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6일 일요일

얼굴을 가린 수건

(고후3:14-18)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는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수건을 모세의 율법을 종교적으로 형식적으로 따르며 예수님을 부인하는 유대인들의 완고한 마음이라 표현을 합니다. 유대인의 완고한 마음은 지금도 예수님을 부인하며 받아들이지 못하게합니다.

또한 이 수건은 우리가 갖고 있는 완고한 마음 즉 종교적인 행위, 가식, 어리석은 고집으로 말할 수 있읍니다. 나의 완악한 마음은 주님 앞으로 나아감에 방해가 되며 걸림돌이 되어 주님과 온전한 교제를 나누지 못하게 합니다. 주님 앞으로 나아감에 방해가 되는 완고함이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게 되면 자유롭게 되어 주님의 영광에 이르게 되라고 권면을 합니다.

수건으로 덮혀 있으면 우리는 가식적으로 나를 나타내려고 합니다. 또한 사람들 특히 교인들을 종교적인 행위의 잣대로 평가를 합니다.


완고한 마음
(14)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사도 바울은 본문의 말씀에서 모세의 율법을 고집하여 예수님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완고한 마음을 수건으로 비유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주님의 영광을 보아야 하는데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구약 성경의 참된 의미를 모르고 있기에 주님의 영광을 볼 수가 없었읍니다.

수건은 우리의 완고한 마음으로 인한 위선적인 모습 혹은 종교적인 행위를 나타내며 이러한 가식적인 행위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어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없게 합니다. 나의 완고한 마음로 인해 덮힌 수건은 나를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가로 막아 나에게 비추시는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없게 합니다.

“완고”는 자기중심적인 뜻을 갖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마음이 둔하다”,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완악하다”의 뜻으로 사용되었읍니다.

내 자아가 강하기 때문에 나의 생각과 지식이 나를 지배합니다.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최선이라 믿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잣대를 용납할 수 없읍니다. 주 안에서 자유하라 하셨지만 나의 어리석은 완고함과 가식은 나를 더욱 나 중심적으로 옭매며 속박합니다.


완고함으로 망한 자들이 있읍니다.

(출11:10) 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기적을 바로 앞에서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여러 재앙으로 징조를 보이셨지만 완악한 바로왕은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다가 결국은 자신의 첫아들을 포함한 모든 백성의 첫아들과 모든 가축의 첫 태생을 잃고서야 비로서 이스라엘을 내보냈읍니다. 바로와 애굽은 완악함으로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것들을 잃었읍니다.

(삼상25:3)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삼상25:37-38) 아침에 나발이 포도주에서 깬 후에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 일을 말하매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


완고한 나발은 먹을 것을 주어 자신과 함께 한 이들을 도와달라는 다윗을 알아 보지 못하고 돕지를 않습니다. 이것을 안 그의 아내인 아비가일은 일이 잘못되었을 알고 자신의 가족들이 살기 위해서 급히 먹을 것을 준비하고 다윗에게 나아가 용서를 구합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에게 만일 급히 와서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면 한 사람도 남겨 두지 않았을것이라 말합니다. 술이 깬 후에 그것을 안 나발은 너무나 놀라 상심하여 근심하다 결국 죽게 됩니다.

완고함은 결국은 나를 해치며 망하게 합니다. 주 앞에 나아가기를 원하면서도 완고하다면 수건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에 결코 주님에게서 나오는 영광의 빛을 볼 수 없게 됩니다. 완고함으로부터 벗어나서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시기를 축원드립니다.


(행28: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요 12:40)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성경에서 마음이 완고한 자를 우둔하다고 합니다. 곧 완고한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마음이 완고하여 어리석은 자는 주님의 영광을 볼 수가 없읍니다. 나의 완고함으로 내 마음이 둔하여져 있으면 들을 귀는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어 하나님을 깨달아 알을 수 없고, 볼 수 있는 눈은 있지만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이한 일들을 볼 수 없게 됩니다. 아무리 마음으로 하나님을 깨닫기 원하지만 나의 완고함과 말씀에 대한 둔함으로 인해 주님을 통하여 비쳐 주시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볼 수 없어 하나님께서 나를 고쳐주시는 긍휼의 은혜가 임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죄희의 잘못됨을 고쳐주셔야 합니다. 그렇지만 저희가 어리석어 완고하다면 주님으로부터 고침을 받을 수가 없읍니다

나의 어리석은 완고함으로 인한 수건이 나를 덥고 있는 한 나는 주님의 영광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수건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의 빛을 가로막습니다. 주님의 빛에는 생명이 있고 자유함이 있는데, 영광의 빛이 수건으로 가리워져 있음으로 우리는 참된 생명, 참된 자유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주 안에 있는 자유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마음이 어리석어 완고한 자는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완고하다면 결국 망합니다. 망하기 전에 고침을 받아야 삽니다. 살기 위해서는 주님의 은혜가 임해야합니다. 육신의 마지막이 이르기전에 마음의 완고함을 치유받으십시요.

