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7일 일요일

주만 의지하고


(26:11-15)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오리니 주께서 우리의 모든 일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우리는 주만 의지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벌하여 그들을 멸하사 그들의 모든 기억을 없이하셨음이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고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나이다. 스스로 영광을 얻으시고 이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하셨나이다.


누구를 의지하는가
어려서는 부모를 의지한다. 커가면서 부모보다는 친구들을 의지한다. 장성해서 가정을 갖게 되면 배우자를 의지한다. 또한 세상을 의지하는 법을 배운다.

주님보다는 세상을 의지하기도 한다. 돈을 의지하기도 하고 명예를 의지하기도 한다. 권력이 지상최고의 것이라 여기는 자들도 있어 그것을 얻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몹쓸 짓을 해가며 얻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나는 무엇을 의지할까?

저는 한가지를 깨달았는데 지금껏 살면서 저를 도우시는 분은 오직 주님 한분이라는 것이다.

내가 곤고함 가운데 처했을때 나의 형제들이나 부모나 친척들이나 친한 친구들은 나를 어느 정도는 도와줄 수는 있었지만 그 도움에는 한계가 있었다. 오직 내가 믿는 주님만은 아직까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지금껏 나를 도와주시고 인도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만의 고백이 아니고 많은 이들의 고백일것이다.

주님은 참으로 부족하고 죄성이 있는 나를 끊임없는 관심을 갖고 돌보신다. 쓰러지고 또 쓰러진 나를 싫증도 내지 않으시고 손을 잡아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묻은 흙을 털어 주시고 혹 상처가 났으면 약을 발라 낫게 하시고 다시 생명의 길을 걷도록 축복하시며 인도하신다.


여호수아는 주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다 마치고 자신의 목숨이 다하였다는 것을 알고 유언을 한다.
(24:15)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모세의 뒤를 이어 받아 지도자의 길을 간 여호수아는 갖가지의 어렵고 힘든 문제를 만났다. 젊어서 정탐꾼으로 발탁되어 다른 11명의 정탐꾼과 함께 자신들이 유업으로 받을 가나안 땅이 어떤 곳인지를 살펴 보았다. 자신과 갈렙을 제외한 열명의 정탐꾼들은 비록 가나안 땅이 기름진 축복의 땅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 곳에 거하는 거민들이 장대하여 메뚜기같은 자신들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지레 겁을 먹고 그 곳에 가지 말자고 할 때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여호와가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하며 백성들을 격려하였다. 그 후에 모세의 뒤를 이어 지도자의 길을 가며 수많은 결정의 시간에 오직 여호와의 뜻이 무엇인지를 물어가며 여호와를 의지하며 나아갈때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취할 수 있었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온 삶을 통하여 여호와께서 자신과 함께 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 육신의 생명이 끊어지기 전에 자신의 후손들에게 오직 여호와를 섬기라고 유언을 남긴다.


사도바울은 실라는 귀신들려 점치는 여종의 귀신을 쫓아 낸일로 옥에 갖혔다. 매를 많이 맞고 옥에 갖힌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할 때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문이 열렸다. 죄인들이 도망친 줄 생각하고 간수들이 자결하려고 하자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우리가 여기에 다 있으니 자결하지 말라고 한다. 이말을 들은 간수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16:31)’ 말한다.  이 일로 간수와 그의 가족을 구원을 받는다.  사도 바울은 비록 주님을 전한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고 매를 맞고 옥에 갖혔지만 오직 예수를 믿고 의지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복된 선택임을 알기에 그런 상황에서도 주님을 믿으라고 선포할 수 있었다.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께서 이 땅에 그들과 함께 있을때에는 참 주님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주님을 자신들과 민족을 구원할 육신적인 왕으로 생각을 해서 바로 주님이 잡혀 가시기 전까지도 주님께서 왕으로 옹립이 될때 자신을 주님의 오른쪽 왼쪽에 앉게 해달라고 간구를 하였다. 오천명을 먹이시고 병든 자들 낫게 하고 귀신들린 자를 온전케 하셨던 주님께서 맥없이 힘없이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은 주님이 자신들의 왕이 되어 새로운 왕국을 세우려던 마음의 중심이 무너지며 그동안 주님과 함께 하였던 시간들이 허탈하여 삶의 목적을 잃어 버리고 뿔뿔히 흩어져 버렸다.

그렇지만 그 후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하나 하나 찿아가셔서 제자들은 주님을 만날 수 있었다.

