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2: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창22:14) So Abraham called that place The LORD Will Provide.
And to this day it is said, on the mountain of the LORD it will be provided.
“섭리”라는
말을 우리는 수없이 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내 생각으로는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경험을 할 때 여호와의 섭리라고 말한다.
섭리의 사전적 정의다. “섭리란 하나님의 전능하고 언제 어디나
미치는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마치 자신의 손으로 하듯이,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여전히 보존하고 다스리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잎새와 풀,
비와 가뭄, 풍년과 흉년, 먹을 것과 마실
것, 건강과 질병, 부와 가난, 참으로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그의 손길로 우리에게 임한다.”
“섭리”는 창22:14의 “여호와 이레”에서 나온 말이다.
“이레”는 히브리
말로 “준비하시리라”의 뜻을 갖고 있다.
‘The LORD Will Provide (여호와 이레)’에서 ‘Providence (섭리)’가 파생되었다.
여호와 이레의
사건을 통하여 여호와의 섭리의 축복이 내게도 임하기를 간구한다.
아브라함의 경험을
통해서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경험하기 위한 단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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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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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아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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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제에 쓰일 나무와 불씨를 지고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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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소중한 것을 드려야 한다.
1.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명령을 하신다.
(2) 네 아들, 곧 네가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지역으로 가서 번제물을 드리라.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성도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자고 하면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는가!
과연 나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다신 말해 주님의 양이라면 당연히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다.
그런데 왜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까? 마음의 귀가 닫혀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나의 마음을 통해서 감명을 주시고, 자연을 통하여 말씀하시기도 하시고,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통하여도 말씀하신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통로는 바로 성경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나의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수 많은 것들 중에서 어떤 것이
진정한 주님의 말씀인지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들려오는 수많은 생각들 중에 주님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와 용서가
있는지를 진리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성경 말씀의 진리와 부합이 된다며 주님의 음성이라고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늘 성경말씀을 가까이 하고 살아야 한다.
매일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지를 주님께 여쭈어보고 대답을 듣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점차로 주님과 대화의 통로가 열리게 될 것이다.
나의 마음을 열자. 나의 귀를 열자.
세미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어보자.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보자.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며 권고하시는 지를 마음으로 들어보자.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가 행하야여 하는 것은 즉각적인
순종이다.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이 말씀을 듣고 번민했다거나 고심하며
여호와께 간구했다는 말이 쓰여져 있지 않고 다만 3절에 그 다음날 아침 일찍 번제물로 드릴 이삭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신속하게 순종하였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일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임을 확신하고 말씀을 듣고 바로 더 이상 망설임 없이 바로 다음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던 것이다.
즉각적인 순종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리고 또 한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아브라함은 여호와께서
번제물을 준비하셨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자신이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해서 모리야산으로 가지만 그곳에는
여호와께서 이삭대신에 번제물을 준비하셨을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8) Abraham answered, GOD
himself will provide the lamb for the burnt offering, my son.
아브라함은 Lamb (어린양)을 구하였지만 하나님은 Ram (숫양)을 준비하셨다.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우리가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응답하실때는 꼭 같은 것으로 응답하시지
않음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응답방법은 인간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응답하신다.
2. 모리아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모리야 산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거룩한 곳 죽 “성산”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여호와의 임재가 있는 곳을 향하여 성산을
오른 것과 같이 우리 역시 여호와께서 계신 성산을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야 한다. 인생의 목적지가 정해진 것이다.
인생의 목적이 있는 것과 없는 것과의 차이는 실로 크다.
처음에는 모두 비슷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보면 목적이 있었던
인생과 뚜렷한 목적이 없이 산 인생과는 서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삶의 목적이 있는가?
나는 어디에 서있는가?
나는 무엇을 찿는가?
나는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간구하는가 아니면 주님께서 속한
것들을 찿으려 하는가?
나의 날마다의 삶은 무엇을 쫓아가는가?
세상에 속한 것을 추구한다면 그런 모습에서 변하여 주의 성산을
간구하도록 해야 한다.
바로 그곳이 우리 주의 자녀들이 영원토록 거할 곳이기 때문이다.
그럴때 여호와 이레의 축복이 내게 임한다.
(시15: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나는 주의 성산에 머물수 있는 자격을 갖고 있는가?
주의 성산에 거할 자는 공의롭고 진실이 있어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이다.
하나님께서 계신 성산을 향하여 눈을 높이 들고 향해서 가야
한다.
지금까지 목적지가 뚜렷하지 않아 방황하기도 하도 길을 잃고
헤매이기 했다.
하지만 이제는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주의 성산을 향하여 가는 것이다.
