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의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사도 바울은 그들이 사랑이 없기 때문에 올바른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도록 고전13장에서 사랑에
대하여, 또 은사를 사용함에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않고 자신을 나타내며 교회를 어지럽혔기 때문에
14장에서 은사에 대하여 말씀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의 지식을 자랑했으며 입술로만 하나님을 경배했다.
10-12절에 나타난 것과 같이 분열했으며 서로 당을 짓고 서로를 헐뜯었다. 20-21절에서는 세상의 철학자, 서기관, 변사를 언급하며,
이러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 속하였음을
3번이나 거듭해서 강조한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서는 변사 (수사학적 능변가)는 최상의 대접을 받았다.
오늘날 영화 배우나 인기 운동 선수들과 같은 부와 명예를 누리며 대중의 환호와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사도바울는 이러한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페하셨다고 역설한다.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구원은 우리 인간들의 상식의 한계를 뒤업는 것이다. 18절에서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가 말하며, 21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신다고 말한다.
미련한 것(moria)의 원어의 뜻은 “미쳤다”이며, 복음의 메시지는 상식적인 기준으로 볼 때 완전히 미친 것과 다름이 없음을 의미한다.
십자가에 달린 수치스러운 죽음이 어떻게 세상의 구원사건일 수 있겠는가?
그것을 믿으려면 세상의 지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며 미련한 자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복음이다.
십자가의 사건은 사람들의 지식과 상식을 뛰어 넘는 것이며 그 당시 세상과
종교의 권위 체계를 뒤 엎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로마의 억압가운데 있는 자신들을 구원할 권능의 메시야가
필요했고, 헬라인들은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으며 철학적 진리를 가르치는 변사가 필요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은 이들 모두의 기대와는 맞지 않았다. 예수님은 범죄자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그러한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어리석으며 미련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을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도는 역사상 가장 신비한 사건이다.
십자가의 도는 곧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구원의 진리를 말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신 사건은 우리들의 인간의 지식의 한계 저 너머에 계신 하나님의 계획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해할 수 가 없는 사건이다. 십자가의 은혜는 남은 자에 대한 은혜이다.
이 남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구약으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남은 자란 우리들의 선한 행위가 아닌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다. 엘리야 시대에 아합왕으로부터 핍박받아 모든 선지자들이 죽고 엘리야만 남았을때, 엘리야가 탄원하기를 모든 선지자가 죽고 나만 남았읍니다 하였을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나의 은혜로 7,000인을 남겨 두었다”라고 하셨다.
십자가의 은혜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지만, 그 은혜를 믿어 구원받는 자들은 소수의 “남은 자”들이다. 은혜를 받지 못하는 자들은 롬11:8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와 같이 십자가의 도를 거부하여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받지 못해 멸망당할 수 밖에 미련한 자들을 말한다.
두 가지의 미련함이 있다.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미련한 것, 연약한 것)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하나는 주님의 십자가를 거부하는 미련함이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은 지혜가 없음으로 미련한 것이며 멸망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또 다른 하나는 십자가의 도를 믿는 미련함이다.
십자가의 사건은 미련하며 약한 것임을 말씀한다. 예수님의 어리석게 보이는 십자가에서의 죽음에 의해 우리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종말론적인 시대에 들어 갈 특권을 얻었다.
구원은 교회에 다닌다고 모두가 받는 것이 아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보터 남은 자의 은혜가 임해야 한다. 사도바울은 “십자가의
도”를 고린도에 있는 교인들에게 설명한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아닌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다. 즉 교회에 다니는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교회에 나오는 자들 중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미련한 십자가의 도를 믿지 못하는 “멸망하는 자”요, 다른 이는 미련한 십자가의 도를 믿어 남은 자로 택함을 받은 “구원 받은 자”이다.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 멸망 받은 자인가 혹은 구원 받은 자인가. 미련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하지만 구원받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미련한 십자가의 도를 믿지 못하는 멸망하는 미련한 자
하나님의 사랑의 십자가의 도를 멸시하고 무시하는 이들이
있다. 사람들은 입으로는 주님을 가까이하며 믿음이 있는듯 보이지만 실은 마음은 멀리 떠나 있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있다. 예수님은 범죄자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세상사람들이 볼 때 그러한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어리석으며 미련했던 것이다.
속죄의 구원의 교리를 미련한 것이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한 사람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은 구원의 교리를 어리석고 미련한 것으로 단정을 지으며 그리스도의
신성을 무시한다. 기독교를 개독교로 표현하며 폄하하기도 한다. 물론
우리 기독교 인의 잘못이 더욱 크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의를 용납할 수 없는 세상의 임금인 사탄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22절에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찿으나”로 기록되어있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구하는 방법이 무엇이지를
나타낸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한다고 한다. 즉 하나님의 활동에 대해 증명할 수 있는 표적을 찿는다. 헬라인처럼 지혜를 구하는 경우도 있다.
하나님을 증명하기 위해 심오한 세상의 지식을 얻으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표적을
구하는 것이나 세상의 지혜를 구하는 것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에 관한 십자가의 도를 믿고 받아들일 수 없도록 한다.
십자가의 도를 멸시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나름대로
재해석을 하며 치명적인 오류를 범한다. 성경은 창1:1에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라 하며 지구를 제일 먼저 창조하였다고 기록했다. 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학교 교육의 영향을
받아 이 사실을 믿지 못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주의 시작은 과거 어느 시점에서 갑작스러운 팽창으로 인해
시작되었고 지구는 수십억년의 많은 시간이 지난 후 만들어 졌다는 가설을 믿는다. 성경 말씀을 자신의 지식의
한계로 재해석하며 자신이 세운 가설대로 왜곡하였다.
