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7일 일요일

죽음을 맞이한 두 강도


(23:39-43)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십가자에 못박혀 죽음을 맞이하는 두사람.
똑 같이 십자가형을 당하는 죄를 지어 하나는 구원을 얻었지만 다른 하나는 구원을 받지 못하고 죽었다.

모든 이들은 죽는다.
아무리 재물이 많아도 권력이 있어도 영성이 깊어도 그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죽음은 우리의 삶에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무리 멀리하려고 하지만 죽음은 나의 삶 가운데서 영향을 준다. 이미 내 주위에서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알고 지냈던 많은 이들이 죽었으며, 그들이 죽음을 맞이 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잠시 손을 놓고 그들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며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나 역시 잠시후면 죽음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사람뿐 아니라 모든 호흡을 하는 피조물은 죽으며 썩어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3:19)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3: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우리는 제각기의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을 준비하여 죽음을 받아 드리며 맞이하는 이가 있으며, 전혀 죽음을 생각지도 못하다가 순식간에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육신의 종말을 맞기도 한다.

어떤 이는 나이가 들어 노쇠하여 죽는다.
어떤 이는 태어나서 신체의 이상으로 얼마못가 죽는다.
어떤 이는 건강한데 갑자기 심장이 멈쳐 죽는다.
어떤 이는 치료할 수 없는 병에 걸려 오래 살지 못하고 고통 가운데 뼈가 앙상하게 들어나도록 말라 죽는다.
어떤 이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사고로 목숨을 잃기도 한다.
어떤 이는 자신이 지은 죄 값으로 사형을 당한다.
어떤 이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사형을 당한다.
어떤 이는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

과연 나의 죽음이 다가왔을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까?
죽음의 순간에 나는 무엇을 생각할까?
나의 죽음을 잘 준비하고 있는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
구원받지 못한 강도와 구원받은 강도. 이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였는가를 살펴보며 언젠가는 반드시 다가올 나의 죽음을 준비하자.

구원받지 못한 강도
죽음의 순간에서도 남을 비방한다.
남을 비방하고 욕하고 나의 잘못이 아니고 너의 잘못이라고 원망을 한다.

자신을 뒤돌아보고 자신의 죄를 회개할 시간이 있었지만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하며 욕하다가 곧 의식이 희미해져버려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을 놓치고 만다.  바로 곁에 예수님께서 계셨는데도 그는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하고 구원을 받지 못했다. 옆에 같이 달린 예수님께서 모든 죄를 사하실 권세가 있고 영혼을 지옥 아니면 천국에 보내실 권세가 있는 창조주이심을 알았다면 그는 자신의 영혼을 부탁했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는 바로 곁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했다.

참 불행한 인간이다.
얼마나 좋은 기회였던가. 일생동안 선한 일이라고는 눈을 씻고 보아야 할 정도롤 선한 일과는 담을 쌓고 악한 일만 행해서 가족들로부터도 버림받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인생이었다. 결국 사람들에게 잡혀서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해보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잔인하게 십자가에 못을 박고 달아 버렸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이 바로 앞에 왔는데도 바로 곁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도 하지 못하고 원망만 하다가 정신이 희미해지며 결국 그의 육신은 종말을 맞이했다.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자
음녀를 대표하는 이세벨.
(왕하9:33) 이르되 그를 내려던지라 하니 내려 던지매 그의 피가 담과 말에게 튀더라. 예후가 그의 시체를 밞으니라.
이세벨은 자신이 행한 악행에 대하여 회개하지 않고 내어 던져져 죽음을 맞이했다.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
(27:3-5)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유다는 예수를 은 삼십을 받고 배신하여 예수를 결국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였다. 자신이 행한 일을 뉘우치고 후회했지만 그렇다고 회개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하나님을 속인 아나니와 삽비라의 죽음
(5:3-10) 베드로가 이르되 아니이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려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거짓을 말하다가 갑자기 혼이 떠남으로 엎드러져 죽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복음에 대하여 들고 알고 있었으며 천국에서의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회개가 중요하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변명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갑작스럽게 급사함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할 수도 없었다.

우리의 주위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순간에도 바로 옆에 계신 예수님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부인하다가 결국은 의식을 잃고 죽음을 맞기도 하며, 또 어떤 이는 전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순간에 자신의 육신의 종말을 맞이하여 회개할수도 없어 결국은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 약속된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다.


구원받은 강도
이 강도 역시 죽음을 맞이하고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자들을 저주하며 주위에 있는 자들을 비방한다.
(27:44) 함께 십자가에 목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15:32) 이스라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구원받지 못한 강도처럼 평생 선한 일이라고는 눈꼽만큼도 하지 못했던 실로 버림받은 자였다.
그 역시 다른 강도처럼 예수를 욕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의 그의 죄악된 본성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배운 것이라고는 남을 원망하고 저주하고 삐뚤어진 시선으로 남들을 대하며 욕하는 것이 몸에 익숙하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을 욕하고 저주했다. 하지만 곧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시인을 한다.  자신의 죽음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알고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는 예수님께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간청을 한다.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그의 일생에서 가장 값진 고백이다. 그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잘 한 것은 죽음 직전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예수님께 자신의 영혼을 부탁한 것이다. 평생에 죄를 짓고 살았지만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다.

