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피할 길을 내사
(고전10:12-13)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감당할 시험
시험을 우리는 Temptation, Trial 혹은 시험, 연단이라 표현을 합니다.
시험은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삶이 내 생각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된다면 시험받을 일이 전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시련은 끊임없이 다가옵니다. 두 가지의 시험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나의 그릇된 자아로부터 시작된 시험이며 또 하나는 나의 믿음이 더욱 굳건하게 서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해할 수 없는 연단입니다.
욕심으로 잉태된 시험 (temptation)
우선 나의 그릇된 자아로부터 시작된 시험을 봅시다.
(요일2:15-16)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마귀가 우리를 아주 쉽게 뒤흔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마귀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우리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함으로 시험에 들게 합니다. 마귀는 이 세가지를 갖고 예수님을 유혹하며 시험하였습니다. 우리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이 세가지로 늘 유혹을 받으며 시험을 받습니다.
재물이 많은 이들은 늘 풍요로운 생활에 젖어 있다 보니 자신보다 가난한 자들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은 아무렇지 않게 행동을 하는데 다른 이들은 상처를 입습니다. 또한, 자신보다 더욱 부유한 자가 으스대며 업신여길 때 마음에 시험이 듭니다. 또 재물이 없는 이들은 나보다 재물이 많은 이들이 나를 조금이라도 얺찮케 대하면 저 사람이 재물이 많다고 나를 함부로 하나 하며 마음에 시험이 듭니다.
권세가 있는 자들은 권세를 누림에 익숙해져 아래 사람들을 함부로 대해도
마음에 부담을 갖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신보다
더욱 권세 있는 자가 자신을 억누르고 함부로 대할 때 마음에 시험이 듭니다. 또한, 권세 있는 자의 아래에 있는 자들은 위에 있는 이들이 억압적으로 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어 자신을
죽여야 하는 시험을 받지만, 마음에 앙심을 품습니다.
어떤 이가 나보다 잘 나 보일 때 마음에 시험이 듭니다. 그래서 나도 잘나 보이려고 온갖 수단을 씁니다. 자신이 잘나 보이도록 변해 갈 때마다 자신도 다른 이들의 마음에 시험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습니다.
내 안의 잘못된 자아로부터 시험을 받는 이들에 성령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약1:13-15)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시험을 받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는 나의
욕심으로 인하여 시험을 받습니다.
욕심의 근원은 무엇인가요?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이 나의
마음에 욕심을 심어줍니다.
갖지 말아야 할 것을 가지려 하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하고 겸손하지 않게 합니다. 나의 마음에 욕심이 자리 잡아 욕심쟁이가 되면 조그마한 욕심이 또 다른 욕심을 부르고 결국은 더 큰 욕심을
가지려고 발버둥을 치게 되어 사망이 주인 노릇을 하게 됩니다.
이런 시험은 나의 잘못된 마음의 그릇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나의 욕심을 하루빨리 버려야 합니다. 욕심으로 시작된 시험은 나를 점점 사망으로 인도하는 잘못된 시험입니다. 자신의 욕망으로 시작된 시험은 주님께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고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며 절제된 행동을 할 때 그는 그 시험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연단 (trial)
그런데 어떤 시험은 나의 잘못된 자아와는 연관이 없이 다가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연단이지요.
왜 이런 일들이 내게 임하였을까? 마치 욥이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난 시련을 겪었듯이 왜 이런 어려운
일들이 나를 힘들게 할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욥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받았습니다. 순식간에 모든 것, 가족,
재산, 명예를 잃었습니다. 너무나 괴로운 욥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욥6:2-3)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바다의 모래보다 무거울 것이라
이해할 수 없는 연단은 참으로 견디기 어렵습니다.
어떤 때는 억울한 사건을 통하여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일을 겪기도 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 죽고 싶을 만큼 어려워하기도 합니다.
단지 주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말할 수 없는 고통받는 자들도 있으며 순교하기도 합니다. 때론 원하지 않는 죽을 병을 만나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재정적으로 너무나 막막하여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가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연단의 기간은 축복의 기간입니다. 바로 연단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다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다가왔을 때 기뻐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으로 내게 연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게 다가온 어려운 시험들이 내가 감당할 만하여 허락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연단의 시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하여 연단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저에게도 수많은 시련과 시험이 있었습니다.