주님 앞에 나아감에 방해가 되는 어리석은 완고함은 주님 안에 온전하게 거하게 되면 자유가 임합니다. 생명을 회복하게 하는 주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은혜를 입기를 원한다면 우선 나의 어리석은 완고함을 내버려야 합니다.

16절에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말씀하시듯이 우리의 완고함을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고 주 앞에 신실한 마음으로 다가가면 나를 덮고 있던 수건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벗겨져서 주님의 영광 앞에 나아가게 합니다.

18절의 말씀과 같이 우리를 덮고 있던 수건이 벗겨 진다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우리의 본성이 빛이신 주님의 형상을 닮아 변하여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8) And we all, who with unveiled face contemplate the Lord’s glory, are being transformed into his image with ever-increasing glory, which comes from the Lord, who is the Spirit.


18절에 “주의 영광을 보매”에서 “보매”는 NIV에서 “contemplate”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이 단어의 뜻은 “look thoughtfully for a long time”입니다. 즉 주님을 오랫동안 깊게 생각하며 쳐다본다는 뜻입니다.

나를 덮고 있던 수건이 벗겨지기를 원하십니까. 어리석은 완고함이 벗어지기를 원하십니까.
오래동안 주님만을 생각하며 바라보며 깊은 교제를 나누는 것을 배우십시요.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계속해서 나누다보면 어느듯 나를 덮고 있었던 나의 교만과 가식과 완고함은 벗겨져 있어 주님의 영광의 회복의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영과 육은 변화하여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하여 영광의 몸을 입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은혜받은 사람의 얼굴에서 광채가 날 때가 있음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안에 있어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 얼굴에 나타나게 됩니다. 저 뿐 아니라 주님을 믿는 우리 모든 성도들의 얼굴게서 주님의 영광의 빛이 나타나기를 간구합니다.

나를 덮고 있는 가식과 완고함의 수건을 벗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주님을 통하여 비추시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주님의 영광의 빛에는 생명이 있고 자유함이 있는데, 이 영광의 빛이 수건으로 가리워져서 있는 한 우리는 참된 생명과 참된 자유를 누릴 수가 없게 됩니다.


(사 6: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완고함은 우리를 망하게 합니다.
저의 어리석은 완고함은 고쳐주시는 주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막습니다.

혹 앞뒤로 꽉 막혀 있읍니까. 병으로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읍니까.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까.
혹 마음이 완고한지 살펴보십시요. 어리석으며 죄악된 완고함을 내려 놓으시기를 간구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완고함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완고함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주님께서 고쳐주시는 은혜를 입으세요. 오직 그것만이 살 길 입니다.

완고함으로 벗어나 주님의 영광을 보고 들으며 주님을 알아가는 복된 인생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참으로 저는 가식적이며 마음이 완고합니다. 저에게는 저를 감싸며 나타내려는 헛된 가식이 있읍니다. 또한 사람들을 종교적인 잣대로 판단하려고 합니다. 저의 마음을 덮고 있는 수건입니다.

저와 주님의 영광의 빛을 가로막는 수건을 벗어 버리기를 원합니다.
주의 영광의 빛 가운데 거하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영광의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저를 덮고 있는 이 쓸데 없는 수건을 내어 버리게 하옵소서.
나의 못된 자아와 잘못된 기준과 나의 가식으로 저울질하는 저의 완고함과 우둔함을 내려 놓기를 원합니다. 가식적이며 어리석은 완고한 나 중심적인 것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데 전혀 필요가 없고 무거운 짐이 될 뿐입니다. 저의 어리석은 완고함을 벗어 버리고 자유롭게 되어 주님께서 고쳐 주시는 은혜가 임하기를 간구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저를 기뻐하시며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 앞에 나아가 영광의 빛 가운데 거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이 모든 은혜를 이미 저에게 베풀어 주셨읍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소서. 저를 덮고 있는 이 수건을 벗어 버리기를 원합니다.
주의 능력이 제게 임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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