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5:2-1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였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길갈이란 장소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님은 왜 우리에게 ‘길갈’이란 장소를 예비하셨을까?
우리의 인생길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이며 축복의 장소이다.
길갈은 요단강을 건너 있는 장소이며 여리고 성으로부터 약 3Km 떨어져 있는 곳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드디어 40년간의 광야생활을 끝내고 요단강이 멈추고 강 가운데로 난 마른 땅으로 건너는 기적을 체험하고 건너간 곳에 진을 친다. 그리고 그곳의 이름을 길갈이라 명한다.
길갈의 뜻은 5:9에서와 같이 ‘애굽의 수치를 떠나가게 하였다’ 이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요셉 이후에 약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였다.
긍지와 자긍심을 가져야 할 하나님의 백성에게 애굽 땅에서 종살이를 하였다는 것은 수치였다.
수치가 떠나가도록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준비시키시고 다스리셨다.
애굽에서 자의반 타의반 끌려 나왔지만 아직도 그들의 마음에는 종의 타성이 남아 있어 애굽을 동경하며 애굽의 문화와 종교와 유산을 동경하는 습성이 남아 있어 그것들을 제거하고 선민으로서의 자존감을 회복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40일이 걸리는 광야길을 40년을 가게 하시면서 고칠 것은 고치시고 버려야 할 것은 버리게 하시며 이스라엘 자손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훈련시키셨다.
무엇보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시며, 만나와 메추리를 먹이시며, 바위를 터뜨려 물을 먹이시며 인도하신 40년의 광야생황를 통하여 오직 의지하고 도움을 받으실 분은 여호와 하나님 이심을 알게 하셨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호와의 임재를 나타내는 성막이 있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모세가 성막에 들어가 있는 동안 그곳을 향하여 서서 존경심과 경외심을 나타내었다. 때
로는 시험에 빠져서 여호와를 불신하며 배역하는 죄를 지음으로 여호와의 진노의 재앙의 심판을 겪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들 마음의
중심에는 여호와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서 여호와의 섭리에 감사하며 여호와께 다시 돌아 올 수 있었으며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시고
다시 자신을 섬길 수 있는 은혜를 베푸셨다.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나는 시점이 있다.
이제 400년간의 애굽 생활과 40년의 광야 생황를 종지부를 찍는 곳에 다가왔다.
모든 수치가 떠나가는 기억에 남는 시간이 온 것이다.
그 곳 길갈에서 이스라엘은 기억에 남는 두 가지를 경험한다.
1. 할례를 행함
(수5: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을 떠나 홍해를 여호와의 기적적인 간섭하심으로 건너기 전에 준비한 것이 있는데 할례를 받은 것이다. 애굽 땅을 떠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임을 표시하는 할례를 행하여 비록 40년의 광야길을 가며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향하여 한발 한발 내딛게 하셨다. 40년의 광야길을 가면서 이들 모두는 죽었다. 그리고 마침내 요단강을 건넘으로 광야길을 끝냈다. 그리고 약속의 땅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전에 마음을 다짐하며 할례를 행하였다.
할례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다.
(창17:8-12)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표징이니라.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이며, 할례를 받는 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표징이다.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자녀가 언약 관계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할례란 양피를 베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힘의 근원을 상징적으로 자르는 일을 통하여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출17: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표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할례를 거부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자신의 선택함으로 거절한 것을 의미하며 이는 나아가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한 자이며, 하나님의 힘이 아닌 내 힘에 의지하여 사는 것을 의미한다.
할례 받기를 거부하는 자는 하나님의 언약을 거부하는 행위이기에 여호와께서는 이런 자를 끊으신다.
아브라함과 언약하신 하나님의 축복이 이제 임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은 광야를 통과한 후 가나안 땅의 입구에 있는 길갈에 도착하였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신실하신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약속의 성취가 이루어 진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여호수아는 온 이스라엘의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하며 여호와의 약속을 상기하며 자신들이 여호와의 축복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세상에 공표를 한다.
할례는 육체에 행한 것 뿐 아니라 내 마음의 할례도 포함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내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았다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신10: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마음에 할례를 행하심은 주님께서 주신 가장 큰 계명을 지키기 위함이다.
(신30: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그렇다면 누가 내 마음의 할례를 행하시는가?
마음의 할례는 주님께서 해 주신다.
