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11일 일요일

목에 가시같은 여리고 성을 만나거든

(6:1-7)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 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눈 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가라 하고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그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갈지니라 하니라.
 
  우리가 많이 들은 여리고 성에 대한 이야기.
여리고 성의 함락은 BC1400년경의 사건이니 무척이나 오래 전의 이야기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시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여리고 성의 사건은 우리의 상식과 지혜를 뛰어 넘는 여호와의 적극적인 개입이셨다.
 
지금의 우리에게 여리고 성은 무엇을 의미할까?
제가 생각할 때 여리고 성은 목에 걸린 생선가시와도 같다고 생각한다목에 생선가시가 걸리면 얼마나 괴로운가캑캑거려 보지만 쑥 내려 가지 않고 식도를 찌르기에 괴로운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때로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여리고인 어려운 상대
크게 우회해서  돌 아갔으면 좋겠는데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걸리고 또한 피한다고 해서 어려움이 나를 떠나 가는 것이 아니라 두고 두고 목구멍에 걸린 가시와도 같아 빼내기도 어렵고 그저 내 버려 두자니 침도 제대로 못 삼키도록 아프게 하며 나를 괴롭힐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깨뜨리고 가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상대이다. 난공불락의 성인 것이다.
 
  430년간의 애굽에서의 종의 생활 그리고 43년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앞에 있는 요단강을 건넜다. 그리고 난공불락과도 같은 여리고 성을 만난다. 우리가 잘 알듯이 이스라엘은 여리고 성을 매일 한번씩 여섯날을 돈다. 그리고 마지막 7일째에는 일곱바퀴를 돌고 모두 큰 소리를 외치자 성벽이 무너져 내려 여리고성은 함락이 되고 모든 사람과 가축들은 몰살을 당한다.
 
여리고 성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매우 견고하게 지어진 성이었다.
여리고 성이 고고학적으로 발굴이 되었는데 성의 둘레는 약 600m이며 높이가 4m인 이중 성벽으로 만들어진 매우 견고한 성이었음을 밝혀 내었다. 이스라엘이 이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인명피해를 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며 시간도 많이 지체해야 하는 매우 견고한 성이었다.
 
이 성은 이스라엘의 허리에 해당하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어서 만일 이스라엘이 어렵다고 해서 이 성을 포기하고 그저 스쳐 지나 갔다면 후에 두고 두고 이스라엘을 괴롭혔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중부에 자리하고 있는 여리고 성을 함락시킴으로 인해 가나안 땅에 중요한 교두보를 만들수 있었고 남과 북의 대적들을 차례로 진멸할 수 있었다.
 
  여리고 성에 대한 말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나의 삶 가운데서 목에 걸린 가시와도 같아 어쩌지도 못하는 께림직한 여리고 성을 만났는가?
오늘의 말씀을 생각해 보자.
 
A.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과는 다르다
(6:2) 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여리고성은 이스라엘이 다가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만반의 전쟁 준비를 마치고 성문을 굳게 닫아 걸고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준비를 다하고 기다리고 있는 여리고 성에 대한 전쟁 작전이 우리가 생각할 때에 말이 되지 않는다. 그저 성 주위를 칠일 동안 도는데 처음 엿새 동안은 하루에 한 바퀴씩, 그리고 마지막 일곱 째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난 후에 큰 소리로 부르는 것이 작전의 전부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성 주위가 600m라고 하니 성 주위를 크게 돌면 약 1,5000m정도가 된다고 보면 한 바퀴 도는 데 천천히 걸어도 약 60분이면 돌 것이다. 하루에 60분씩 육일 동안 걷고 마지막 날에 일곱 바퀴를 돌아야 해서 새벽 일찍부터 걷기 시작했으니 그래도 늦은 오후에는 모두 마쳤을 것이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하여 소리치는 것이 작전의 전부이었다. 전쟁작전이라고 할 수 없고 마치 운동 plan과도 같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 인간과는 전혀 다르다.
(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가보다 높음이니라.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수준에서 이해하며 판단하려고 하는가?
올림픽의 gold medalist와 나와는 모두가 인정하는 도무지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하물며 하나님과 나와의 차이가 어떠하겠는가!
 