내 삶의 목적지가 정해져 있기에 딴 눈 팔지 않고 가도록
해야한다.
때로운 날카로운 바위를 만나기도 하고 천길 낭떠러지를 만나기도
한다.
그럴때마다 실의에 빠져 포기하고 싶지만 주의 성령은 나를 위로하시고 담력과 용기를 주시며 길을 터주시고 인도하신다.
주의 성산에 이르기 위해서는 나를 비추시는 주의 거룩한 빛
가운데 있어야 하며 늘 진리의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성실하시고 인자하신 주님의 사랑은 나를 주가 계신 성산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주의 성산을 향하여 가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시138:2) 내가 주의 성산을 향하여 경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위에 높게 하셨음이라.
곧 경배와 찬양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진정과 신령으로 드리는 경배와 찬양을 드려야
하는 것이다.
가식적이고 형식적인 예배의 모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배때마다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경배와 찬양을 통하여 여호와
경외함을 배우자.
여호와께서 계신 성산으로 우리의 눈을 고정하자.
그래서 여호와 이레의 츅복을 경험하는 인생이 되자.
3. 번제에 쓰일
나무와 불씨를 지고 올라가야 한다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 땅에서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땀을 흘려서 땅을 개간하고 가라지도 뽑아 주어야 하고 때에 맞추어 내리시는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축복이 있어야한다. 그리고 때로는 실패하기도
한다.
무거운 인생짐을 지고 가야한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우리에게 어떤 위안을 주시는가?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당시에 불을 얻기란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래서 불씨를 꼭 챙겨셔 잘 간직해서 지녀야 했다. 조그만 불씨를 잘 간직하기 위해서는 혹
물에 젖을까 다 타버릴까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이다. 어려움을 당할때 그만 실의에 빠져 빛에서 떠난 생활을 하기도 하며 세상에서 방황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래도 내 마음속에는 꺼지지 않은 조그만 불씨 하나가 내 마음속을 비추고 있으니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남겨진 불씨가 때가 되면 활활 타오르는 꺼지지 않는 불이
되어 온 사방을 비춰 환하게 한다.
4. 가장 소중한
것을 드려야 한다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하니
아브라함이 뒤늦게 얻은 자식인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며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보물이자 자신의 분신과도 같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신다.
아브라함은 얼마나 실의에 빠졌을까?
어떻게 얻은 자신의 대를 이을 아들인데. 어떻게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시는가!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결단을 하고 가장 소중한 이삭을 제물로
드린다.
이런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은 너무나 급하셔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며 제지하실 수 밖에 없으셨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사자와 싸워 이겼듯이
하나님께서 판정패 하셨다.
그런데 지신 여호와의 마음은 얼마나 기뻐하시며 흡족하셨을까?
여호와께서는 이런 아브라함을 보시고 선물을 주신다.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플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의 순종을 보시고 이삭 대신에 미리 준비하셨던
번제물을 내어 놓으신다.
번제물은 이미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단지 아브라함이 보지 못했을 뿐이다.
여호와께서는 이미 번제물로 쓰일 것을 준비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여호와 이레의 축복은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실은 이미 준비되어 있음을 믿고 확신하자.
아브라함은 이 같은 은혜를 받자 “여호와 이레”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호와 이레의 축복이 나에게도 임하기를 원한다.
여호와께서는 왜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하시는 가?
여호와께서 여호와 이레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싶으신
것은 무엇인가?
(12) 네가 네 아들 내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은 내가 얼마나 여호와를 경외함을 알고 싶어 하신다.
여호와께 번제물은 중요하지 않다. 번제물을 드리는 나의 마음이 어떤 곳에 있는 가를 알고 싶으시다.
나는 온전하게 여호와를 경외하는가?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하기까지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를
알고 싶어 하신다.
여호와를 경외함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곧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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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사도바울이 고백하였듯이 내게는
선한 것이 없다.
(롬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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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
내게는 얼마든지 교만해야 할
타당한 이유들이 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찿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습2:3) Seek the
Lord, Seek the Righteousness. Seek Humility
나의 교만은 내가 여호와를 경외함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우리 모두는 교만함을 갖고 있다.
(벧전5:5-6)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경건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교만은 곧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죄이다.
나의 교만을 내려놓자.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함에 나의 마음과 뜻을 다하자.
그렇다면 여호와 이레의 주님이 내게 더욱 가까이 다가 올
것이다.
우리는 여호와께 늘 감사할 수 밖에 없다.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만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 놓으라고 요구하시지
않으신다.
여호와 역시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 놓으셨다.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바로 가장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번제물로 우리를
위해 세상에 보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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