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2:1-3)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그러므로”는 전의 내용과 연결이 되어있으며 결과로 이끌때 쓰이는 단어다.
사
도 베드로는 인생이란 풀과도 같아서 꽃을 피워 한 때의 영화를 보이기도 하지만 얼마못가 꽃이 시들어져서 떨어져 말라 버리듯이 인생
역시 무척이나 짧은 삶을 살며 언제 훅 불면 마지막 호흡을 할 수 밖에 없지만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에 순종함으로 거듭난 자들은 모든 악한 엣사람의 성품들을 벗어 버리고, 갓난아이가 젖을 사모하는 것과도 같이 신령한 젖을 사모하며, 구원을 이루어 나가도록 권면한다.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베드로는 양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통하여 절실하게 배우고 경험하여 느낀 것을 유언과 같이 간곡하게 부탁하며 말하고 있다.
A. 엣사람을 벗어 버리라
우선 거듭난 자들은 악의 옷 어둠의 옷을 벗어 버리라고 한다.
이웃에게 귱훌의 마음이 없을 때 이웃을 해치는 악함을 행하게 된다.
남을 속이는 기만과 저 자신이 잘나 보이려는 외식함과 틈만 나면 남의 허점을 꼬집어 험담하는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고 한다.
악한 마음을 품고 있다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마음이 깨끗하여야 한다.
(약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마23: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거듭난 자들이라면 옛사람의 성품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의 성품을 입으라고 말씀한다.
(엡4:24-25)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골3: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우리는 빛의 자녀이다. 빛의 자녀는 신령한 젖을 사모하며 빛으로 나아가야 한다.
어둠을 비추는 한줄기 강한 밝은 빛으로 나아가며 빛의 자녀로서 빛의 갑옷, 의의 옷, 새사람의 옷을 입고 나아가야 한다.
(롬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늘 죄악 가운데 있는 우리는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이 밧새바와의 범죄를 깨닫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자신의 심경을 찬양하며 기도하였듯이 간구해 보자.
(시51:9-12)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본문말씀에 있는 세가지 곧 “1) 갓난아이와, 2)순전하고 신령한 젖과, 3)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을 통하여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B. 갓난아이
갓난아이는 누구일까?
베드로 사도는 1:3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또 1:23에서는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한 후에 2:2에서 거듭난 자를 갓난 아이라 표현하였다.
갓난아이들은 영적으로 거듭난 자들을 의미하며,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얻은 자들을 의미한다.
갓난아이의 특징은 무엇일까?
1)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갓난아이는 모든 것을 해주어야 한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입히고 먹이고 씻기고 누여서 잠재우는 것까지 모든 것을 일일히 해 주어야 한다.
지금껏 살아오며 이제는 조금은 아는 것 같다.
내가 때로는 원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나의 모습이 되기 까지는 내 힘과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음을 느낀다. “나의 힘으로 나는 할 수 있다”의 모습에서 이제는 “나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읍니다”를 삶에서 체험하고 깨닫는다.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밖에 없다. “나를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 아버지만을 의지할 수 밖에 없읍니다.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저를 지켜 주시고 악으로부터 건지옵소서”하며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며 의지할 수 밖에 없다.
2) 단순하다
갓난아이들은 배고프면 울고, 배불리 먹으면 기분 좋아서 방긋이 웃고, 아프면 아프다고 운다. 즉 기분의 표현이 솔직하여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가?
우리들이 항상 하듯이 다른 이들에게 나의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 포장을 해서 꾸민 모습으로 하나님께 표현하지는 않는지?
마음이 아프면 아프다고, 기쁘면 기쁘다고, 누구를 미워하면 미워하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하나님 앞에서까지 나를 꾸밀필요는 없지 않는가! 하나님은 이미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고 계신다.
우리들 자신의 삶을 볼 때 얼마나 복잡하게 보이는가.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도 모든 것이 엀히고 섥힌것 같이 보인다. 이러한 것들이 나를 하나님께로 나아감에 방해를 한다.
갓난아이처럼 단순해져야 한다.
그래야 나의 멍에를 벗고 대신 지신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걸어 갈 수 있다.
순전한 젖에 대한 갈망은 거룩한 행실이나 하나님을 경외함이나 신자들간의 사랑같이 마땅히 힘쓰고 애써야 하는 것이다.
나의 마음을 솔직히 단순하게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표현하도록 하자.
가식적인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필요는 전혀 없다.
다른 이들에게는 결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아버지께 고백하며 대화하자.
3) 본능적으로 어미의 젖을 갈망한다
갓난아이가 젖을 찿는 욕구는 당연하다.