(골2: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주님의 자녀에게는 주님의 영이신 성령을 내 마음에 보내 주셔서 내 마음에 있는 수치 곧 죄의 속성들을 할례를 통하여 제거해 주심으로 참다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 주님의 할례를 통하여 나의 겉 모양뿐만 아니라 내 안에 깊게 자리잡은 나를 옭아매며 수치롭게 하는 죄를 짤라 내어 주님의 거룩함으로 나아가게 한다. 나의 깊은 마음까지도 온전히 하나님께 속한 참 백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를 얽매고 있는 수치가 벗겨지는 것을 주님께서는 기뻐하신다.
죄에 종속된 노예근성을 떹쳐 버리고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는 날마다 성령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
할례를 받기 위해서는 날카로운 수술칼로 도려내야 한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5:2에서 부싯돌로 칼을 만들라고 하셨듯이 나 또한 내 안에 있는 죄악의 표피들을 도려낼 날카로운 칼이 있어야 한다. 날카로운 칼, 곧 나의 혼과 육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 말씀의 능력이 내게 임했을때 내 안에 있는 환부들은 제거될 것이다. 성령의 불로 숨겨져 있는 죄성들을 다 태워 소멸하는 할례를 통하여 나는 거룩한 주님의 자녀로서 준비가 될 것이다.
2. 만나가 그침
(수5:12)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요단강을 건넌 후에 길갈에 진치며 할례를 받았다.
그리고 광야생활을 끝내고 첫번째로 유월절 의식을 치루며 그 곳에 난 소산물을 먹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 40년 동안 매일 새벽이면 내렸던 육신의 양식인 만나가 그친다.
만나는 광야생활을 시작하며 굶주리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양식이다.
(출16: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훌16:31) 이스라엘 백성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출16:35)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으니 곧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이스라엘은 만나를 통하여 굶어죽지 않고 광야를 통과할 수 있었다.
광야를 통과하며 수많은 전쟁을 치뤘다. 전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양식과 물의 조달일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은 양식과 물에 전혀 걱정없이 전쟁을 치룰 수 있었다. 아마 그것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여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길갈에서 만나가 그쳤다.
아마도 이스라엘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양식이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를 때에 맞춰 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하며 또한 자신의 땀과 노력을 통하여 얻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축복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으로 주셨다.
(출3: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 지방에 데려 가려 하노라.
만나의 그침은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더 이상 만나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만일 계속해서 만나가 주어졌다면 이스라엘은 무기력하고 나태해졌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 않는가.
만일 아무일 하지 않아도 먹을 것 입을 것이 풍족하다면 한동안은 여유를 갖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지만 얼마 못가 대개의 사람들은 게을러지고, 무책임하고, 사람 귀한 줄을 모르고, 또한 하나님께 대한 감사함이 없이 아무런 삶의 희망도 없어져 헛된 것들에 마음을 뺴앗긴다.
삶의 적절한 긴장이 우리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주여 저로 너무 부요하지도 가난하지도 않게 하옵소서 하고 간구하지 않는가.
(잠30:7-8)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상황에서 만나를 주셨다.
그렇지만 때가 이르렀을 때 만나를 그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모두 나의 유익을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게 급박한 상황이 오면 하나님께서는 하늘을 여시고 만나를 주실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반드시 만나를 그치게 하신다.
우리가 아는 축복의 구절 중에 이런 말씀이 있다.
(신28:11-12)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따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는 약속의 땅을 주셨다.
그것을 이루기 위한 나의 땀과 노력을 여호와께서는 즐거워하시며 축복을 더하여 주신다.
만나의 그침은 또 다른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다.
만나가 그침으로 인해 나는 나의 능력을 인정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밖에 없으며, 때에 따라 비를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더욱 감사할 것이며, 나를 통하여 일하시는 주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게 될 것이다.
만나가 그쳤는가?
그렇다고 두려워 하지 말자.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풍성한 만나를 이미 예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잘 아신다.
만나가 그쳤다고 해서 두려워 하지 말자. 나는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또 다른 만나를 공급하실 것임을 믿자.
구약에서의 만나는 신약에서 생명의 양식으로 바뀐다.
구약에서의 만나는 광야 생활을 하는 하나님의 자녀의 육신의 굶주림을 채워주었다.
광야에서 더군다나 한 곳에서 오랜동안 정착하지 못하고 유량생활을 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확보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것을 잘 아시는 여호와께서는 굶지 말라고 40년 동안 매일 이슬이 맺히는 새벽시간에 일용할 양식으로 만나를 공급하셨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베푸신 특별하신 사랑이었던 것이다.
주님은 자신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를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주님이 곧 생명의 양식이다.
주님은 자신을 만나에 비교하시면서, 광야에서 먹은 만나는 육신의 만족을 위함이었으며 결국 모든 사람은 죽었지만, 역설적으로 생명의 떡인 자신을 먹게 되면 죽지 않고 영생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자신의 살과 피를 먹어 영생을 가지라고 말씀하신다.
