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4:41) They were terrified and asked each other. Who is this? Even the wind and the waves obey Him.
태어난 지 6개월된 영인이가 처음 보는 나를 한참이나 가만히 쳐다 본다.
아마 이 아이는 아빠와 엄마와 할머니와 형제와는 다른 이 사람이 누구이지 하며 얼굴을 익히려고 쳐다 볼 것이다. 갓난 아이도 자신에게 가까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관심을 갖고 알려고 한다.
예수님은 누구인가?
이 질문은 지금의 우리 뿐 아니라 예수님과 3년간 동거동락하며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경험한 제자들의 질문이기도 하다. 또한 그후에 2000년이 지나는 동안 주님의 이름을 들었던 세계의 사방곳곳에서 사람들이 가졌던 질문이다. 그리고 지금 교회가 사방에 널려 있는 한국이나 이곳 미국이나 세상 곳곳에 예수님의 이름이 전파된 곳에 사는 사람이라면 가진 질문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과연 누구이신가?
2000년 전의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을 처음 만나서 주님의 부르심으로 주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아직 그들은 주님이 누구이신지를 알 수 없었다.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하며 천국복음을 전하시며 제자들을 부르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들린 자들의 많은 귀신을 쫓아 내시고, 각종 병에 걸린 자들을 낫게 하시며 죄인을 부르시는 것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가까이서 보면 볼수록 주님께서 가지신 어떤 영적인 힘을 느끼며 주님에 대해서 어렴풋이 느낄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주님이 자신이 말하는 대로 구약에서 예언한 대로 메시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신할 수 없었다.
제자들은 바로 주님곁에 있었지만 그들은 주님의 실체를 볼수 없었고 단지 주님의 외부적인 모습만을 보았던 것이다. 대부분의 교회를 나가는 사람들 역시 주님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표면적인 예수님만을 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예수님은 병이 낫기를 원해 너무나 몰려드는 사람을 피해 호수 건너편으로 가시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한 배에 타서 가고 있을 때 심한 바람과 파도를 만나 배에 물이 가득차서 배가 거의 가라앉게 되었다. 배가 위험에 빠져 모두가 물에 빠져 죽게 되었을 때 제자들은 곤히 주무시고 계시는 주님을 깨운다. 그리고 “주여 우리가 물에 빠져 거의 죽게 되었나이다” 하며 주님께 호소한다.
주님은 사납게 몰아치는 파다와 바람에게 “파도야. 바람아. 잠잠하라” 명령하신다.
(막4:39)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 지더라.
(마8:26)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눅8:24)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즉시로 파다와 바람은 완전하게 잠잠해 지는 것을 보고 제자들은 놀랍고 두려워하며 “이가 누구냐”하며 고백을 한다. 제자들은 비로서 주님의 실체를 보았던 것이다. 하나님이신 주님을 바로 옆에서 보며 경험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은 누구인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로 사람들은 그후 2000년 동안 이 질문에 당면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간다고는 하지만 진정 주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주님을 표면적으로 상식적으로는 많이 들어서 알고 있다. 2000년 전에 오신 분이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기독교를 세운 사람이라고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주님을 만나 주님을 알게 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예수님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예수님은 누구이시지?” 하며 질문을 하며 자신의 삶 가운데서 개입하시는 주님을 만나 알게 된 사람들은 자녀로서 더욱 깊은 관계로 들어 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주님에 대한 관심조차 없다면 주님이 주시는 깊은 교제가 주는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기쁨을 소유할 수 없게 되어 조금만 일에도 걸려 넘어질 수 밖에 없다.
주님의 실체를 만난 제자들은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를 보자.
A. 주님을 경외함
주님을 실제 체험적으로 만나게 되면 놀라고 두려워하게 된다.
왜냐하면 주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호수를 건너가다 광풍을 만나 사나운 파도가 배를 거의 침수시키자 무서워하여 고물에서 곤히 주무시고 계시는 주님을 깨운다. 깨신 주님은 거세게 부는 바람과 파도를 향하여 “잠잠하라”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그러자 그토록 흉용스럽게 자신들에게 내리치던 바람과 파도는 주님의 말씀 한마디로 아주 잔잔하게 되었다.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제자들은 주님의 한마디 말씀에 자연도 복종하는 것을 보고 놀랍고 두려워할 수 밖에 없었다.
광풍과 파도로 인해 죽을 고통가운데서 여호와께 부르짖을때 여호와께서 잠잠케 하시고 항구로 안전하게 인도하는 말씀이 시편에 예언되어 있다. 제자들과 예수님이 처한 환경과 일치한다.
(시107:28-30)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 도다.
시편에는 홍수, 폭풍, 바다를 지배하시는 여호와의 권능이 묘사된다.
(시89:9) 주께서 바다의 파도를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잔잔하게 하시나이다.
(시65:7-8) 바다의 설렘과 물결의 흔들림과 만민의 소요까지 진정하시나이다. 땅 끝에 사는 자가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나이다.
여호와는 자연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다.
