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기를 원합니다.
성령을 받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곧 우리의 진실된 회개라고 가르쳐 주셨읍니다.
주 앞에 나아와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매일 매일 주님을 생각할 때에 울었으면 좋겠읍니다.
주 앞에 죄로 어룩진 저의 마음을 찢으며
저를 온전하게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저의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어 주옵소서.
회개하는 심령을 주께서는 멸시치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주 앞에 나아와 회개합니다.
저를 받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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