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6일 일요일

나의 마음을 저울에 다시는 여호와

(21: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A person may think their own ways are right, but the Lord weighs the heart.
 
 
1.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우리는 많은 것들을 경험한다. 그 중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곧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이고 다음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참으로 나를 힘들게 한다.
 
잠언서는 관계의 문제를 다룬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하여 말씀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영적인 부문이며 나와는 개인적인 관계이기에 잘 보이지 않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혼적이며 육신적이어서 분명하게 우리는 느끼고 반응을 한다.
 
본문의 말씀은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A person may think their own ways are right.
“정직하다”라고 번역된 것이 “right”이라고 사용된다. Right”은 “나는 옳다” 혹은 “나는 맞다”라고 사용한다. 다시 쓴다면 “각각의 사람은 자신이 행하는 것이 옳으며 맞다고 생각들을 한다” 하고 쓸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렇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
잠언의 말씀과 같이 나는 옳은데 네가 하는 것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이 정한 잣대에 맞춰서 생각한다. 자기 중심적인 자아가 기준이기에 편협할 수도 있는데도 정작 자신은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방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의 생각이 다르고 서로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분란이 있을 수 밖에 없으며 다툼이 일어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현상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이 어디인가?
바로 가정과 교회공동체이다.
 
수많은 기독교인 가정이 깨진다.
또한 수많은 교회가 깨진다.
 
왜 그럴까?
이것은 사단의 계략이기 때문이다.
사단은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가 되지 못하는 마음을 심어준다.
성령의 역사는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지만, 사단의 역사는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한다.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주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븐명 그리스도를 섬기는 가정이나 교회라면 주님의 사랑이 있어 하나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툼이 있으며 서로 불평하며 결코 하나로 합칠 수 없다고 해서 깨진다. 왜냐하면 내 자신이 보기에 내가 행한 모든 것은 옳고 상대방은 모두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죄악은 남을 비판하고 정죄한다는 것이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기 좋아하며 끊임없이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죄를 범한다.
정작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의 죄를 깨달아야 지만 회개할 수 있을텐데 자신은 옳다고 믿으니 회개할 기회가 없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면 회개하고 고치기가 쉽다.
돼지들이 먹는 쥐엄열매를 먹는 밑바닥 삶을 경험하고서야 비로서 자신이 어떤 자인지를 보게 된다 .
그 이전에는 자신이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아버지의 집을 떠나면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의 뜻대고 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행하지만 결국은 파멸에 이르고 더 이상 갈 곳이 서 있을 곳이 없는 순간 자신이 누구인지를 본 것이다. 자신이 탕자인 것을 깨닫는 순간 그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마음에 결단을 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 가고픈 마음이 일어난다. 그래서 아버지를 찿아가서 잘못했다고 회개하며 용서를 구한다. 자신에게 베푸시는 조건없는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큰 것임을 깨닫고는 염치가 없지만 감사할 뿐이다.
 
그런데 내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는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죄를 회개하기가 쉽지 않다. 탕자의 형과 같은 사람이다. 자신은 모든 것을 할 도리를 다하며 잘했고 잘못한 것이 없다며 자신의 이기적인 의를 내세운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자신만을 바라볼 뿐 아버지나 동생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 저에게는 염소새끼 한마리도 먹게 하시지 않으셨냐며 자신과 아버지와의 관계부족의 좁은 마음을 내비치며 그저 섭섭할 뿐이다. 사랑과 긍휼로 나의 잘못을 기억도 않고 잊어 버리시고 품어주시는 주님의 마음이 없는 것이다.
 
정작 이런 형과 같은 사람이 교회나 가정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나의 자아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것과 정죄의 영과 비판의 영이 같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다른이의 잘못을 드러내시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죄를 나무라셨지만 결코 비판하고 정죄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잘못했을 때 시시비비를 가리셨는가?
주님께서 간음한 여자가 끌려 와서 돌로 쳐서 죽임을 당하기 전에 여자를 구하시고는 무엇이라 말씀하셨는가?
너는 왜 다른 남자와 간음을 했느냐, 왜 그런 악한 일을 했느냐 하시지 않으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8:11)”고 말씀하셨다.
 


 
2.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The Lord weighs the heart)
 
주님은 나의 마음을 저울에 올려 놓고 측량하신다.
하나님은 내 마음을 너무나 잘 아신다. 하나님은 나의 마음을 감찰하신다.
 
내 마음속은 나 말고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물의 깊이는 알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의 마음에는 선한것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의 마음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사도바울은 또 어떻게 고백하는가.
(7:18-20)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을 하지만 실상 그 마음속에는 온갖 더러움으로 가득차 있다.
옳바르다고 행동하지만 그 이면에는 악함이 함께 공존한다. 그것이 사람의 성품이다.
 