세상에 속한 이들은 성경의 진리를 왜곡시키며 하찮은 것으로
멸시하며 무엇보다 “십자가의 도”를
어떻게든 홰손하려고 한다. 우리들 주변에도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도를 부인한다.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의 능력을 믿지 못하며 어리석은 짓이라고 한다.
왜그럴까?
그 이유는 바로 19절에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의 말씀이며 이 말씀은 사29:13-14으로부터 인용되었다.
(사29:13-14)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가르침을 받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인한 일을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
하나님을 믿는 다 하면서 실상 나의 마음은 세상에 있다. 이사야는 사람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존경을 표하지만 마음은 멀리 떠나 있으며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데 그 이유는 지혜가 없기 때문이라 한다.
이기적이고 욕심이 있는 교만한 인간들은 십자가의 도를 어리석은 것이라고 한다. 이런 이들은 육신에 속해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더욱 많은 재물을 축적할까, 어떻게 하면
인생을 즐길까하는 것들에는 관심을 기울이며 귀를 기울이며 시간을 투자한다. 하지만 십자가의 도가 무엇인지를
아는데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다.
자신의 영혼에 대하여 너무나 무지하다.
그들은 자신이 영원히 살 것이라고 착각을 한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인생은 너무나 짧다. 그리고 죽을 때 그토록 애지중지하며 가지려고 애썼던
것들을 아무것도 가져 가지 못하고 단지 조그만한 땅에 누울 뿐이다.
잠시뿐인 이 땅의 삶에 집착을 하며 영생을 거부한 인생들은 얼마나 미련한가. 참으로 불쌍하고 미련하다.
미련한 십자가의 도를 믿는 구원받은 자
구원의 근본은 하나님이시다. 십자가는 바로 하나님의 생각이셨다. 우리들의 지식의 한계 저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의 계시인것이다. 십자가의 도는 인간의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은
은혜이다.
십자가와 그리스도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의 구현이다. 세상 사람들이 미련하게 보는 십자가 사건을 믿어 구원을 얻는다. 이러한 믿음은 내가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임하여 나로 하여금 믿게 해 주신다. 십자가는 우리들을 죄 가운데서
건져내신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한다. 십자가가 구원을 얻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구원의 유일한 길이며 하나님의 지혜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심으로 천하 만물의 주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메시야의 수치스럽고 무력한 죽음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셨다. 그리고 십자가는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중심이다. 만일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가장 깊은 진리라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도 바뀌어야 됨을 의미한다.
우리들의 생각이 나 중심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으로 옮겨져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십자가를 부인하지 말고, 자신을 부인하라” 말씀하신다.
성령의 열매를 맺기에 힘쓰며 매일 매일 우리들의 세상에 속한 또 다른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갈5:22-24에서 성령의 열매를
말씀하시고, 그리고 예수의 사람들은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말씀하신다.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 십자가를 계속해서 부인하게 되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미련한 사람이 되어 결국은 멸망 받을 수 밖에 없게 된다. 반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미련하게 믿는 자는
구원얻은 자가 되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들에 임하여 천국을 소유한 자녀가 되어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장차 임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된다.
미련함은
십자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십자가를 부인하고 거부한 자들이 실로 미련다.
우리들의 영혼은 너무나 소중하다. 하나님은 실재하시며 천국은 실재하며, 죄의 결과는 지옥에서 영원한 사망이다.
십자가의 사건을 부인하는가?
삶을 허비하고 파멸 가운데 있는가? 십자가를 믿는 것이 미련하며 어리석다라고 생각을 하는?
자신의 영적인 상태에 관심이 없고 무지한가?
성경은 전혀 읽지를 않는가?
주님의 십자가의 도를 거부해서는 않된다.
십자가의 은혜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진 은혜이지만, 미련한 십자가의 도를 믿어 하나님의 택함을 받는 자들은 얼마되지 않는 남은 자들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다.
주님의 십자가의 도를 거부하면 미련한 자가 되어 멸망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미련한 십자가의 도를 믿어 받아 들이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들에게 임하며 멸망당할 영혼을 살리사 영원토록 하나님의 나라에서
평강과 사랑 가운데 거하도록 하나님은 인도하신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당할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반대로 미련하게 보이는 십자가의 도를 믿으면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이
임한다. 말씀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를 못한다.
예수님께서 죄인인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고 인정할 수도 없다.
십자가의 도는 이성의 산물, 지식의 산물, 인간의 경험의 산물이 아니다.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계시이다. 십자가의 도는 우리 인간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이며 계획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지식의 한계를 넘어 있어 우리는 결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도를 인간의 학문이나 지식으로 풀어 낼 수 없다.
아마도 우리가 천국에 가서 영원토록 성경 공부를 할 때 지금은 궁금하고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성경의 비밀들을 명확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떤 미련함을 택하시겠읍까?
미련해 보이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도를 거부하면 멸망받는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미련한 십자가의 사건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된다.
선택은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택하여야 하는 것이 아닌 바로 나의 몫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미련한 십자가의 복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복잡한 구원의 복음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육신의 모습으로 와서 고통과 치욕과 멸시와 천대를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주신다는 십자가의 복음을 믿을수 있도록 은혜를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제 마음에 늘 자리잡고 있어서 어느때나 나를 살리시고 영생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제 마음에 늘 품도록 저를 인도하옵소서.
저의 얄팍한 지식과 경험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섭리의 계획을 받아들이도록 저의 마음이 완전하게 열리기를 간구합니다.
성령님 저를 도와주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의 구원자이시며 십자가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저를 살리셨음에 늘 찬양하며 감사합니다.
저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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