제발 내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여호와의 생각도 다를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왜 하나님을 나의 수준으로 끌어 내리려고 하는가그것이야말로 신성모독이 아니겠는가!
내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끝과 크기를 알 수 없는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주인이시지 않는가어찌 그 분의 생각과 나와의 생각이 같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여호와께서 행하시려는 것을 어찌 우리가 짐작할 수나 있는가?
 
나의 힘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으로 나를 감싸 안으시고 나를 가로막는 여리고를 깨실 것이다.
그래서 내게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축복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여리고를 허락하신 이유가 있다.
여호와께서는 나를 훈련시키신후 새로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으로 반드시 인도하실 것이다.
 
 
B.     열린 마음의 믿음
(11:30)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칠일 동안 아무 말없이 여리고 성을 돈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하실 것을 열린 마음의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애굽을 나온 2세대들이지만 1세대로부터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귀아프게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43년의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광야 생활을 체험하고 두 눈으로 기적적으로 요단강이 열리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요단강을 건넜다. 그리고 처음 대하는 적인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전쟁이라고 믿었다. 굳게 믿었기에 자신의 지도자인 여호수아가 명한대로 아무말 없이 묵묵하게 여리고 성을 칠일 동안 돌았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째 날 일곱 바퀴를 돌고 난 후에 그들은 일곱 제사장들의 일곱 양각나팔이 크고 길게 불때 백성들은 전력을 다하여 고함을 칠 때 견고한 성벽이 일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일곱은 완전수라고 하지 않는가. 그 일곱이나 세번 사용되었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믿음을 갖고 있는 자들에 하나님의 기적적인 간섭이었다.
 
열린 마음의 믿음은 나의 상황을 바꾸며 나의 삶을 바꾼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닫힌 마음으로 여호수아의 말을 받아 들이지를 못했다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견고한 여리고성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기적을 체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내게도 있는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는데 왜 두려워하고 마음에 평강을 갖지 못하는가.
내 마음이 닫혀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역사하시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내 마음이 닫혀 있다면 내게 다가올 미래를 볼 수 없다.
 
오늘 나를 어렵게 하는 여리고를 만났지만 이 여리고를 통하여 나를 더욱 더 견고한 주님의 자녀로 빚으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기에 이미 여리고가 무너졌음을 왜 믿지 못하는가.
 
주님의 자녀로서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임마누엘이신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복에 복을 받은 자이다.
 
나의 마음은 주님을 향하여 열려 있는가?
그런데 왜 본질인 주님이 아닌 비본질에 그리도 눈에 불을 키고 난리 법석을 치는가.
누가 내 자존심을 건드리면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고 분을 품고 삐지고 마음에 한을 품는다. 내 자존심이 주님보다 우선하는가?
누가 내 소유를 조금이라도 가져 가려면, 어떻게든 다시 찿아오려고 발버둥을 친다.
지금 당장이라도 죽으면 그것을 가져갈수나 있는가조그마한 재물이 주님보다 우선하는가?
누가 내 명예를 떨구려 하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무어그리 명예가 그리 중요하던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식도 없이 스러져 버릴 명예가 아니던가. 명예보다 주님의 명예가 중요하지 않는가.
세상의 것은 헛된 것이라 수없이 들었지만, 당장 그 헛된 것이 내게는 소중하다고 여기지 않는가.
 
나의 마음은 주님을 향하여 활짝 열려 있는가?
주님을 믿는 믿음은 나의 삶을 변화시킨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내가 만일 주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주님께 감사하자.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나를 낮추게 할 것이다.
내 안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크면 클수록 내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를 온전하게 믿고 의지하는 믿음은 나를 가로막는 여리고성을 무너뜨린다.
나를 가로막는 목에 가시같은 여리고성이 있는가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떤 믿음을 갖고 있는가 살펴 보아야 한다.
그 길만이 내가 사는 길이요, 나를 가로막는 여리고 성을 깨뜨리는 비결일 것이다

 
C.     도는 순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돌아야 하는 순서가 중요하다.
(6:6-7) 눈 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가라 하고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그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갈지니라 하니라.
 
제일 앞서 무장한 군인들이 가고 이어서 양각나팔을 부는 일곱 제사장을 가고 뒤를 따라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가고 그리고 백성들이 뒤를 이었다.
 