힘들었던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어려움이 내게 다가왔을 때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였던 적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들었던 어려움의 시간은 지나갔으며 지금은 기억의 한자리에 겨우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짧지 않은 인생에서 겪었던 시험들은
지금은 저의 기억의 끝자락에서 겨우 생각해 낼 만큼 제가 감당할 수 있었던 어려움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성정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제가 견디어 낼 수 있는 어려움만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그보다 힘든 어려움이 저에게 다가왔다면 저는 도무지 견디어 내지 못하고 파멸의 길로 갔을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에 의심을 주며 혼란을 줍니다.
(고후2:11) 우리로 사탄에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다.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 때로는 까불림을 당해 주님을 부인하여 세상의 소욕을 따르는 삶을 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주님 앞에 서서 시험에서 이길 수 있도록 주님께서는
바로 저를 위하여 증보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구해야 하며 또 시험에
들었다면 시험에서 이겨낼 수 있도록 주님께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제 안에 계신 주님께서 자비와 긍휼을 베푸실
것입니다.
임마누엘이신 주님께서 저와 항상 함께하시기에, 견디기 힘든 연단의 과정이지만 주님의 도우심으로 너끈히 넉넉하게 견디어
내며 주님 앞에 더욱 가까이 나아 갈 것입니다.
(13)
하나님은 미쁘사 (GOD
is faithful)
우리는 누군가가 믿을만하며 신실하다면 미덥다고 합니다.
우리가 연단에서 이길 수 있음은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녀를 지키시며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시며 진실하신 즉 미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신7:9는
미쁘신 하나님의 속성에 대하여 잘 표현한 말씀입니다.
(신7: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사탄은 만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를 순식간에 넘어뜨릴 수 있습니다.
(욥1: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욥1:19) 거친 들에서 큰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사탄은 순식간에 파괴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탄에게 멸망하지 않도록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잘 아십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신의 자녀가 무엇을 먹으면
나쁜지를 알고 주지 않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키십니다.
(13)
피할 길을 내사
너무나 힘든 상황에 부딪히게 되면 앞뒤로 꽉 막혀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절망만이 나를 휘돌아 가며 감싸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의 앞뒤가 꽉 막혀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주님께서는 피할 길을 예비하시고
인도하신다고 말씀을 합니다.
(히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는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까?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겪는 고난을 겪으셨기에 우리가 받는 고난을 이해하십니다. 얼마나 뼈를 깎는 고통이 있는지, 나의 마음이 갈기갈기 씻겨져 나가는지, 모래를 씹는 것과 같은 고통을 주님은 아십니다.
우리가 받는 고통의 아픔을 너무나 잘 아시는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녀인 우리를 도우십니다.
비록 보이지 않으시는 주님이시지만 바로 제 마음에 주님께서 임재하시기에 우리는 조금이나마 주님을 느낍니다. 주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고통 가운데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의 고통을 잘 안다. 많이 아프냐. 내가 너를 낫게
할 것이다. 너를 가로막은 것들을 내가 깨뜨리고 피할 길을 예비하였으니 조금만 더 참자 인내하자.
내가 너의 함께 하지 않느냐. 나는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니라.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당시 최강의 군대인 애굽 군대가 뒤를 쫓아 맹렬하게 죽이려고 추격해 옵니다. 쫓기며 가다 보니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뒤에는 당시 최강의 애굽 군대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갈 수 없고 뒤로도 갈 수 없는 진퇴양난입니다. 이스라엘은 살려 달라고 울며불며 차라리 애굽에 있었으면 이런 고난은 겪지 않을 텐데 하며 불평을 쏟아 냅니다. 이제 애굽 군대의
창칼에 무참하게 죽어야 할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여호와께서 역사하십니다. 아니 그 이전에도 여호와께서는 항상 함께하셨지만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에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명하십니다.