‘먹고 마시라’는 주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나누라는 의미이다.
주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생명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
그래야 나의 영이 살찌고 건강하고 신실한 영적인 주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애굽시대, 광야시대, 가나안시대.
죄에 종속되어 죄의 종노릇을 하는 애굽시대.
죄에서 벗어 나서 주님의 자녀로서의 훈련 기간인 광야시대.
훈련이 끝나고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는 가나안시대.
주님이 나의 구주이시며 나의 모든 죄를 사하심을 믿음으로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애굽을 떠나며 주님의 임재하심으로 홍해가 갈라지는 기억을 체험하게 된다.
우리의 대다수가 거하는 40년 동안의 광야시대.
이 기간에 주님께서는 내 안에 남아 있는 애굽의 죄성을 버리라고 우리를 훈련시키신다.
구름기둥으로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며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예비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께서 일일히 간섭하시는 달콤한 Honeymoon과 같은 기간이다.
그리고 광야시대의 훈련이 된 후에 반드시 겪게 되는 가나안시대.
광야시대가 끝나고 가나안 시대가 시작되는 곳에 바로 길갈이란 장소가 있다.
약속의 성취를 이루기 위한 가나안 땅에 들어 가기 전에 반드시 겪어야 하는 준비의 과정이다.
길갈에서 두 가지가 이루어 진다.
곧 할례를 받아야 하는 것과 만나가 그친다는 것이다.
아직도 때를 따라 나타나는 나의 죄성을 온전하게 도려내는 성령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
매일 순간마다 성령의 할례를 통하여 나를 정결하게 해야 한다. 늘 마음의 할례를 받자. 성령께서는 내 마음의 거룩함과 정결함을 원하신다. 그 분의 움직임에 나를 맏기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서 나는 늘 주님의 십자가에 나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40년의 광야생활에 매일 같이 주어지던 만나는 그치며 풍성한 땅의 소산을 먹게 된다.
주님과 어떻게 함께 하며 교제를 나누는지를 배워 나가는 기간이며 천국을 경험하며 주님의 자녀로서 천성을 향하여 가는 기간이다. 매일 매일 나의 영혼육을 살리시는 생명의 떡이신 생명의 생수이신 주님께로 나아가며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임재를 느끼며 물어보고 듣고 순종하며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어 보자.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기쁨과 평안과 사랑이 넘쳐 흐르도록 솟아 오르지 않겠는가.
만나가 그친 것 같은가!
더 이상 도움이 없다고 생각이 드는가!
때로는 주님의 임재가 끊어진 듯하여 고독감을 느끼지만 곧 얼마 안가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알게 된다. 주님은 바로 내 안에 임재하시며 늘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이미 또 다른 축복의 땅을 예비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은 또 다른 방향에서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길갈이란 곳은 하나님의 자녀인 내게도 주어진다.
길갈은 주님의 사랑을 재확인하는 축복의 장소이다.
광야생활을 끝내고 길갈에 들어 섰는가?
나는 주님께서 내게 유없으로 주신 약속의 땅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는가?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을 약속하는 장소이며, 내가 주님의 자녀임을 확신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저를 애굽으로부터 건져 내시고 광야길을 가게 해 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광야생활이 끝나 가나안 땅이 주어지기 전에 길갈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곳에서 저희들은 마음의 할례를 행하게 되며 또한 그동안 저를 먹이셨던 만나가 끊치게 되며 약속의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모두가 실은 저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섭리이시며 축복입니다.
저에게는 아직도 죄성이 제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때만 되고 기회가 되면 슬그머니 머리를 드밀어 저를 곤혹하게 만들곤 합니다.
성령의 칼로 제안에 있는 부끄러운 죄들을 도려내는 할례를 행하옵소서.
제가 거룩하게 구별된 주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오니 성령님 저를 도우소서.
만나가 그침은 저에게는 더욱 큰 축복입니다.
때에 따라 비를 내리시며 풍성하게 마련하신 여러 종류의 양식을 약속의 땅에서 먹게 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주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해서 절망하며 고독 가운데 있을 지라도 주님 저를 불쌍하게 여기시며
또 다른 만나를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여 주님 앞에 나아가도록 은혜를 베푸옵소서.
주님께서 너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영생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주님과의 교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제 안에 계신 주님.
제가 주님을 더욱 알아 가기를 원하오니 저를 긍휼하게 여기소서.
저를 구원하시고 제가 애굽을 통하여 광야길을 가게 하시고 그리고 이제 길갈에서 준비시키시고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받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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