1.     중심에 있는 언약궤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의 가운데는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있었다.
언약궤는 백성들 앞에서 나아갔고 요단강을 건널 때에도 언약궤는 앞에 서서 나아갔다.
언약궤에는 십계명과 만나가 든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다. 이는 성육신하신 주님을 의미한다. 십계명은 말씀이신 주님을, 만나는 육신으로 오신 주님을, 싹난 지팡이는 부활의 주님을 의미한다.
 
언약궤가 앞서 나아갔다는 것은 나의 삶에 부활이요 생명이시며 말씀이신 주님을 나의 삶의 중심에 모시면서 나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그럴때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하심과 섭리가 나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나를 가로막는 여리고 성을 만났는가?
그렇다면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살펴 보아야 한다.
나의 삶의 중심에 과연 주님께서 계시는지를!
나의 삶 가운데 주님의 말씀이 나와 가까이에 있는지를!
단언컨데, 주님께서 내 안에 중심으로 계시지 않으시면 나를 가로막는 여리고성을 결코 무너뜨릴수 없다.
 
 
2.     양각 나팔과 함성
마지막 날에 제사장들은 양각나팔을 길게 불었다.
10:1-10에 어떻게 나팔을 만들며 언제 나팔을 불어야 하는 지를 설명한다.
(10:1-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은 나팔 둘을 만들되 두들겨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영을 출발하게 할 것이라….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나팔을 부는 것은 여호와께 나의 사정을 알리기 위함이다.
곧 기도와 찬양을 의미하지 않겠는가.
여호와여 제가 여기 있사오니 저의 간구를 들으소서.
저의 사정이 이러 저러하니 저를 구원하소서.
저를 둘러싼 적들이 너무나 커서 억압을 받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저를 구원하소서.
나의 사정을 여호와께 아뢰자.
내가 갖고 있는 나팔을 길게 불어 여호와께 아뢰자.
나를 가로막는 여리고성은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하심으로 무너질 것이다.
주님께서 들으시고 고쳐 주실 것이라는 열린 마음의 믿음을 갖고 나팔을 크게 불자.
나를 사랑하는 주님께 내가 갖고 있는 나팔을 크게 불어 주님께 나의 사정을 고하자.
 
 
D.     진멸하라
(6:21)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여리고성이 외적인 요인이라 생각하는가!
아니다 내 안에도 나를 가로 막은 여리고성이 있다. 곧 내안에 있는 온갖 파리가 들끓는 더럽고 추악한 죄성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의 모든 호흡하는 것을 진멸하라고 하셨듯이 내 안에 남아 나를 괴롭히는 모든 죄성들을 뿌리채 뽑아서 진멸해야 한다. 그래야 내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받을 수 있는 준비가 된다.
 
여리고성 안에는 온갖 지저분하고 구역질 나는 냄새나는 죄들로 가득하다.
그것이 곧 나의 마음안에 있는 여리고이지 않는가!.
내 안에 있는 죄성들은 이미 주님의 거룩한 보혈로 씻김을 받았다.
주님 앞에 나아가 나의 죄성들을 제거하기를 원한다고 고백하자.
주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그 말을 듣고 즉시 역사하실 것이다.
나의 두 눈으로 내 안에 있는 죄성들이 낱낱이 꺼집어 내어져 성령의 불로 소멸되는 것을 볼 것이다.
 
 
 
여리고성은 나의 삶에서 만나는 난공불락과도 같은 장애물을 의미한다.
피해갈 수 없는 꺼림칙한 목에 걸린 가시와도 같은 여리고 성재정적인 문제일 수 있고, 사람과의 관계일 수 있고, 건강의 문제일 수 있고, 불가항력인 자연재해를 의미할 수 있다. 만일 그런 여리고성을 만났다면 이 본문의 말씀을 기억하고 능히 헤쳐나갈 수 있는 담력과 마음의 위안을 갖자.
 
