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5: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교회에 나가는
성도들은 지금껏 소금과 빛의 자녀에 대하여 수없이 들어왔다.
소금과 빛과
같이 살라고 말씀하셨는데, 실상은 막연하게 소금과 빛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 같다.
다시 한번 소금과
빛의 자녀에 대하여 새겨 보았으면 한다.
A. 소금
소금의 특징중의
하나가 부패를 막는 방부제 역활을 한다.
그래서 소금과
같은 그리스도인이라 하면 우선 생각나는 것이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으로서 우선 나 자신의 부패와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정, 공동체, 그리로 나아가서 세상의 부패를 막아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말씀을 보자.
본문의 말씀을
보면 주님은 소금의 비유를 하시면서 음식의 맛을 언급하신다.
즉 음식에 들어가는
소금을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주님께서 원하시는 자녀의 모습을 가르쳐 주신다.
마가복음에서는
소금이 곧 화목함을 의미함을 가르치신다.
(막9: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음식에서 소금은
무슨 역활을 하는가? 음식에서 소금의 역활은 무척 중요하다.
1) 소금 곧 화목은
조화를 의미한다.
소금은 음식할
때 적은 양이 쓰이지만 그 효과는 실로 무시할 수 없다.
음식이 너무나
짜거나 너무 싱거우면 음식 맛이 없다. 소금은 적절한 양이 들어 가야하며 소금은 여러 재료들을 조화시켜 맛있는 음식으로 만들어 준다.
조화가 있다면
곧 화목하게 한다.
만일 소금이
음식에 보인다면 그 음식은 먹어 보지 않아도 너무 짠 음식일 것이다.
소금이 음식과
조화가 되면 소금은 보이지 않게 된다.
소금은 음식에
보이지 않게 잘 스며들여야 한다. 소금은 보이지 않지만 음식을 먹는 사람은 그 음식에 소금이 많이 들어 갔는지 적게 들어 갔는지를
맛으로 감지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자신이 맡은 일을 해야 한다.
화목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성도의 인내와 겸손이라고 생각한다.
내 말만하게
되면 그곳에 화목이 임할까?
내 생각대로만
하기를 원한다면 그곳이 화목할까?
내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하게 되면 그곳은 화목이 있을 수 없다.
가정이나 교회에서나
다른 이들을 나의 입장에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대할 수 있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내가 나타나지 않고 조용하게 스며 들어 조화를 이룰떄 그곳은 화목이 있게 된다.
2) 소금 곧 화목은
나의 직분이다.
(고후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화목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주님을 보내셔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자녀들과의 관계가 맺어 지도록 화목제가 되셨다.
그러므로 주님의 자녀들이 서로 화목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화목의 직분을 주셨다. 화목한 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로마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롬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화목을 이루는
것은 성도가 마땅히 행하여야 일이다.
B. 빛
빛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에서 빛은 많은 의미를 갖는다.
빛은 예수님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며, 태양 빛과 같은 빛을 나타 내기도 하고, 내 마음의 영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빛도 있다.
빛은 예수님을
의미한다.
(요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일1:5)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빛은 하나님께서
셋째날에 창조하신 광명체 즉 태양과 같은 별에서 나오는 빛을 의미한다.
(창1:17-18)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또한 빛은 각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나타낸다.
(눅11;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둥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저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그 중에서 본문의
소금과 빛과 같은 자녀에서 말하는 빛은 성도의 착한 행실을 의미한다.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착한 행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성도의 거룩함이다.
교회의 본질은
무엇인가? 착한 행실을 통한 거룩함을 가르치고 거룩한 주의 백성이 주님께 영광 돌리는 곳이 교회이다.
이 빛 곧 착한
행실을 “등경위에 두어 사람앞에 비춰라”라고 말씀하신다.
착한 행실을
나 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웃들에게 베풀어야 한다.
산상수훈은 주님의
설교이다.
어떤 설교보다
가장 훌륭한 설교이다.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주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가르치신다. 구약에서는 모세 오경의 율법이 성도의 삶의 지침서이었지만,
신약에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산상수훈의 성도의 삶의 지침서이다.
팔복을 말씀하신
후에 곧이어 소금과 빛의 자녀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그리고 해야 할 일들 하지 말아야 할 이들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주님은 산상수훈을 통해서 소금과 빛의 자녀들이 미리 예비된 팔복의 복을 받으며 착한 행실을 행하여 집을 반석위에 지은
거룩한 주의 백성이 되라고 권면하신다.
착한 행실은
산상수훈에 잘 기록되어 있다.
·
마음에도 간음하지 말라.
·
맹세하지 말라.
·
원수에게 보복하지 말라.
·
구제하라.
·
용서하라.
·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으라.
·
염려하지 말라.
·
비판하지 말라.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
좋은 열매를 맺으라.
·
집을 잘 지어라.
거룩함은 말로만
얻어 지는 것이 아니다.
착한 행실을
통여 주님의 마음인 거룩함에 조금씩 다가간다.
(16)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의 자녀로서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선한 행실을 하게 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얼마나 놀라운가!
