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19일 일요일

영적인 은사 방언


(고전14:1-5)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지적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많은 영적인 은사들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고린도 교인들은 주님을 잘 믿는다 하면서도 영적 교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사도바울은 많은 은사를 갖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고 권면하며 이어서 방언과 예언에 대하여 말을 한다.
다시말해 고린도 교인들은 성령의 은사의 큰 특징인 방언과 예언을 무분별하게 사용함으로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하였다. 그래서 방언과 예언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사용하여야 하는 지를 말하며 자신과 교회의 덕을 세우는데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이라면 어느 누구나 방언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방언을 소망하여 방언을 받으려고 열심히 기도원이나 부흥회를 따라 다니는 성도가 있다.
방언을 받고픈 소망이 있지만, 방언 받는 것에 두려움을 갖기도 한다.
또 어떤 성도는 방언을 이단시하기도 하여 무조건 거부하기도 한다.
어떤 교회는 방언을 최우선시 하는 교회도 있지만 또 반면에 방언을 하지 못하게 하는 교회도 있다.
그렇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방언을 금하지 말라고 하며 또한 교회와 자신의 덕을 세우는데 사용하라고 말한다. .
 
지금까지의 나의 경험에 의하면 방언은 나의 삶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내게는 너무나 귀한 선물인 영적인 은사라 생각한다. 제발 방언 받기를 거부하지 말고 방언 받기를 사모하는 성도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방언을 이미 받았다면 방언을 풍성히 사용하여 영적으로 잘 무장된 성도가 되었으면 한다.
 
방언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알아보자.
(11: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창조시대에 온 땅의 언어가 지금과 같이 여러가지가 아니라 하나인 언어를 사용하였다. 그래서 어딜 가나 서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창조거민들은 하나님을 거역하여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 성을 건설하며 이를 기념하기위해서 바벨탑을 쌓는다. 이를 여호와께서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11:6-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이후로 사람들은 곳곳으로 퍼져나가 여러 민족이 되어 각각의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유월절의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3일후에 부활하셨다. 그리고 40일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1:3)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신후 승천하시고 그리고 약속하신대로 오순절날에 마가 다락방에 모인 성도 120명에게 성령강림으로 성령세례가 임함으로 각각의 방언으로 말함으로 서로는 무슨 말을 하는지를 알게 하였다. 바벨탑에서 흩으신 언어를 다시 하나로 합치셔서 주의 자녀들이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신 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2:2-4)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구약시대에는 성령은 각 사람에게 임하지 않았다. 오직 특정한 사람에게 임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하였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인해 드디어 급변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오순절 날에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강림하신 것이다.
이제는 누구도 예외없이 주님의 자녀라면 성령님이 임함으로 예수님의 영이 임한 교회가 되게 하사 구원을 얻게 하셨다.
 
성령님께서 임하심으로 주님은 내 안에 계시고 또한 내가 주님안에 살게 된 것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리고 또 놀라운 일은 성령의 임함으로 방언을 말할수 있다는 것이다.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각각의 나라에서 온 120명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복음에 대하여 자세하게 들을 수가 있었고 이로 말미암아 이들은 증인으로서 예수님의 회개의 복음은 눅24:47-48의 말씀과 같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간다..
(24:47-48)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그런데 한가지 생각해 볼 것은 행2의 방언이 꼭 우리가 쓰는 다른 나라의 방언을 의미하는 가이다.
오순절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하심으로 8절에 그들은 자신의 언어로 들었다고 하는데 이는 성령이 그들의 마음에 통역의 은사도 함께 주어 그들은 방언의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이해하였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는가.
 
하여튼 행2장에서 말하는 방언이란 다른 나라의 방언을, 그리고 고전14장에서 말하는 방언은 영적인 방언이라고 성경학자들은 말한다.
이것을 통하여 방언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음을 알게 된다. 하나는 행2에 나타난 대언방언이며 또 다른 하나는 고전14장에 언급된 알아 들을 수 없는 대신방언이다.
 
