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13:8-9)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사울은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왕이 되었다.
이제 2년이 지나 어느정도 왕권이 확립이 되어가고 있을 즈음에 사울의 믿음을 시험하는 일이 벌어진다.
사울이 왕이 된지 2년후에 블레셋은 병거 3,000과 마병 6,000명의 대군으로 쳐들어 온다.
그당시 이스라엘에 쇠로 만든 칼이 사울과 요나단만이
갖고 있었다고 한다. 칼과 창과 병거로 잘 무장된 블레셋군과 몽둥이를
든 이스라엘군과는 현격한 전력의 차이를 보이며 누가 보아도 전쟁의 승패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위기에 몰린 사울은 사무엘에게 와서 번제를 올려 달라고 요청을 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
약속한 7일안에 오지를 않자, 두려워하며 요동하며 흩어지는 백성들을
다시 규합하고자 자신이 직접 번제를 드리게 된다. 번제를 드린 후에 사무엘은 왔는데 왜 늦게 온 것에 대한
해명은 전혀 언급되지 않고 다만 “왜 이와같은 일을 행하였느냐. 이
일로 인해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며,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자를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다” 라는 책망의 소리를 듣게 된다.
사울은 믿음의 시험에서 떨어지게 된다.
사울은 이 믿음의 시험에서 떨어져서 더 이상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없었으며, 그 결과 사울 대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이
왕권을 이어받는 전환점이 되게 된다. 이후로 사울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의 왕이 아닌 사람의
마음에 합한 왕으로서의 길을 가게 되며 점차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지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 사울은 사람으로부터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죽게 된다.
사울은 너무나 큰 것을 지불해야 했던 것이다.
왕으로 지명받았을 때 짐보따리 사이에 숨어 있을
정도로 겸손했더 사울.
성령의 충만함으로 예언자의 무리와 함께 예언을 하기도
했던 사울.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함을 입어 왕이 된 사울은
그 누구보다 더 하나님을 따랐던 사울.
하지만 사울은 이 사건후로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왜 그랬을까? 사울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인내가 없었던 것이다.
근본적으로 사울의 믿음의 대상이 하나님을 향하기
보다는 자신과 세상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약속이 성취되기까지
참는 인내심이 부족하였던 것이다.
사울은 하나님의 사람을 인내심을 갖고 참고 기다리는
것보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오직
제사장이 할 수 있는 번제를 자신이 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된다.
그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었으므로 하나님의 법을
온전히 준수하는 시범을 보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인앞에서 스스로 하나님의 법을 깨면서 자신을 나타내려고 하였다.
성경에는 인내한 사람들과 인내하지 못한 사람들의
기록이 있다.
인내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유업으로 받아 축복을
받지만, 그렇지않고 인내하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축복과는 관계가 없는 삶을 살았던
것을 볼 수 있다.
인내한 아브라함.
아브라함과 사라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70세 이었을 때 너의 후손으로 복을 받게 하리라는
약속을 받는다.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하나님으로 받고서 약 2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20년동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이루어 질 것인가 기대하며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 지기를 기다렸다. 때론 그 하나님의 약속이 희미해지며, 약속이
과연 이루어 질까 하는 의심도 있었겠지만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인내하며 오랜시간을 기다렸다.
그 결과 아브라함과 사라는 마침내 아들 이삭을 얻게
되었으며,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다.
100년동안 인내한 노아
노아는 하나님께서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받은 후에
홍수가 날것을 대비하여 100년 동안 방주를 지었다.
노아의 시대에는 비라는 것이 없었다. 단지 하늘에는 또 다른 물의 층이 있어 늘 습기가 가득하였을 것이라고 추측을 한다. 노아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100년동안 사람들의 무관심과 따돌림을 당하면서 방주를 지었다.
인내를 갖고 방주를 지었고 히브리서에 믿음의 조상의 한사람으로 성경에는 기록된다.
인내하지 못한 에서
수렵을 업으로 삼은 에서가 사냥에서 지쳐서 집으로
돌아 왔을때 야곱은 에서의 장자권과 팥죽 한그릇과 바꾸자는 제안을 한다. 너무나 허기가 진 에서는 야곱의 제안에 승낙하여 야곱과 에서는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된다. 만일 에서가 인내심이 있어서 비록 너무나 허기가 졌지만 조금더 참았더라면 자신의 장자권의 축복을 팥죽 한 그릇과 바꾸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내심과 반대의 특성은 성급함이다.