(24:30-32)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은 같이 걸어 가시는 변화된 주님을 알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주님께서 떡을 떼신 떡을 먹을 때에 제자들은 눈이 밝아져서 비로서 주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유를 비로서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주님을 다시 만난 사건을 통하여 제자들은 주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었다. 제자들은 자신의 육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주님을 전하는 증인의 길을 가며 그토록 사랑하고 의지하는 주님을 위해 순교의 길을 갈 수 있었으며 교회의 초석을 세울 수 있었다.

참 주님을 만나셨읍니까?

말로만 듣던 주님을 만나셨읍니까?  눈이 밝아져 말씀으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셨읍니까?

주님을 만나서 완전하게 변화된 삶을 사십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축복의 은혜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는가?

교회에는 가지만 주님을 만나지 못한 교인들은 무척이나 많다.

주님께서 주신 떡을 먹을때에 마음의 문이 열린다. 열린 마음안으로 주님께서 임하실 때에 비로서 주님을 알게 된다. 주님께서 임하신 자들만이 온전하게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 놀라운 새생명의 회복이 시작되는 것이다.


본문의 말씀에서 왜 이사야 선지자가 여호와 만을 의지하게 된 이유가 있다.

여호와께서는 바로 나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셨으며 또한 모든 일이 바로 나를 위하여 이루셨음을 눈으로 보고 알았기에 세상의 왕이 아니라 오직 만왕의 왕이신 여호와만을 의지하겠노라고 다짐을 한다.

주님은 나를 평강으로 인도하셨다.

지금의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보이지 않는 주님의 섭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바로 나를 훈련시키고 인도하신 주님의 손길이었다.

 주님께서는 내게 혼란이나 환란이나 곤고함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축복은 곧 평강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나타나는 징후가 있는데 곧 평강이다.

 야훼는 결코 주님의 자녀인 우리를 실망시키시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 있든지 마음에는 따뜻한 평온함이 있는가?

거친 파도가 나를 뒤흔들어 대지만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이 있는가?

 겉으로 보이는 상황은 좋지 않지만 그 가운데서는 임하는 놀라운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이 있다거센 바람이 불어 대지만 내 마음속에는 흔들리지 않는 평정함이 있는 것은 곧 주님께서 내 마음을 주장하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나를 살리시려고 모든 일을 이미 이루셨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하시며 죽으셨다. 모든 구속을 이루신것이다. 그런 주님을 진신된 마음으로 믿어 고백을 하면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구속은 바로 나에게도 선물로 주어져서 영생의 참된 복을 받게 된다.

나의 선한 행동으로 구원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신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의 선물이 주어지는 것이다.

(2:8-10)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는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시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나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신 야훼이신 주님을 나의 목숨이 있을 때에 온전히 신뢰하며 의지해야 한다.

죽은 육신은 더 이상 주님의 이름을 부를수 없다.  나의 육신이 숨을 쉬고 있는 동안 마음껏 주님의 이름을 부르자. 지금 이 순간에 호흡을 하고 있다는 것이 축복이다. 커피를 마시며

나의 숨이 아직도 내 곁에 있을 때 주님을 온전히 예배를 드리자.

어떤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는가?
주님을 만나셨읍니까?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느끼십니까?

교회에는 왜 가십니까? 누구를 만나러 교회에 가십니까?

주님의 임재를 느끼는 예배를 드리며 영광을 주님께 드립니까?

나의 삶 가운데 무엇이 가장 소중합니까?

그런데 주님이 가장 소중하다면서 주님이 조명되어 있는 말씀을 왜 가까이 하지 않습니까?



 온 땅과 온 하늘의 주관자이신 야훼 하나님,

온전히 주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하옵소서. 저의 생각과 결심으로는 주님을 온전하게 의지할 수 없읍니다. 제 안에 계신 주님의 영이신 성령이여. 제가 온전하게 변화하여 저의 삶을 통하여 임재하시는 주님의 숨결을 느끼기를 원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저의 숨이 붙어 있는 동안에 주님의 이름을 마음껏 부르며 저의 모든 것이 변화하는 살아 역사하는 주님의 이름의 능력이 임하며 온전하게 저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주님만을 의지하기를 간구합니다.

 주여 저를 도와주소서. 육신의 죽음이 와서 제가 더 이상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되기 까지 저의 영이 생명이신 주님을 온전하게 예배하며 저를 살리시는 주님의 은혜가 저의 삶 가운데서 역사하여 주님만을 의지하며 저의 영이 소생되기를 간구합니다.

 장차 저에게 임할 천국의 역동하는 생기가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경험하기를 간구합니다.

저를 살리신 예수님께 모든 영광을 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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