 
1.      방언은 신령한 은사이다
(고전14: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1: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사도바울이 말하는 신령한 것들 혹은 신령한 은사란 방언과 예언의 은사를 말하며 이는 믿는자들을 위한 표적이다.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방언은 성령의 임함의 증거이다,
(10:44-47)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더라. 이에 베드로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품을 금하리요 하고
 
베드로가 예수님의 복음에 대하며 전파할 때에 성령께서 임하셨다. 모든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임함으로 그들은 방언을 하였다. 방언은 성령세례를 받은 증거인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서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우선 죄사함을 얻게 하는 예수님의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
 
방언은 성령세례의 증거로 나타난다. 성령세례가 임할 때 방언을 받게 된다. 사도바울이 안수할 때에 성령세레가 임하여 방언과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
(19:1-7)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2.     방언은 영적인 비밀이다
(
고전 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방언기도는 알아 듣는 자가 없다.
내 마음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고 성령께서 하시는 기도이기에 오직 하나님 만이 알아 들으신다.
방언은 사탄은 알아 듣지 못하는 영적인 비밀을 간직한 기도이다.

만일 사탄이 나의 기도의 내용을 안다면 얼마나 방해공작이 심하겠는가.
Drama를 보면 우연하게 남의 비밀의 이야기를 엿든는 장면이 나오면 어김없이 그 비밀을 자신의 어떤 유익을 위해 이후에 이용하는 것을 보게 된다사탄의 졸개들은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가 어떤 약점이 보이면 나를 넘어뜨리려고 나의 약점을 사용하여 나를 넘어 뜨리려고 한다. 내가 하는 모든 말을 듣고 방해를 한다.
 
방언기도를 마귀들은 알아 듣지를 못한다.
성령은 나를 위해서 비밀의 언어인 방언을 사용하셔서 하나님 아버지와 대화를 하신다.
나의 속사람의 사정을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는 너무나 잘 아시기에 나를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를 해 주신다.
 
(8:26)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가당신은 언제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당신 자신을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는 것을 느껴 보았는가?
 
방언을 하기 전에는 꺠닫지 못했다
그저 성령께서 나를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하시는가 보다 하고 생각하였을 뿐이다
그런데 방언을 받고서 방언으로 기도하다보면 아무런 이유없이 애통해하며 울면서 기도할 때가 있다그러면서 느끼는 것이 “아! 바로 이것이 성령께서 나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었다.
 
성령님께서는 나의 속사람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아신다
내가 얼마나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성격을 가졌으며, 더럽고 냄새나는 죄악으로 가득차 있지만, 그래도 한 구석에는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신다. 그러기에 성령께서는 내가 천국으로 잘 인도되도록 내가 더욱 더 빛의 자녀답게 살 수 있도록 나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하시며 나를 위하여 간구하신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하나님의 전무후무한 기적의 사건들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증인들이었지만, 얼마 못가 그들은 옛사람의 버릇들이 다시 나타나며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기며 패역한 일들을 거침없이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대신에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따뜻한 불기둥으로 지켜주셨다. 목이 마를까 돌을 깨뜨려서 물을 주셨으며, 광야길을 가는 동안 춥지 말고 더위에 살이 타지 말라고 헤어지지 않는 옷을 입혀 주셨으며, 발이 거친 돌맹이에 다치지 말라고 헤어지지 않는 신발을 신기시고 보호하셨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애가 타셨을까거듭해서 나의 말과 명령을 거역하는 자에게는 진노의 심판을 내리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얼마못가 조금이라도 잘못을 회개하는 백성들을 보시면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께서는 재앙의 심판의 마음을 돌이키시고 깨끗하게 잊어 버리시고 축복하시며 다시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다.
 
우리 역시 이스라엘 백성과 무엇이 다른가.
늘 죄악 가운데 있는 나
그런데 한가지 다른 점은 바로 내 안에 주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계신다는 사실이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내가 죄악 가운데 있을 때마다 나를 불쌍하게 여기시며 측은하게 여기시며 나를 위하여 대신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중보하시면서 나를 구하시려고 하신다는 것이다.
 
또한 방언은 하나님을 높인다
(10: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내가 하는 방언의 내용을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방언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 방언의 내용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3.     방언은 자신의 덕을 세운다
(고전14: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자기의 덕을 세운다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덕”의 원어에는 “집을 세운다”의 뜻을 갖고 있다
방언을 하게 되면 내 안에 믿음의 집이 견고하게 세워지게 된다. 방언에는 영적인 힘이 있어 나의 믿음의 집, 영적인 집을 잘 세울수 있게 해 준다.
 
나를 내가 잘 안다. 얼마나 죄악으로 가득차 있는지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죄악 가운데 있는 내가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면 나를 깨끗하게 정화시켜 주신다.
 
방언은 나를 올바르게 세워준다.
방언은 나의 덕을 세우게 하여 나를 반석이신 주님의 터위에 나를 견고하게 세우도록 도와준다.
방언은 나의 심령을 강하게 하여 주며 담대하게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역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믿음을 더하여 준다.
 