내가 선한 일을 하게 되면 누가 영광을 받는가? 곧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C. 맛을 잃으면
밞힌다
(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소금이 맛을
잃어 버리면 아무 쓸모 없어 버려져 사람에게 밞힌다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이 말씀을
주의 깊게 내 마음에 새겨야 한다.
1. 맛을 잃으면
언제 소금은
맛을 잃게 될까?
소금 그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그 가운데 불순물이 들어가면 음식의 맛을 내는 데에 소금을 쓸 수 없다. 불순물이 섞인 소금은 버릴 수
밖에 없다. 우리 역시 화목케 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았지만, 내
안에 불순물이 들어 있다면 다른 이들과 조화되어 올바르게 화목의 역활을 할 수 없다.
불순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화목을 가로막는 내 마음의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것들을 말한다.
곧 교만과 거짓과 시기와 불평과
불만과 비판과 분노와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공동체에서 화목을
방해한다.
늘 나를 낮추는 겸손이 있어야
한다.
나의 잣대로 남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그를 이해하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맛을 잃으면”의 단어에는
“어리석다”의 뜻을 갖고 있다.
“소금의 맛을 잃어 버리면”을
다시 말한다면 “어리석게 행동을 하면”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곧 그리스도인들이 어리석음으로
인해 소금의 맛을 잃게 된다면 어떻게 주님의 자녀로서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되면 아무 쓸모가 없는
자가 되어 버리게 된다. 소금이 있으면 지혜롭게 행동을 하지만, 소금이
맛을 잃으면 지혜도 잃게 되어 어리석게 행동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세상사람들로 부터 짓밟힘을 당하게
된다.
소금의 자녀로서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이 어디인가? 곧 나의 말이다.
(골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주님의 자녀들은 항상 말을
할때 은혜 가운데서 말해야 하며, 그 말은 지혜로와야 한다. 그렇게 되면 모든 사람돌과
조화를 이루어 화목을 이루게 될 것이다.
2. 밟힌다
(13)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말씀 그대로
만일 자녀가 소금과 빛의 역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으로부터 밟힌다.
주님의 자녀라
하면서 세상사람보다 못한 죄를 지었을때,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면서 그를 욕하고 밟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한다. 만일 내가 소금과 빛의 자녀로서 올바르게 하지 못하고 있다면 내 자신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고 다시 소금과 빛의 자녀로 돌아 오라고 부르신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소금과 빛의 역활을 하지 못한다면 결국에는 그토록 애착을 가진 세상으로터도 버림받아 밟히게 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인생의 길을 간다.
그리고 소금과
빛의 자녀들은 세상으로부터도 인정을 받아야 한다.
“아 저들은
과연 주님의 자녀들이야. 보통 사람들과는 확실하게 구별돼” 하며 저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한다.
(16)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소금과 빛의
자녀로서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인 나의 가정이요, 내가 속해 있는 교회의 공동체이며, 내가 일하는 삶의
일터이다. 이곳이 곧 내가 소금과 빛으로서의 화목을 이루며 착한 행실을 해야 하는 곳이다.
말씀을 정리하면,
소금과 빛의
자녀는 주 안에서 화목함과 거룩함을 추구하는 삶을 의미한다.
히브리서에서는
소금과 빛의 자녀로서 주님안에 머물기 위해서는 거룩함과 화목함이 필요함이 필요함을 말씀하신다.
(히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Heb 12:14) Make
every effort to live in peace with everyone and to be holy. Without holiness no
one will see the LORD.
소금과 빛의
자녀는 주를 볼 수 있다.
화목함과 거룩함을
따르는 주의 자녀라면 주님을 본다고 말씀하신다.
따르다는 현재형이다.
즉 소금과 빛의
자녀는 지금 바로 이 순간 화목함과 거룩함을 쫓는 삶을 요구한다.
소금과 빛으로서의
삶을 과거에 살았다고 만족할 것이 아니라. 또 앞으로 소금과 빛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바로 지금 나는 소금과 빛으로서 살아야 함을 말씀한다.
주님의 자녀인
내가 소금과 빛의 역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주님을 바라 볼 수 없게 된다.
즉 주님의 임재가
없는 그래서주님의 도움과 인도하심이 사라져 버린 황량하고 황폐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나는 세상으로부터
버려져서 짓밞힘을 당하게 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님께서는 저에게 소금과 빛의 자녀로서 이 땅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화목의 본을 우리에게 보이셨읍니다.
주님께서는 화목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읍니다.
그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화목을 이루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있는 곳에서 저를 나타내지 않고 잘 스며들어 조화를 이루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는 착한 행실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특히 산상수훈을 통해서 착한 행실의 삶이 무엇인지를 저희들에게 설명해 주셨읍니다.
산상수훈에 나타난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제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소금과 빛의 자녀로서 살려면 제 안에 있는 불순물들이 우선 없어져야 함을 깨우쳐 주셨읍니다.
제 안에 있는 시기와 욕망과 교만과 불평과 비판함을 내려 놓기를 원합니다.
성령님 저를 도와주소서.
성령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갖고 제가 있는 곳에서 화목을 이루고
착한 행실을 행함으로 주님의 거룩함을 배우며,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소금과 빛의 자녀로서의 축복을 간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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