내 마음안에 그리스도 예수보다 나의 자아인 옛성품이 더 많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의 포장된 외식적이며 가식적인 모습을 보기에 나의 속을 보지 못하지만, 주님께서는 나의 가식적이며 형식적이며 이중적인 내 속을 들여다 보신다
 
하나님께서는 삼상16:7에서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시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내 마음은 죄악의 성품을 갖고 있다고 롬1에서 말씀하신다.
(1:29-31)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 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악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 이유가 28절과 같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그 마음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1:28)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의 뜻은 무엇일까?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께서 중심에 계시지 않으신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는 뜻이 아닐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느끼는데도 내 뜻을 하려고 할 때 그때에 나는 하나님 두기를 싫어 한 것이다.
 
내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지 않게 되면 내 마음은 사단이 주는 죄악의 성품을 갖게 될 수 밖에 없다. 내 속에는 주님의 마음보다는 사단이 준 죄악의 성품을 갖고 있기에 우리는 늘 쓰러질 수 밖에 없다.
 
내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 지를 잘 나타내는 것이 우리가 하는 말이라고 성경은 지적한다.
우리는 말하는 것으로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점검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12:34-35)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악한 말을 하는 자들은 독사의 자식이라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내가 하는 말이 악한 말인가 아니면 선한 말인가는 자신도 잘 알지 않는가!
혹 내가 악한 말을 내 뱉었다면 그 자리에서 주님께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여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의 마음이 아니라 악한 마음을 품고 있다면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신다. 악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결과는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게 된다. 즉 하나님의 구원으로부터 멀어진다.
 
(3: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을 믿는 성도라면 누구나 주님과 같은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주님은 변화받기 원하는 우리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아신다. 게다가 내가 주님을 믿는 자녀라면 내 안에는 주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계심으로 나의 머리터럭까지 아시는 주님께서 마음을 너무나 잘 아시기에 내가 주님의 뜻대로 살 때 기뻐하신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께서 나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막연하게 주께서 나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주님께서 나를 변화시키실 것이야.
주님께서 나의 아내를 나의 남편을 나의 자식을 나의 부모를 변화시킬 것이야.
예수님께서 나의 못된 성품 성격을 고쳐주실 것이야 하며 막연하게 기대를 하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머리로는 아는데  행동은 따르지 않는 종교생활을 한다.
 
어떻게 우리는 해야 할까?
변화받기를 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나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주님은 자신이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 말씀하신다.
(11:29-30)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의 마음.
종의 자리까지 낮아지셔서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의 마음.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 앞에서 아무러 변명도 대꾸도 하지 않으신 주님.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을 용서하신 예수님의 마음.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마음.
세상을 심판하시는 모든 주권을 갖고 계시는 권능의 예수님의 마음.
온유하신 예수님의 마음.
겸손하신 예수님의 마음.
 
 
내가 잘못한 것은 보이지 않고, 다만 다른 사람의 잘못만 보이며 불평과 불만과 분노가 있을때 “나는 죽었읍니다” 하며 믿고 시인할 때 주님의 생명으로 나는 살게 된다.
 
“나는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이미 죽었읍니다” 확신하며 고백하자.
주님의 능력이 내게 임하지 않겠는가!
그때 내 안에 심어준 마귀의 죄악된 마음은 꺽인다.
나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주님께서 내 안에서 온전히 사실 때나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로 변화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내가 생각지도 않은 방법으로 주님께서는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의 마음을 감찰하시기 때문이다.
내 마음속에 나의 의가 살아있고, 옛 성품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런 자를 내쫓아내신다.
그렇기에 우리는 내 마음속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무늬만 교회에 가는 그럴듯한 그리스도인이 아닌,
껍데기에 불과한 그리스도인이 아닌,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그리스도인으로부터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로 회복되는 축복을 입자.
겸손하고 온유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우리를 심판하러 오시는 권능의 주님을 기다리는 사랑받는 신부가 되어야 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저는 늘 제가 잘 났다고 합니다.
제가 하는 것은 모두 맞는데 다른 이들은 모두 잘못 되었다고
생각을 했던 경우가 참으로 많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잘못되어도 너무 잘못되었다고
성령님께서는 제 마음속에서 속삭이시며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너의 겉모양을 보지만
나는 너의 속마음을 보신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
 
네가 만일 나를 버리면
나 또한 너를 버릴것이며
네 마음속에는 온갖 더럽고 추악하고 냄새나는 죄악의 성품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 마음을 잘 나타내는 것이 내가 하는 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어떤 말을 하는지를 늘 살피게 하옵소서.
혹 악한 말을 하였다면 그 즉시로 주님께 나의 죄를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도록
내 안에 계신 성령님 저를 일깨워 주옵소서
 
저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여호와여.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말씀하신대로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주님의 마음을 품기를 원합니다.
제 속에서 못되고 악한 것들이 솟구쳐 올라 올때마다
나는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선포하기를 원합니다.
성령님 저를 도와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아름다운 신부가 되어
곧 오실 권능의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이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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