성급한 입다.
사사 입다는 전쟁에서 승리에 도취하여 처음으로 자신을
맞이하는 자를 제물로 바치겠다고 서원을 한다.
이 성급한 맹세로 인하여 입다는 자신의 딸을 성전의
예물로 바치게 된다.
성급한 사울
사울은 블레셋과 싸움을 하면서 원수에게 보복할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맹세를 하면서 어기는 자는 반드시 죽음을 당하게 될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단독적으로 습격하느라고 듣지 못한 요나단은
벌꿀은 찍어 먹고 다시 활기를 찿게 된다.
이 일로 요나단은 사울의 맹세로 죽게 되었지만 부하
장수들의 만려로 요나단은 죽지 않게 된다. 사울은 치열한 전투에서 지친 자신의 부하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성급하게 맹세하여 전 군대가 위기에 처하도록 하였다. 만일 사울이 사려가 깊은 지도자이었다면
전쟁중에 그와같은 성급한 어처구니 없는 맹세와 저주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내의 하나님
왜 우리는 “인내”를 가져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는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속성중에 하나가 “인내”이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인내의 속성을 갖고 계신다.
하나님은 인내의 속성을 갖고 계신다.
(롬15:4)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주사
(출34: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그리스도 역시 인내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인내하시며 십자가의 형벌을 고스란히
받으셨다.
(살후3: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성령의 열매중의 하나는 인내이다.
(갈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인내의 유익은 무엇인가
결실하게 한다.
(눅 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사랑
온전한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인내가 있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오래 참게 한다.
(고전13:4-5)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의 정의를 말한 이 구절에서 “참고”는 두번 반복을 한다. “오래 참고”로 시작해서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딘다”로
끝을 맺는다.
용서
(엡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어떻게 사랑하실까?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이 내가 다른 이를
사랑할 때 상대방을 판단하고 사랑할만 하면 사랑으로 대하듯이 하신다면 결코 나를 사랑하실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안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실 선함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모습 그대로를 바라보시며 참고 또 참으시며 사랑하신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상대방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서로 용납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참고 참는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상대방을 나의 기준으로 이해하다보면 결코 상대방을
사랑할 수 없게 된다.
다른 이들을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를 바라보며 그의 잘못됨을 참고 참으면서 사랑해야 한다.
그럴때 비로서 나는 나와 관계가 있는 이들의 잘못을
용납하며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을 온전하게 용납하기 위해서는 단시간에 이루어
지지 않는다.
사랑의 마음을 갖고 참고 또 참으며 인내할 때 비로서
서로 용납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고 사랑의 마음도 없고 오래 참을수도 없다면
결코 서로 용납할 수 없게 된다.
구원의 완성
(애3: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시62: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시37:7) 여호와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눅21: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롬8: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나의 어떤 선행으로도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단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주안에서 선함을 하며
잠잠히 참고 기다리며 여호와의 구원이 나에게 임하기를 바라보아야 한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택이시며 주권이시다.
잠잠히 참고 기다리며 여호와의 은혜와 자비가 나에게
부어지기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인내는 어떻게 얻어지는가?
인내은 믿음의 시련을 통하여 얻어진다.
나의 믿음을 시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인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환난의 위기 가운데서 참고 견디는 인내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을 성장시킨다.
믿음에서 필요한 것이 인내이다.
인내는 그리스도의 자녀인 우리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며, 인내는 믿음의 시련을 통하여 얻어진다.
(히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약1:3-4)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롬5:3-4)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인내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세상에 요동하지
않고 굳건히 기다릴 수 있게 한다.
그렇지 않고 인내가 없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있음을
어렴풋이 알긴 알지만, 세상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기 때문에 기다릴 수 없어 세상의 관습을 쫓아 가게 된다.
모든 것이 잘 될 때에는 나의 믿음 또한 잘 자라는
듯하다. 그래서 착각을 하게 된다.
이만하면 나는 그래도 괜찮은 믿음을 갖고 있다고
착각을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풍요롭다면 결코 나의 믿음이 어디에 있는
지를 잘 알 수 없다.