혹 여호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나를 가로막던 여리고성은 무너지지 않겠는가.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주님의 임재와 능력과 권능이 내게도 있으니 얼마나 나는 축복된 성도인가
 
 
여리고 성을 만났는가!
나는 너무나 힘이 들어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여리고라고 말하지만, 여호와께서는 결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신다.
나의 힘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으로 나를 감싸 안으시고 나를 가로막는 여리고를 깨실 것이다.  그래서 내게 약속하신 가나안의 축복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여리고성이 내게 주어진 것은 여호와께서 나를 훈련하는 과정일 것이다.
 
여리고성을 만난 내게 어떤 믿음이 있는가.
나는 과연 주님을 향한 열린 마음의 믿음을 갖고 있는가?
모든 것을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 여호와를 온전하게 믿고 의지하는 믿음은 나를 가로막는 여리고성을 무너 뜨릴 것이다.
 
나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나의 생명을 요구하는 여리고성을 만났는가?
여리고 성을 돌 때에 정해신 순서가 있었다.
양각나팔을 불며 언약궤가 뒤를 따랐다.
 
오직 여호와만께서만이 하실 수 있다고 생각이 드는가?
왜 망설이는가!  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시지 않겠는가!
못나고 부족하지만 그래도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이요 딸이지 않는가?
지금 여리고 성을 만나 늦었다고 나는 생각을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래도 지금이 은혜받을 만한 때이니 내게로 나오라고 말씀하시지 않는가!
주님께로 나아가 나의 사정을 여호와께 아뢰자.
내가 갖고 있는 나팔을 길게 불어 여호와께 아뢰자.  주님께서 들으시고 고쳐 주실 것이라는 열린 마음의 믿음을 갖고 나팔을 크게 불자.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가운데는 말씀이 있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 생명의 말씀. 능력의 말씀. 은혜의 말씀. 보호의 말씀이 내 삶의 한 가운데 분명하게 좌정하고 있어야 한다. 말씀 가운데 있는가?
 
 
여리고성은 바로 내 마음안에도 있다.
여리고성 안에는 온갖 지저분하고 구역질 나는 냄새나는 죄들로 가득하다.  그것은 곧 나의 마음안에 있는 여리고이지 않는가!.
내 안에 있는 죄성들은 이미 주님의 거룩한 보혈로 씻김을 받았다.
주님 앞에 나아가 나의 죄성들을 제거하기를 원한다고 고백하자.
주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그 말을 듣고 즉시 역사하실 것이다.
나의 두 눈으로 내 안에 있는 죄성들이 낱낱이 끄집어 내어져 성령의 불로 소멸되는 것을 볼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제 삶에 도저히 넘어 설 수 없는 여리고 성을 만납니다.
왜 제가 여리고 성을 만났는지를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납득도 가지 않습니다.
또한 이 여리고성을 도무지 저의 힘으로는 넘어설 수가 없읍니다.
이 여리고성을 통하여 저를 훈련하시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느끼지만 제게는 너무나 버겁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저를 가로막는 여리고는 결국 깨어질 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저를 사랑하시는 여호와께서 저를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힘과 능력이 제게도 임할 것을 저는 믿습니다.
 
여리고성을 만나거든 저의 믿음을 다시 점검할 수 있게 하옵소서.
저의 믿음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확신하게 하옵소서.
 
여리고 성을 만나거든 기도의 불을 다시 붙일 수 있도록 저를 도와 주옵소서.
제 안으로부터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성령의 불이 훨훨 타오르며 제가 드리는 주님 뜻대로 드리는 기도의 향이 하나님 보좌에 상달되어 응답을 받아 저를 가로막는 여리고를 깨뜨리게 하옵소서.
 
늘 말씀안에 거하여 언제 만날지 모르는 여리고를 준비할 수 있도록 말씀을 사모하는 은혜를 주옵소서.
늘 말씀을 사모하며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알며 주님의 심정을 닮아가도록 인도하옵소서.
 
제 안에는 아직도 여리고의 잔당들이 여기저기 제 마음의 깊숙한 곳에 숨어 있읍니다.
냄새나고 불결하고 더러운 죄악의 습성들을 멸절하기를 원합니다.
저를 도와주옵서서.
 
주님을 쫒아 가는 여정 가운데 목에 걸린 가시와도 같은 여리고를 만나거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하옵소서.
제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점검하는 기회로 삼아 버릴 것은 버리고 다시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을 향하여 다시 나아갈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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