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9:43-48) 만일 네 손 (발/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 (발/눈)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거기는 어디인가?
‘게한나’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으며 곧 지옥을 말한다.
이 말씀의 배경을 보자.
예수님 당시에 ‘게한나 (힌놈 골자기)’라는 곳이 실지로 있었다. 이 곳은 제사를 지낸 후에 희생제물로 드려진 동물들의 사체를 소각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매일같이 사체를 불에 태우던 곳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구더기들이 들끓었던 곳이었다. 또한 성경은 죄 많은 사람을 구더기 인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욥25:6)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
거기는 즉 지옥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라는 표현은 구더기 같은 죄인이 죽지 않고 영원한 불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음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말씀대로 지옥에는 죽지 않는 구더기가 있으며 죄인들은 꺼지지 않는 불의 고통을 받고 있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옳바르다고 생각한다.
지옥이 있음을 믿는가?
성경에 말하는 지옥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한 자들이 가는 곳이며 실제적이며 끔직한 형벌을 주는 곳이다.
주님은 본문의 말씀을 보면 지옥에 대하여 말씀하시며 그곳에는 눈이나 발이나 손을 잃더라도 제발 가지 말라고 강하게 말씀하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은 분명하게 지옥과 천국에 대하여 말씀한다.
찬국이 실제로 있듯이 지옥 마찬가지로 실제로 있는 장소이다.
세세토록 고통을 받는 지옥.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자가 받는 형벌의 장소이다.
(계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지옥이라는 단어를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는 것같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지옥’이라면 왠지 거부감을 나타낸다.
오늘의 신자들은 달콤한 말씀을 듣고 감성이 자극받아 눈물을 흘리며, 축복의 말씀을 듣기를 좋아한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 감동받고 은혜를 받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감동받음이 오래 지속이 되는가? 은혜 받은대로 이후의 삶은 변화를 하였는가?
실제의 삶에서 천국을 경험하는가? 아니면 여전히 지옥을 경험하는가?
누가 지옥에 갈까?
적어도 나는 가지 않을꺼야.
얼마나 교회에서 헌신을 하는데. 나만큼 헌신하는 이가 있다면 나와 보라고 해.
내가 얼마나 헌금을 많이 했는데.
내가 몇년이나 교회를 나가고 있는데.
내가 다니는 교회가 얼마나 잘 지어졌고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나니는 곳인데. 그래서 나는 일등 신자야.
내가 아는 유명한 목회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데.
내가 얼마나 교양있는 성도인데.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만큼은 지옥에 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가!
내가 죄악을 행할 때마다 내 안에 성령님은 경고를 하신데도 혹 이를 무시하지나 않는가?
계속해서 성령의 경고를 무시하고 불순종한다면 나는 과연 천국에 갈까?
아니. 천국에 가지 못할 지도 모르고 지옥에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성도들이여 제발 깨어나자.
천국이 그리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을 하는가?
성경은 분명하게 구원얻은 성도들은 착한 행실을 반드시 행하여야 한다고 말씀한다.
지옥에는 제발 가지 말아야 한다.
지옥은 공포의 장소이요, 끊임없는 고통이 있는 무서운 곳이다. 피할래야 피할 수도 없다.
계략을 꾸미며 아무리 애를 써봐도 도망할 수도 없는 극심한 절망과 후회만이 있는 곳이다.
우리의 영의 눈이 뜨여서 실제적인 지옥이 있음을 바라 보았으면 한다.
주님은 천국에 대하여 말씀하셨고 또한 지옥에 대하여 거듭해서 말씀하셨다.
(마5:29-30)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뺴어 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눅16:23-24)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마25:1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주님은 지옥에 관한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하셨다. 곧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다.
(막9: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주님은 제자들에게 죄의 유혹에 대하여 말씀하시며 지옥은 실제로 존재하는 매우 두려운 곳이며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가게 될 장소임을 말씀하셨다.
우리 성도 또한 우리의 이웃들에게도 지옥에 대하여 말해주어야 한다.
지옥은 실지로 있으며 그 곳은 뜨거운 불이 있어 고통받는 곳이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
지옥은 가서는 않되는 곳이며, 예수님을 부인한 죄인이 가는 곳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지옥은 반드시 있다는 것과, 내가 죄의 유혹에 이끌려 죄를 범하게 되면 지옥에 가게 된다는 사실이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무섭고 두려운 지옥의 뜻을 가볍게 하려고 갖가지의 단어를 사용하여 지옥의 뜻을 희석시키려고 한다.
현대 창조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Henry Morris 박사는 “성경은 해답을 가지고 있다”에서 지옥이란 단어는 구약에는 “스올 (Sheol)”로 신약에는 “게한나(Gehenna)” 혹은 “하데스 (hades)”로 쓰인다. 이를 스올, 음부, 죽음의 세계, 무덤, 혹은 불못으로 잘못 번역하였고 심지어는 카톨릭 성경은 음부와 저승으로 번역을 하였다. 음부와 저승은 불교사상에서 도입되었다. 즉 이교사상이 성경 번역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예수님은 하데스에 대하여 다섯 번 그리고 최종 지옥인 게한나에 대하여 열한 번 언급하셨는데 단 한번도 하데스와 게한나를 혼동하시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 하데스라 하셨을때는 항상 땅의 중심부에 있는 지하세계를 의미하셨고, 게한나에 말씀하실 때는 항상 죄인들의 최종 거처에 대해 말씀하셨다.