짐승이 새끼를 낳게 되면 누가 가르치지 않았어도 스스로 새끼는 어미 젖이 있는 곳을 알아 기를 쓰고 어미 젖을 물려하고 어미는 새끼가 젖을 잘 물도록 도와준다. 그것은 짐승 안에 내재되어 있는 본능이다. 마찬가지로 갓난아이는 태어나서 태줄을 끊고 어미 젖을 물리면 빨아 먹기 시작한다.
갓난아이는 본능적으로 어미의 젖을 찿는다.
베드로는 마치 갓 태어난 어린아이가 엄마의 젖을 찿아 갈구하는 것처럼 영적으로 거듭난 자들이 성장하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말씀을 갈망해야 함을 강조한다.
갓난아이가 어미의 젖을 본능적으로 찿으며 어미의 품속에서 안전함과 평강과 어미의 사랑을 느끼듯이, 거듭난 자들이라면 생명이시며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며 주 안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매일 매일 간구해야 한다.
4) 거짓이 없다
갓난아이들이 거짖으로 젖을 달라고 표현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아프지도 않은데 얼굴을 찌프리며 아픈척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갓난아이들은 거짓으로 자신의 욕구를 채우지 않는다.
그랬던 갓난아이가 점점 커가며 어른이 되어가며 많은 거짓을 배우며 자신의 그릇된 욕심을 채우게 된다.
아마도 우리는 오늘도 수 많은 거짓에 노출되었으며, 거짓을 행하지나 않았는지?
하나님은 진리의 아버지이시기에 거짓을 미워하신다.
거짓이 더 이상 나의 친구가 되어 나를 해치지 않도록 거짓을 멀리 할 수 있도록 성령 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여야 한다.
5) 부모에게 반응한다
태어나서 어미 젖을 먹기 시작하고 옹알이를 하게 되면 갓난아이는 어미를 알아보고 반응하기 시작한다. 아이를 쳐다 보거나 자기 이름을 부르는 부모에게 손과 발을 버둥거리며 “엄마” “아빠”하며 반응하기 시작한다. 그것을 보고 부모는 기쁨을 느끼지 아니한가. 만일 아이에게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그 아이는 부모에게 근심을 가져다 준다. 혹 아이가 어디 아픈가 어디 잘못 된 것은 없는가 염려하게 된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반응해야 한다.
그동안 하나님은 우리를 수없이 부르시며 그 분의 임재를 알게 하시려 하셨지만, 우리들은 너무나 복잡한 이 땅의 삶에 치우쳐서 하나님을 향한 영성을 잊어 버려 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아무런 대꾸없이 또한 감정없이 대하여 왔다.
하나님께서 나의 이름을 부르시며 나를 찿으시는데 아무 표정 없이 가만히 있는다면 하나님은 탄식하신다. 부모가 자식의 이름을 앞에서 부르는데도 아무런 대꾸가 없다면 어디 잘못이 되지난 않았는지 걱정이 되어 탄식을 하지 않는가.
(롬8:26)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부를 때 이제는 반응하며, “주님 제가 여기 있읍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하며 나의 손과 발을 버둥거리며 나의 사랑을 표현해 보자.
주님은 그런 나를 보시며 얼마나 기뻐하실까!
갓난아이같이 모든 것을 주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단순한 삶속에서 주님만을 느끼며 나의 마음 있는 그대로 주님과 나누며 주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충만케 되어 하나님 아버지께서 마련하신 구원의 성산에 한걸음씩 나아가기를 간구하자.
C. 순전하고 신령한 젖 (Milk of the WORD)을 사모하라
젖은 신자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는 데 필요한 가르침 (초보적인 것과 더 높은 것)을 가르키며 하나님의 긍휼 또는 은혜를 나타낸다.
젖은 모든 신자들의 영적인 음식이다.
젖은 성장의 수단이며 성장의 결과는 사도 베드로의 표현대로 “구원”을 얻는다.
그럼 우선 어미의 젖에는 어떤 특성들이 있는 지를 생각해 보자.
1) 영양분
엄마의 젖에는 갓난 아이가 필요로 하는 모든 필수 영양분이 들어 있어 아이를 건강하게 성장하게 한다. 특히 갓난 아이가 태어나 처음 빨아 먹는 초유는 그 양이 그리 많지 않지만 갓난 아이의 몸을 나쁜 병균으로부터 지키는 모든 면역성분들이 들어 있다고 한다.
