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전서는 사도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을 떠나기 전에 에베소에서 고린도 교회의 분열의 소식을 듣고
이에 대한 자신의 권면을 쓴 서신서이다. 그 당시 고린도 교회는 여러 문제들을 갖고 있었다.
기독교의 근본적인 진리인 십자가의 도를 비롯해서 교회 기득권의 문제, 우상숭배,
성령의 은사의 남용등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여 어떻게 교회를 온전히 세워야 하는 지에 대하여 말씀한다.
사도 바울은 1장의 본문에서 십자가의 도에 대하여 말씀을 전한다. 사도 바울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은 그의 삶의 모든 것이었으며 신앙의 근간이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노라 다짐을 하곤 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전파한다는 이유로 바울은 여러번의 태형을 맞았고 돌에 맞아 죽을 뻔하기도 수차례 겪었다.
바울은 십자가의 도를 말하기 전에 자신의 말의 지혜로 말하지 않겠노라 17절에서 다짐한다. 사도 바울은 학식과 성경지식과 경험을 두루 갖춘 현학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지식과 학문을 의지하지 않고 간단하게 십자가의 도에 대한 진리를 이야기 하겠다고 말한다. 말의 지혜는 교묘하게 원래의 뜻을 장식하여 본질의 뜻을 명확하게 하지를 못하게 한다. 우리들도 어떤 것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미사여구를 사용하기도 하며 부풀려서 말의 본질을 가리울 때가 많이 있다. 현란한 말 재간으로 십자가의 도를 가려서는 않된다.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 가운데에서는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도가 드러나야 한다.
사도 바울에게 십자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본질 그 자체이었다. 그래서 고전2:1-2에서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에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라고 말한다. 사도 바울을 포함하며 수많은 주님의 자녀들이 십자가의 도를 마음에 믿음으로 품기 위해서 순교했다. 십자가의 도는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했던 것이다.
나에게 십자가의 도는 어떻게 다가오는가?
나 또한 십자가의 도와 목숨을 선택해야
한다면 과연 나는 나의 목숨을 내놓고서라도 십자가의 도를 택할 수 있을까?
“십자가의 도”는 무엇일까?
십자가의 도는 단순한 진리를 갖고 있다. KJV 는 “the message of the cross”, NIV에서는
“the preaching of the cross” 혹은 “the word of the
cross”로 헬라어로는 logos가 사용된다. “십자가의 도”란 “십자가의 말씀”이라 말할 수 있다. 십자가의 도란 바로 십자가에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제물로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말씀”이다.
Charles Spurgeon목사는 그의 설교에서 “하나님은 인성을 가지고 이 땅에 내려 오셨고, 그 인성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의 슬픔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의 죄를 속하셨다는 이 십자가의 도의 교리는 비할 데 없는 시이며 모든 사상과 신조의 극치이다”라고 전하였다.
십자가에는 어떤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지를 보자.
1. 십자가는 하나
십자가의 도는 여럿이 아니라 하나의 가르침이다. 복음은 하나이며,
구원도 하나이다. 구원을 얻음은 오직 구세주이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는다. 속죄함을 받기 위해 여러 가지의 방법들을 통하여 얻는 것이 아닌 오직 예수를 통하여 구원은
주어진다.
십자가에서 들려오는 말씀은
“(사45:22)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목소리는 “이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살리라”하며 우리들의 행위를 강조한다. 행위로 말미암는
구원, 감정으로 말미암는 구원, 외형적인 종교로 말미암는 구원의 교리는
십자가의 도가 아니다. 어떤 영적인 성직자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그런 사람으로부터
구원을 얻으려고 의지하려고 한다. 이는 거짓의 소리이며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한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주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고 운명하셨다. 이 십자가의 도는 세대를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닌, 언제 어디서나 동일하게 영원히 지속된다. 사도 바울이 2000년 전에 선포했던 복음은 현시대의 복음과 동일하며 십자가의 도 역시 전혀 변질되지 않았다. 만일 속죄나 구원이 우리의 행위로 인해 얻어져야 한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며 “다 이루었다”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속죄와 구원은 예수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십자가의 도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가르치심은 영원토록 변치 않는 구원을 얻게 하는 오직 하나의 진리이다.