한가지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가 예수님을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예수님께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고백한 것은 아니다.
(41)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음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그는 이전에 예수님에 대하여 들었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았다. 사람들을 해치며 악한 짓들을 하고 다녔지만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들었다. 혹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심을 어렴풋이나마 알았기에 죽음의 순간에 예수님께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

그래서 주님을 믿는 우리는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주님의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한다.
혹 그들이 생각지도 못한 원치 않는 죽음을 맞이했을때 혹시라도 예수님을 기억하고 예수님께 자신의 영혼을 받아 달라고 고백할 수도 있지 않곘는가 

구원받은 강도는 평생에 선한 일이라고는 눈꼽만큼도 기억이 나지 않을만큼 하였지만, 그래도 그의 인생에서 가장 훌륭하고 값진 말을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할 수 있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우리도 죽으면서 이렇게 고백할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주여 저의 영혼을 주님의 손에 올려 드립니다. 저를 주님의 나라로 인도하소서.
이것이 나의 고백이기를 간구를 한다. 행여나 순식간에 나의 생명의 마직막을 맞이 할지라도 이 말만은 하고 나의 마지막 호흡을 했으면 한다.

스데반의 죽음의 모습을 보자.
(7:59-60)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은 주의 복음을 전하다가 거부하는 유대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에게 돌을 맞아 죽어가면서 주님께 자신의 영혼을 받아 달라고 하고 무릎을 꿇고 자신을 돌로 치는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며 죽었다.

스데반과 같이 나의 육신의 마지막 호흡을 하기 전에 모든 이들을 용서하고 떠나자.
나의 모든 죄들을 용서해 주신 주님께 그 동안안의 삶을 감사하며 그리고 나의 영혼을 주님께 부탁하자. 자비로운 주님께서 나의 영혼을 받아 주실 것을 믿자. 죽음의 순간 천국으로 나를 데리러 온 천사들을 보게 될 것이다.


말씀을 정리하며,
우리의 육신의 호흡이 있을때 예수님에 대하여 소망을 가질수 있지만 호흡이 끊어져서 육신의 종말이 오면 더 이상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고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146: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라.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우리가 흙이 되어 땅으로 돌아가기 전에 아직 나의 영이 육신안에 머무르고 있을때 나에게 구원을 베푸시려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뜻을 다 이루신 예수님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우리의 육신은 죽음을 통해서 다시 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육신의 종말인 죽음을 통과하게 되면 나의 영혼은 흙으로 돌아갈 육신을 떠나 생전에 행한 믿음의 결과대로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간다.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까?
과연 죽음의 순간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에 죽음을 향하여 간다.
어떤 인생을 가게 될 것은 각자의 선택이다.  선하고 복된 인생을 살며 죽음을 잘 준비하여 모두가 반드시 겪어야 할 인생의 관문인 죽음을 두려움없이 기쁨으로 통과하여 그 후 주님과 함께 영원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기를 간구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은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읍니다.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 그들은 자신의 죄 값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는 형을 받았읍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달리게 한 이들을 원망하여 저주도 퍼부우며 같이 달린 주님을 향하여 욕도 하였읍니다.
그렇지만 한 강도는 자신의 행한 일들을 회개하며 주님께 자신의 영혼을 부탁했읍니다.
그는 자신의 곁에 같이 매달린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확실하게는 몰랐지만, 그래도 듣고 본 것이 있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어렴풋이나마 알아 생사를 주관하시는 예수님께 자신의 영혼을 받아 달라고 간청을 할 수 있었읍니다. 그의 인생에 가장 훌륭한 고백이요 자신의 생명을 지킨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고백이었읍니다. 그는 평생에 선한 일이라고는 거의 한 적이 없는 자였지만, 주님은 그런 자의 죄의 고백과 영혼을 받아 달라는 간청을 들으사 용서를 하시고 주님의 자녀로 받으셨읍니다.

주위의 사람들에게 때를 얻든 지 못얻든지 죽음 후의 천국과 지옥에 대하며 말을 하며 이를 결정하는 주님에 대하여 전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저의 죽음의 순간에 스대반이 그랬듯이 저와 함께 관계를 맺었던 모든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저의 영혼을 주님께 받아 달라고 간구를 하기를 원합니다. 

저의 이 땅에서의 삶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늘 죽음을 준비하는 거룩한 성도이기를 원하오며, 흙으로 결국은 돌아가는 유한한 인생을 사는 동안 늘 주님을 기억하기를 간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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