믿음은 삶의 위기가 올 때 드러나게 된다.
예상하지 못한 인생의 어려움과 걸림돌에 걸리게 되면
확고하게 갖고 있었다고 믿었던 믿음은 흔들리게 된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심한 비바람이 불어 나무가 꺾이며
집이 흔들거릴 때, 나의 믿음 역시 흔들린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외부의 상황적 요소들을 보면 도무지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잠잠히 기다리지를 못하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기 위해 온갖 세상의 수단을 간구하며, 세상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세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버리게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된다. 그 결과 내가 갖고 있다고 믿은 믿음은 산산조각이 나서 공중에 흩어지고야 만다.
인내는 우리의 믿음생활에서 반드시 가져야 하는 속성이다.
인내없이 우리의 믿음은 성장할 수 없다.
사울은 믿음의 시련이 왔을 때 하나님 안에서 잠잠히
참고 인내하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대로 해결하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참아내는 인내를 보시기를 바라신다.
말씀을 정리하면
사울은 삶의 위기가 왔을때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지
못해 더 이상 인내하지 못하고 세상사람들을 의식하여 세상의 방법대로 행함으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왕권을 하나님의 뜻에 맞는 다윗에게로 옮기셨다.
이후에 사울의 삶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멀어진 삶을 살게 되었다.
인내한 아브라함이나 노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존귀한 도구로 사용되었지만, 인내하지 못한 에서나 사울은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멀어져서 세상에 속한 자가 결국은 멸망당할 수 밖에 없었다.
인내는 하나님의 속성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내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내하심으로 십자가에서 구원을 온전히 이루셨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인내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또한 말씀이 내안에서 결실하기 위해서는 참고 기다리는
인내가 있어야한다.
서로 용납하기 위해서는 오래 참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구원을 온전하게 이루기 위해서는 잠잠히 여호와의
은혜를 기다려야 한다.
인내는 그저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인내는 믿음의 시련을 통하여 얻어진다.
인내는 우리의 믿음의 성장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인내는 내가 갖고
있는 믿음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게 한다.
인내는 우리가 하나님에게
점점 가까이 가게 한다.
우리의 삶에서 반드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위기의 순간들.
때로는 넘어야 할
위기가 너무나 가파르고 높아서 어떻게 넘어야 하는지를 몰라 상심하고 있을때 나의 마음속에서 잠잠히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
너는 잠잠히 내가
너에게 행하는 일들을 보라. 나의 사랑하는 자야,
잠잠히 참고 기다리라.
하지만 마음속에서
어렴풋이 들은 이 말씀을 의지하고 믿고 참고 또 참으며 기다리기 보다는 세상의 눈으로 보아 판단하고 세상의 방법으로 참지 못하고 성급하게 해결하려고
한다.
잘 참고 기다리며
인내를 배우자.
시험을 잘 통과한
인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아갈때 그 길을 잘 인도해 줄것이다.
인내는 나의 믿음을
자라게 하며, 하나님께서는 많은 상급으로 나에게 보상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하심으로 왕이 된 사울.
그가 처음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읍니다.
사울은 왕이 되어
자신을 왕으로 선택하신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를 만들기를 원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려움이
닥쳐오자 사람들은 왕인 자신의 leadership을 의심하고 사울로부터 떠났으며
사방에는 막강한
적의 위협앞에 있어서 자신을 지키기도 급급하게 되었읍니다.
그러한 환경속에서
사울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기 보다는
사람들을 의지하려고
하였읍니다.
모든 것이 자신을
조여오는 임박한 상황에서 사무엘이 약속한 7일이 지나도 오지 않자
이렇게 무작정
기다리다가는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잃을수도 있겠구나 염려한 사울은
그만 자신의 방법대로
이를 해결하려고 하였읍니다.
저 역시 어려운
상황이 닥쳐 왔을때 잠잠하게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기다리기 보다는
세상의 도움을
바라며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였읍니다.
많은 잘못됨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역사하시기까지 참고 기다려야하는 인내가 필요함을 조금씩 알게 되었읍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시련을 겪으면서 얻는 인내를 통하여 점점 자라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믿으며 참고 인내하여
구원을 온전하게
이루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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