· 하데스
하데스는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이 일시적으로 거하는 장소이다.
(눅16: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계1: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 게한나
‘게한나’는 최후의 심판후에 예비된 지옥이다.
(마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에게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막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눅12;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게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1, 실제적인 지옥
지옥은 마귀와 그의 사자들과 예수님을 부인한 자들을 위한 곳이다.
(마25:41)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마귀와 그 사자들만 들어 가는 곳이 아니고 그들을 따르던 왼편에 있던 자들도 함께 가는 곳이다.
모든 사람들은 천국 아니면 지옥에 가야 한다. 중간의 곳은 없다.
주님을 믿고 인침을 받은 자들은 천국에 가게 되지만, 주님과 상관이 없는 택함을 입지 않은 자들은
지옥에 간다.
교회에 나가는 신자들이라해도 예외는 없다.
성경을 보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자가 자신의 행위에 따라서 내침을 받는 경우를 본다.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모두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주여 주여 하지만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라고 말씀하실지 모른다.
세상에 속한 이들은 지옥이나 주님이 계신 천국을 부인한다.
또한 지옥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예수를 믿지 않고, 더군다나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지 않아.
‘지옥에나 가라 (Go to hell)’라고 저주의 욕을 퍼붇기도 한다.
내 부모님이 내 사랑하는 이가 지옥에 있다고 하니 나도 그곳에 가서 같이 지내려고 해.
지옥에 가면 어때. 그곳에는 내 친구들도 많이 가있을테이니. 외롭지는 않을 것이야.
지옥이 어디에 있어? 그곳은 인간이 만든 생각의 장소이며 허구일 뿐이야.
사탄은 지옥을 어떻게 해서든지 가볍게 생각하도록 만들려고 한다.
많은 영화들이 지옥의 자식들에 대하여 세상을 구원할 영웅처럼 보이게 하며 아름답게 미화를 하기도 한다.
속지말자. 지옥은 영화처럼 가 볼 만한 곳이 아니며 더군다나 아름다운 곳도 아니다. 지옥의 자식들은 영화에서와 같이 세상을 구원할 구원자가 아니고 반대로 세상을 파멸로 이끄는 자들인 것이다.
사탄의 속임의 영향을 받아 세상에 속한 많은 자들이 지옥의 형벌의 심각성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전혀 모른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지옥은 실제적인 장소이다.
(막9: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는다.
지옥에 갔다온 이들의 간증을 들어 보면 지옥에서 뜨거운 형벌을 받는 자들에게는 구더기들이 득실해서 눈구멍에서도 나오고 입에서도 콧구멍에서 나오는 모습을 말한다.
그런 천국과 지옥의 간증들을 과연 무시할 수 있는가?
모든 간증들이 꾸며댄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 중에 어떤 간증들은 자신의 생각으로 지어낸 것도 있겠지만, 반면에 어떤 간증들은 실제적인 체험을 한 것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고 나는 믿는다.
지옥은 실재적인 장소이며 꺼지지 않는 너무나 뜨거운 불의 무서운 형벌이 있는 곳이다.
지옥은 낭만도 사랑도 없는 곳이며, 즐거움도 없으며, 기쁨도 없고, 소망도 없으며, 고통에 대한 연민도 불쌍함도 없는 곳이다.
제발 지옥에는 가지 말아야 한다.
내 자신을 돌아보자. 과연 나는 천국에 가기에 합당한 자인가를.
나의 부모와 배우자와 자녀와 형제와 이웃들은 과연 천국에 갈 수 있으까?
그들에게 지옥의 심각성을 알리자.
2. 지옥의 위치는 어디인가?
성경은 지옥(스올)은 땅 아래에 있다고 말씀한다.
(사14:9) 아래의 스올이 너로 말미암아 소동하여 네가 오는 것을 영접하되 그것이 세상의 모든 영웅을 너로 말미암아 움직이게 하며 열방의 모든 왕을 그들의 왕좌에서 일어서게 하므로
(겔32:27) 이 용사들은 다 무기를 가지고 스올에 내려가서 자기의 칼을 베개로 삼았으니
(마12:40)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속에 있으리라.
For as Jonah was three days and three nights in the belly of a huge fish, so the Son of man will be three days and three nights in the heart of the earth.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지옥에 내려 가셔서 3일동안 계셨다.
한글성경은 ‘땅속’이라고 번역을 했지만, 영어성경은 ‘heart of the earth’라고 번역을 했다.
음부가 위치한 곳은 바로 heart of the earth 즉 지구의 중심부이다.
지구의 중심부는 모든 것들이 녹은 상태로 있는 엄청나게 뜨거운 마그마가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그 가운데 있는 지옥이니 얼마나 뜨겁겠는가!