마귀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나의 신앙의 집을 허물어 뜨리려고 한다.
매일 매일 방언을 통하여 나의 믿음이 견고한 반석위에 서도록 해야 한다. 방언은 다른 사람에게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닌, 내 신앙의 집을 잘 지우도록 도와준다. 이처럼 내게 너무나 유익한 성령의 은사인 방언을 받도록 하자
 
4.     방언을 받으라
(고전14: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고전14: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사도바울은 그 누구보다 더 고난과 환난을 받은 주님의 종이며 신약성경의 1/3이상을 쓸 만큼 주님께서 쓰신 귀한 종이다. 그런 사도 바울이 자신이 다른 이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한다.
방언은 사도바울을 지켰고 영적인 지혜와 계시와 예언과 능력과 감사를 준 귀한 영적인 보물이었다. 그러기에 사도바울은 방언을 통하여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주님의 마음을 깨닫고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고전14:39) 그런즉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시도바울은 방언을 받으라고 권면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지금은 때가 악하므로 세월을 아끼라면서 성령으로 가득 채워져 시와 찬양, 신령한 노래로 화답하라고 강조한다.
(5:16-20) 세월을 아끼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지금은 때가 악하다. 내일 어떤 일이 내게 일어날 줄을 모른다더 늦기 전에 방언을 하도록 하자. 그래서 나의 유익이 되며 또한 교회에 덕을 세우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자.
 
그렇다면 누가 방언을 할 수 있는가?
성도라면 누구나 방언을 할 수 있다.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믿는 사람들에게 따르는 표적의 하나가 새 방언을 말한다는 것이다. 새 방언은 어떤 언어가 아니라 지금껏 알지 못하던 하늘에 속한 언어이다.
 
그런데 왜 방언을 거부하는가?
많은 이들이 방언을 하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온갖 선입견을 갖고 있어서 방언을 하지 못한다.
마귀방언을 받으면 어쩌지 하면서 두려워하며 방언을 거부하기도 한다.
그런데 두려운 마음을 주어 신령한 하나님의 언어인 방언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마귀의 방해공작이다.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방언을 원하는 거듭난 성도가 마귀방언을 하도록 결코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것은 선하고 좋은 것이다.
(딤후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방언을 거부하지 말고 아무런 두려움없이 방언 받기를 사모하자.

어떻게 방언을 하게 되는가?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방언을 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방언을 말하며” 하신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혀를 움직이면 방언이 나온다.
 
방언을 tongue이라고 한다.
방언은 “(28:11)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과 같이 더듬는 입술이다.
성령께서 나의 혀와 입술을 사용하셔서 하시는 것이 방언이다. 믿음으로 혀를 성령께 내 맡겨 내 스스로 입을 열어야 한다. 혀를 나의 의지로 통제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방법
(고전 14:14-17)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그런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방언의 특징이 혀를 사용하기에 방언을 하면서 나의 생각은 방언하는 혀와는 다르게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지적하였듯이 입술은 방언을 하면서 나의 마음 역시 주님께 나의 생각을 고정하고 기도하는 것이 올바른 방언으로 기도하는 방법이다.
입술은 방언을 말하고 마음 또한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아뢸 것을 아뢸 때 더욱 풍성한 삶의 열매를 맺을 것을 믿는다.
 
5.      어떻게 방언을 사용해야 하는가?
(고전14:5)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만일 강단에서 방언으로 설교를 하면 누가 알아듣겠는가.
교회에서 방언을 할 때에는 질서있게 해야 하며 교회에서 방언할 때에는 반드시 통역을 하라고 권면을 한다.
 
(고전14:26) 형제들아.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고전14: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교회안에서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
방언을 한다고 함부러 나대서는 않된다.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영적으로 잘 무장한 성도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영적으로 무지한 성도들도 있다. 방언이나 예언이나 이런 영적인 은사들은 반드시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질서있게 사용되어져야 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성경은 저희의 믿음의 신앙의 삶에서 방언이 중요함을 가르칩니다.
방언은 저를 영적으로 단단하게 세워 줍니다.
반석이신 주님 안에서 집을 잘 세우도록 도와줍니다.
 
주님께서는 방언을 금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는데도
많은 교회에서 많은 교인들이 방언을 받지 못하도록 거부를 합니다.
성경을 잘 못 받아드린 저희들을 용서하옵소서.
 
방언을 사모합니다.
저의 영적인 힘을 길러주는 방언을 통하여 주님의 영성과 마음을 조금씩 닮아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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