베드로 사도는 어머니의 젓보다 더 뛰어난 신령한 젓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베드로 사도는 “젖”은 몸에 생명과 성장을 나누어 주는 기능을 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지탱해 주는 하나님의 생명이라는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하며 순전한 젖을 마시라는 것은 “주” 자신을 맛보라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는 자의 관계의 친밀성을 보여 준다. [1]
원어 “순전한”의 뜻은 “속임이 없는” 또는 “악의가 없는”의 뜻이다.
또한 KJV는”신령한”을 “WORD”로 번역했다. 원어 “순전한”은 말씀으로 번역되는 Logos 에서 파생된 말로서 갓난아이가 먹는 젖은 곧 속임이 없는 진리이신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갓난아이가 어머니로부터 영양이 풍부한 젖을 공급받아 자라나듯이, 거듭난 성도들도 주님의 순전하고 신령한 말씀을 공급받고 자라나야 한다. 그래서 매일 말씀을 읽고 말씀안에 계시는 주님을 만나서 주님의 성품을 닮아 가며 성령의 열매를 맺는 거룩한 삶을 살며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야 한다.
2) 안도감(평안)
갓난 아이들은 따뜻한 어미 젖을 먹으며 아이를 품에 안은 엄마의 심장박동소리와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엄마의 사랑과 안도감과 평안을 느낀다.
우리들도 주님안에 있을때 그 분의 따뜻한 체온과 심장박동을 느끼는가?
주님품 안에서 참 평강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는가?
우리들은 조금만 힘이 들고 어려워도 마음이 어질어질해져 평안의 마음을 곧잘 빼았긴다. 평강 대신에 근심과 걱정이 내 마음을 가득 메우는 모습들을 우리들은 수없이 경험하였다.
엄마 품에 안겨 엄마의 규칙적인 심장박동을 들으며 잠이 든 갓난 아이와 같이 우리들도 주님 품에 안겨 고요하고 평안한 주님의 사랑을 느껴보자.
말씀을 읽으며 참 평강을 느껴보자.
말씀을 읽을 때 성령님 또한 나와 함께 계심을 느끼는가.
말씀이 이해되지 않아 도움을 구할 때 성령님께서 대답해 주시지 않던가!
말씀 안에는 주님의 숨결이 있다.
늘 말씀을 가까이 하자.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는지를 들어보자.
D.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야 한다
영적으로 잘 자라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칭의 곧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단회적인 사건이지만,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성장하는 것은 일생동안 이루어야 하는 과제인것이다. 신학적인 용어로 이 과정을 “성화”라고 표현한다.
아이가 성장하고 성숙해져 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할 때 가능하다.
(히5:13-14)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구별하는 자니라.
갓난아이가 성장하지 못한다면 그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갓난아이가 젖을 먹고 하루 하루 조금씩 커져서 어엿한 장성한 모습을 보는것이 부모의 기쁨일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도 자녀인 우리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시기를 원하신다.
젖을 먹으면 자라나야 한다. 얼마 후에는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열심히 먹고 소화도 잘 시키고 운동도 해서 단단하고 건강하게 자라나자. 그래서 어떠한 연단과 슬픔과 고통이 와도 주님의 도움으로 능히 이겨낼 수 있는 내성을 갖도록 하자. 그렇게 하는 것이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 나아 가도록 할 것이다.
말씀을 정리하면
거듭난 우리들은 언제든지 갓난아이와 같이 되어서 순전하고 신령한 말씀을 의지하며 사모해야 한다.
말씀으로 변화되어 온전한 구원을 이루는 성화의 과정을 잘 마치자.
장차 우리 모두가 세상의 일들을 다 마치고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칭찬받는 주의 자녀들이 되었음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늘 세상의 소욕을 갖고자 하는 헛된 열정이 끊임없이 솟아 납니다.
거짓과 교만과 정욕으로 인해 냄새나는 옛사람의 옷을 입고 있읍니다.
엮겨운 냄새나는 악한 것들을 이제는 벗어 버리고 새사람의 옷을 입으려 합니다.
저를 도와주옵소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갓난아이와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며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라고 하십니다.
갓난아이와 같이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주님만을 의지할 수 밖에 없읍니다 .
항상 겸손하며 단순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제 안에 있는 세상의 찌꺼기들을 성령의 소멸의 불로서 태우시고,
생명이며 진리이신 주님의 말씀의 은혜안에서 변화받아 늘 새롭게 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구원의 길을 이루어 가게 하옵소서.
신령한 젖인 말씀과 성령충만함을 사모하며,
신령한 젖을 먹고 마실때 저에게는 새 힘이 솟아나며
하나님의 사랑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평강 가운데 들어 가기를 원합니다.
에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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