2. 십자가의 대속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죄에 대하여 분노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께서 범죄한 자들을 무섭토록 심판하시는 모습이 나온다. 이 범죄한
자들이 하나님께 속죄할 때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 죄를 지은 자는 죽을 수 없어 그 자를 대신할 대속물의 피이었다.
피는 생명의 상징이다.
죄를 범한 자들이 속죄함을 받기 위해서는 "(히9:22) 피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의 말씀과 같이
자신의 생명을 대신 할 대속물의 피흘림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롬5:18)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벧전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것이니라.
첫 인간인 아담의 죄의 대가를
이어받은 모든 인간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는 이와 방불한 누군가가 속죄함을 받았어야 했다. 모든 인간의 죄를 대치할 수 있는 그 만한 값어치가
있는 대상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죄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보내셔서 그의 피흘려 죽게 함으로 온 인간의 죄를 속죄받게 하는 계획을 하셨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기
때문에 비록 아무런 죄가 없지만 십자가에서 온 인간의 죄를 홀로 지신 예수님을 버리실 수 밖에 없으셨다. 나와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 지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으셨어야 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히9:12)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의 말씀과 같이 자신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 인간 모두에게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골1:20)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엡2:16)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십자가에서 치른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들의 모든 죄는 제거되었고 여호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단번의 희생으로 열납되었고 속죄가 완성되었다. 회목제로서 십자가에서 치르신 예수님의 구속 사역으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저 받았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베푸신 가장 크나 큰 선물이었다. 우리 인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의 중심에 십자가의 사건이 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모든 피를 흘리고 죽으심으로 단절되었던
하나님과 우리들의 관계가 회복되었다. 주님의 피가 하나님과 우리들의 관계를 화목케 하셨다.
주님의 보혈의 능력이 내 안에 흐릅니다. 보혈의 능력으로 구원을 얻어 영원한 생명을 갖게
해 주신 주님의 희생과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영광 받으소서.
3.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
(롬5:8)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십자가는 무엇을 우리들에게
전하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셨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하여
멸망 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사랑하시어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우리들의 죄를 구속하셨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다. 세상의 어느 아버지가 다른
이들을 살리려고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겠는가. 십자가는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시며
자비이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비록 하나님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죄를 미워하시지만, 그럼에도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죽게 하시므로 우리 죄인들을 살리셨을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인간의 본성을 취하게 하시고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하셨다.
이는 곧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위해 죽게 하심이었다.
십자가의 도는 곧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심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예수님이 달려 죽으신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는 속죄함을 받았다. 전에 지은 죄와 지금 짓고 있는 죄와 그리고 앞으로 지을 죄들 까지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용서하셨다. 죄로부터 자유롭게 하셨다. 내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죄를 멀리하고 죄를 짓지 않도록 말씀하실때에 순종하여 죄로부터 멀어진 복된 인생이기를 간구한다.
여호와 하나님
너무나 크신 은혜의 선물을
주셔서 저를 영원토록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함과 희생과 사랑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모든 죄를 대속하신 자비와 긍휼하심으로 늘 죄악 가운데서 허덕이는 저를 살리셨읍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십자가의
사랑이 너무나 크고 지극한데도 저희들은 조금만 틈만 보이면 그 십자가에서 베푸신 사랑을 잊어 버리고 제각각의 소견대로 삽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저희를
사랑하시사 다시 때에 따라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나게 하시고 주님앞으로 나오게 하시는 여호와의 사랑으로 차고 넘칩니다. 제 안에 십자가의
도로 가득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제 안에 십자가의 도를 인쳐주옵소서.
저를 살리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사랑을 베푸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