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7:9-11)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표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후손과 기업의 축복의 언약을 주시며 여러 민족의 아버지의 뜻을 가진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어 주십니다. 그리고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이 행하여야 할 첫번째를 명령하십니다.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아 대대로 언약의 표징으로 지켜서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례는 무엇입니까?
남자의 생식기 표피를 베는 것을 의미합니다. 표피를 베어내면 피가 나고 아물기까지 며칠 동안 아픕니다. 그 후에 몸에 흔적이 남은 것을 볼 때마다 후손과 기업의 축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이 생각이 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을 선민으로 택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순종하여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여 선민의식을 행하였습니다. 할례의 유무를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할 수 있었으며, 할례를 받은 자는 하나님의 언약 표징을 가진 선민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구약에는 할례를 행함으로 하나님의 택하심의 언약의 표징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신 후로 할례가 세례로 변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후로는 복음이 이방인에게도 전해집니다. 복음은 만민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방인은 대부분 할례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상황에 따라 할례를 받지 못할 수도 있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이에 할례의 진정한 의미를 말씀하시며 육신적인 할례 보다는 마음의 할례를 의미하는 세례를 행하라 하십니다.
(골2:11-12) 또 그 안에서 너희가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세례는 나의 모든 죄악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되었으며 이제로부터 새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별된 삶을 살며 장차 부활하신 주님과 같이 또한 부활할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미 세례를 받았습니다. 육체의 할례만을 받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할례를 받아 주님의 흔적이 몸에 새겨져야 합니다.
세례를 통하여 우리의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나의 마음이 할례를 받아 새롭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초대교회 당시 할례받은 흔적이 있는 선민으로 택함을 받은 유대인들은 자부심이 대단하여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과 심각한 마찰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롬2: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할례를 받았지만,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할례받지 않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냐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주님 안에서는 육체적으로 행한 할례나 무할례나 아무 의미가 없다고 역설합니다.
(롬2:28-29) 무릇 표면적 (outwardly)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inwardly)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참된 주님의 자녀가 되기 위하여는 육체적인 할례 뿐 아니라 마음의 할례도 받아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할례는 신체적인 표징으로 행하였지만 육체 뿐 아니라 마음에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두가지 할례가 있습니다.
표면적 (Outwardly) 할례와 이면적(Inwardly) 할례가 있습니다.
표면적 할례는 겉모습의 신자입니다.
형식적인 신자가 있습니다. 교회 문 안에 있을 때만 거룩해 보이는 성도이지 교회 문밖을 나가면 여느 세상 사람과 틀린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법이 없어도 사는 세상 사람은 저지르지 않는 심각한 죄악을 저지릅니다. 그래서 세상의 비탄 대상이 됩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에 속한 사람입니다. 기회가 되면 세상에 발을 디디고 세상을 따릅니다.
이면적 할례를 받으셔야 합니다.
육신에 흔적을 내는 표면적 할례 뿐 아니라 나의 마음에도 흔적을 낸 이면적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신10: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는 교만하지 않습니다. 내 자아를 내려놓습니다. 모든 것을 내 위주로 생각하는 것으부터 자유롭게 되어 주위를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해하고 배려합니다. 내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겸손합니다.
(신30-: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제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주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22:37-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몸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또한 이웃을 자신같이 사랑합니다.
이면적 할례를 받으면 마음에 할례를 받게 됩니다.
교만하고 목이 곧은 자신 위주의 마음에서 주님의 마음을 닮아 가난하고 겸손한 자가 됩니다.
형식적으로 남에게 보이려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또한 나의 이웃을 그 사람의 자리에서 바라보며 이해하며 배려하며 사랑합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기 위하여 저희는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신실한 이는 육신에 그리스도의 흔적 (Stigma)을 지니기도 합니다.
생식기 표피를 베어 흔적이 생긴 것과 같이 바로 우리의 마음에는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인치심을 받으셔야 합니다.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성령의 인치심으로 마음에 할례를 받은 이는 변화합니다. 좋은 예가 있습니다.
신실한 주님의 자녀를 탄압하려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던 중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은 주님을 만납니다. 빛이 임하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만난 사울은 눈이 멀고 고꾸라졌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사울은 완전히 변합니다. 자신이 진리라 알고 있었던 진리가 더는 진리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핍박했던 예수가 참 그리스도 예수임을 알게 된 바울의 삶은 전적인 변화를 겪습니다.
주님의 택하신 종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며 이전에는 핍박하였지만 도리어 예수님 때문에 수많은 핍박을 받게 됩니다.
왜 사도 바울은 180°로 바뀐 삶을 살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사도바울이 주님을 만나 마음의 할례를 받아 하나님의 흔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주님을 만나 성령이 임하여 마음에 새겨짐으로 그리스도의 흔적이 새겨지게 됩니다.
예수님을 전적으로 만나 변화되어 마음에 할례를 받아 예수님의 흔적이 새겨진 사울을 하나님께서는 귀하게 쓰십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저희 역시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의 흔적이 새겨지게 되면 저희의 외모의 모습은 아름답게 변합니다. 또한 저희 마음 또한 인치심을 받아 아름답게 변화하게 됩니다. 생각이 변하며 말이 변하며 행동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렘6:10)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면 여호와의 말씀이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말을 듣습니다. 어떤 말은 쓸데 없는 말인데도 저희 귀에 쏙쏙 박히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귀가 할례를 받으면 쓸데없는 말들은 걸러냅니다.
(사6:10) 아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우리의 눈이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눈을 주위로 돌리면 많은 것들이 보입니다. 그중에 저희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보이지만 저희에게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 쓸데없는 것들이 보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나의 내면의 마음에 할례를 받으셔야 합니다.
육체에 새긴 표면적 할례보다는 내 마음에 새겨진 세례를 받으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요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주님은 사람이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으며 거듭나기 위해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함을 거듭해서 말씀하십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말씀이기에 주님은 거듭 거듭해서 그 중요성을 알려 주십니다.
겉으로만 교인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교인이라 인정할지는 몰라도 주님은 결코 나의 자녀라고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삼상16:7)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이면적으로 할례받은 참된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물과 성령의 세례를 받아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주님의 자녀가 되셔야 합니다.
이미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주님의 자녀이십니까? 그렇다면 성령 충만함을 간절히 구하세요. 성령의 충만함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는 참으로 복된 자입니다.
주님의 축복으로 충만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선민의 표징으로 할례를 주셨습니다. 외면적으로 보이는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저의 마음이 할례를 받아 성령의 인치심으로 주님의 흔적이 새겨지기 원합니다.
주님은 저희의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저의 마음이 할례를 받아 성령의 인치심을 받기를 원하옵니다. 불처럼 바람처럼 임하시는 성령님 제게 충만하게 임하사 저의 마음이 할례를 받기를 간구합니다.
성령으로 충만케 하사 하나님을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며 또한 저의 이웃도 하나님의 언약 표징을 같이 받은 자로 사랑하며 교회에 덕을 세우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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