(출14:16)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홍해 바다가 둘로 나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둘로 갈린 바닷길로 이스라엘은 전원 무사하게 건넙니다. 하지만 뒤를 쫓아오던 애굽 군대는 바닷길을 막으신 여호와의 권능으로 인해 몰살합니다. 그 뒤로는 이스라엘은 애굽 군대의 추격을 더는 받지 않고 그토록 자신들을 얽매였던 애굽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앞뒤 좌우로 꽉 막힌 이스라엘에 피할 길을 터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다가 둘로 갈라진다는 것을 전혀 생각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바닷길을 터주셨습니다.
삶의 위기에 계십니까?
한 가지를 확신하십시오. 바로 내 안에 여호와께서 내주하시는지를 마음에 확신해 보시기 바랍니다.
(신33: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만일 여호와께서 내 안에 임재하시면 반드시 주님께서는 나를 가로막는 바다를
가르시고 나의 대적들을 멸하시며 피할
길을 마련해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그저 생각 안에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실질적으로 관여하시며 섭리하시며 나를 살리시는 구세주이십니다.
얼마 전에 저는 암에 걸린 고난의 시간을 겪었습니다.
암은 극심한 고통을 줍니다. 처음에는 암에 걸렸는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찌르는 고통을 주며 자신의 존재를 나타냅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 암에 걸렸다고
보고합니다. 그러면서 인생을 뒤돌아보며 전과는 다르게 죽음이 보다 실질적으로 가까이 다가왔음을 느낍니다.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주님께서는 저를 다시 살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주님께서는 저의 육신을 다시 살리시며 위로를 하셨습니다.
암에 극심한 고통이 따르듯 고난에도 엄청난 고통이 따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난은 나의 마음을 꼭꼭 무자비하게 찔러 댑니다. 나의 마음을 사정없이 찔러 대는 고난을 겪으며 주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바로 임할 수도 있지만 대개 바로 임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회복이
됩니다. 저를 고치시기 위하여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고난을 받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약1:2-4)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고난 가운데 계십니까?
조급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울며불며 안달한다고 해서 고난은 절대 떠나가지를 않습니다. 고난은 그 자리에서 요동하지
않고 꿈쩍하지도 않습니다. 주님께서 역사하실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피할 길을 내시고 인도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흔들림 없이
굳게 믿으십시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렘29:11-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니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찿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저에게 임한 고난은 재앙이 아닙니다.
고난은 결국 저에게 평안과 희망을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저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하는 여호와
앞에 나아가서 간절히 구하여야 합니다. 주님을 찾으셔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길에서 저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실체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27:3)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를 해치지 못하게 하리로다
얼마전에 커다란 포도원 근처에
가게 되었는데 Covid로 인하여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워 물을 주지 않아 포도나무들이 말라
비틀어져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포도원의 포도나무들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때에 따라 물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포도원 지기가 되시는 주님께서 가지인 저에게 때를 따라 물을 주시며 간수하시며 저를 지키십니다. 그 어떤 것도 저를 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신 주님께서 바로 제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고난이 다가올 때 감사하십시다. 바로 저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제가 주님 앞으로 가까이 오게 하는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저에게 고난과 연단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주님의 자녀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견디기 힘든 연단의 시간이 왔습니까?
좌절하지 말고 주님을 믿고 간절히 구하다 보면 어느새 고난에서 벗어나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고난이 와도 감사하며 기쁘게 받아들이세요. 주님께서 고쳐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상하지 않도록 밤낮으로 간수하며 물을 주시며 마르지 않도록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때로 찾아오는 결코 원치 않는 고난과 연단의 시간이 있습니다.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들어 맥이 빠지고 살고자 하는 의욕도 없어집니다. 어떻게 견디어
내야 하나 이 일을 어찌 해결해야 하는지 막막합니다. 도움을 청할 데도 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데도 없습니다.
아무도 저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습니다.
제가 간청할 데라고는 주님밖에 없음을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주여 이 고난에서 벗어나도록 인도 하소서.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말씀에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을 허락하시며 또한 피할 길을 내준다고
주님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주님 이 약속의 말씀대로
저를 연단의 시험으로부터 건져 주시고 피할 길로 인도 하소서.
때때로 말라 비틀어지지 않도록 흡족한 물을 주시며 밤낮으로 지켜 주시는
주님께서 저와 늘 함께하시며 저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저는 참으로 주님의 영광을 받은 축복받은 자입니다. 주님 저를 통하여 영광 받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