3. 회개에 합당한 열매
(눅3:8-9)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회개해야 하고, 그후에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에 던져지게 된다.
회개는 우리의 삶 가운데 무척이나 중요한 사건이다.
주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하시면서 천국복음을 전하셨다.
우리는 날마다 순간 순간마다 죄를 짓는다.
생각의 죄를 짓기도 하고, 말로서 죄를 짓기도 하며, 발로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고, 눈으로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보며, 손으로는 악한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기도 한다. 그럴때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은 나를 깨우치신다. ‘너는 지금 죄를 짓고 있지 않니. 죄에서 떠나라. 죄의 생각에서 떠나라. 네가 행하려고 하는 것으로부터 떠나라’ 하고 경고하시며 용서를 구하며 회개하라고 거듭해서 내 마음에 감동을 주시지 않는가?
만일 그런 감동이 없다면 과연 나는 주님의 자녀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도는 반드시 죄를 지을 때마다 회개하여야 하고, 회개했으면 그에 합당한 좋은 열매를 맺는 행함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나쁜 열매를 맺게 되면 찍혀서 불 곧 지옥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그것처럼 억울한 일이 또 있겠는가!
자신은 열심히 믿는다고 믿었고 남들보다 더 헌신하며 천국을 소유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육신의 호흡이 다하여 주 앞에 갔을때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라고 하신다면 얼마나 기가막히겠는가.
우리의 삶은 날마다 순간 순간마다 죄의 유혹과의 싸움이다.
죄에 노출될 때마다 나의 엣사람의 성품은 다시 되살아나려고 한다.
죄의 유혹에 빠지게 되면 그 결국은 지옥에 갈 수 밖에 없게 된다.
사람들은 늘 죄의 유혹에 놓여져 있다. 이유는 사람들은 아담과 이브의 후손이기에 때문이다.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었던 까닭은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죄가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럽게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죄악은 우리가 보지 못할 것을 보기를 원하고, 듣지 말아야 하는 패역한 말들을 속아서 듣고, 해서는 않되는 일들을 서슴없이 손으로 행하고, 발로 걸어서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기 때문이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곧 땅에 속한 지체를 십자가에서 죽여야 한다.
(골3:5-10) 그러므로 땅의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니라. 너희도 전에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
그래서 주님안에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
늘 죄를 지을때마다 성령께서 감동을 주신다. 성령의 감동으로 회개하여야 한다.
주안에 깊이 뿌리 박혀서 좋은 열매를 맺도록 착한 행실을 행하여야 한다.
그럴때 지옥의 삶에서 벗어나서 천국의 삶을 경험하며 영위할 것이다.
4. 누구나 죽는다
(히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은 후에 가는 곳이 천국 아니면 지옥이다.
죽지만 않으면 지옥에 않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사람은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그리고 죽은 후에는 회개할 수 없다.
영원토록 살 것 같은데 실은 사람은 무척이나 연약한 깨지기 쉬운 그릇과도 같다.
아무리 재물이 많아 세상의 유명하다는 모든 의사들의 치료를 받을 수 있어도, 생명의 여탈권을 가진 왕의 권력을 갖고 있다해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신의 수명을 연장하여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
지금 건강하지만 언제 죽음과 삶의 경계에 걸린 중병에 걸릴지 알지 못한다.
예기치 못한 천재지변이나 사고로 인해 생명을 잃을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한번 훅 하고 불으시면 나의 호흡은 마지막이 된다.
내게 내일이 있다고 믿는가? 그것은 추측일 뿐이지 실제적인 사건은 아닐 수도 있다.
언제 나의 삶의 종착점에 어떠한 모습으로 다다를 지 나는 알 수 없다.
살아 있을 때, 숨 쉬고 있을 때, 나의 의식이 깨닫고 있을 때, 오늘이 은혜받을 만한 때이니, 오늘이 가기 전에, 나의 날이 다하기 전에 죄를 지을 때마다 회개하여 용서를 구하며,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이 변하지 않고, 물과 성령으로 매일 매일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으로 가야 한다.
지옥은 두렵고 무서운 곳이다.
영원토록 고통이 있는 곳이다.
사랑도 없고, 자비도 없고, 긍휼도 없고, 누구도 도와 줄 수 없는 절망의 곳이며 소망도 없는 곳이다.
지옥에는 가지 말아야 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천국을 소망하는 자 중에서도 지옥을 가볍게 여기는 이들이 있읍니다.
나는 지옥가지는 않을 것이야 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삼는 이들도 있읍니다.
주님은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셨읍니다.
회개에 합당한 좋은 열매를 맺어라.
그렇지 않고 나쁜 열매를 맺으면 찍혀서 영원한 불에 던져 지게 될 것이라고 우리에게 경고를 하셨읍니다.
지옥.
듣기만해도 두렵도 떨리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지옥을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하게 있읍니다.
영화를 보면 지옥의 자식들이 활개치며 무슨 영웅이나 된 듯하게 그려져 있어 지옥의 자식들을 동경하게 만들고 지옥을 미화하고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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