여호와는 광풍을 창조하셨고 바다물결도 창조하셨다.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의 말씀에 순종할 수 밖에 없다. 시편의 말씀처럼 여호와이신 주님은 성난 파도와 바다를 잠잠케 하셨다.
제자들은 시편의 말씀을 기억하며 이 같은 일을 행하신 주님은 과연 여호와 이시구나 느낄때 제자들은 두렵고 놀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제자들은 자신들과 함께 배에 타고 있는 예수님은 과연 하나님이셨음을 알고경외함으로 두렵고 떨며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제자들은 주님의 실체를 비로서 만난 것이다. 하지만 그 주님에 대한 믿음은 아직 확고하게 자리잡지 못했다. 그래서 그 후에 주님을 배반하기도 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버리고 멀리 도망을 하기도 하였지만, 주님의 실체를 만난 그 믿음은 제자들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어 있어 그 후에 주님의 참된 제자로서 복음을 세계에 널리 전파하는 교두보 역활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쁘게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신 주님을 체험을 통해서 비로서 주님의 실체를 알게 된 제자들은 두려워하며 놀랄수 밖에 없었다.
제자들뿐 아니라 사람들은 주님을 만날 때 두려워하였다.
(마8: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막4: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눅8:25) 그들이 두려워 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구약에 모세는 하나님을 만났을때 두려워 얼굴을 가렸다.
(출3:6)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칠 때 그곳에 거하는 사람들은 여호와의 소식을 듣고는 마음이 녹았다.
(수2: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계시록을 쓴 사도요한은 주님의 임재를 보고는 땅에 엎드려져 죽은 자 같이 되었다.
(계1: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려져 죽은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사도요한은 주님의 가장 가까운 친구요 제자이었다. 주님은 사도요한을 많이 사랑하셨고 이 땅에 계실때 많은 교제를 나누었다. 누구보다 주님을 가장 가까이서 교제한 사도 요한이지만 부활하사 영광의 몸을 입으신 주님을 볼 때에 두려워서 주님발 앞에 엎드려져 죽은 자같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놀랍다”, “두려워 하다”의 원어는 “경외하다” 뜻을 가진다.
주님이 누구이신지를 알 때 사람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두려워 하며 주를 경외하게 된다.
주님의 실체를 알게 된 제자들은 두려움의 대상이 바뀐 것이다.
광풍과 거센 파도를 보며 자연의 위협에 두려워 했던 제자들은 더 이상 광풍과 파도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하는 자는 여호와의 자비를 바란다. 그런 자를 보시면서 여호와께서는 은혜를 베푸사 다시 살리신다.
(시33:18-19)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
B.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
주님은 누구이신가?
주님은 내가 느끼든지 못느끼든지 늘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
주님은 성난 파도와 바람이 부는 배에 제자들과 함께 계셨듯이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신다.
주님은 성난 파도가 이는 배에 타고 있는 나와 함께 하신다.
때로는 절망가운데 있지만 주님께서 주무시는듯 주님의 임재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여호와이신 주님은 주무시지 않으신다.
(시 121:3-4)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왜 주님은 주무시고 계신 듯 할 까?
그것은 바로 나의 믿음의 유익을 위해서이다.
(시66:9-10)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하락하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때로 우리는 이 세상에 나 홀로인듯한 느낌이 들때가 있다. 어디를 둘러 보아도 빠져 나갈 곳이 보이지 않는다. 주님의 자녀이지만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느낄수 없다.
하지만 주무시는듯 아무런 행동을 하시지 않으시는 주님께서는 나의 실족함을 더 이상 버려두지 아니하신다. 주님께서는 “주여 빠져 거의 죽게 되었나이다” 하는 나의 절규를 듣고는 주님께서는 “바람아. 파도여 잠잠하라” 명령하신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 하느냐” 말씀하신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듣고 “아 이제 우리는 살았구나” 하고 마음에 위안을 가졌을 것이다.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배에 있었으므로 심한 파도가 몰아치고 바람이 불었어도 아무 염려도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들은 같이 계신 주님을 보지 않고 환경만을 보았기에 자신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두려워 하였다.
“바람아 파도야 잠잠하라.”
이 말씀은 이제는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시며 명령이시다.
“너는 내가 너와 함께 하는데 왜 두려워 하느냐. 잠잠하라.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때로는 사방에서 나를 우격다짐으로 덮치는 경험을 한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찿아 온다면 바로 그곳이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귀한 축복의 자리이다.
바람아 파도야 잠잠하라.
주님은 바로 나를 위하여 바람과 파도를 잠잠하게 하실 것이다.
C. 나의 고백
주님의 실체를 만난 제자들은 “이런 일을 행한 이가 누구이신가” 경외함으로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 그토록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하며 날뛰던 파도가 주님의 “잠잠하라” 한 마디의 말씀으로 완전하게 잠잠해지는 것을 목격한 순간 자연도 자신의 권위로서 복종시키는 주님을 보고 두렵고 놀라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
백부장은 자신이 못박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 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들과 운명하시면서 지진이 나며 땅이 갈라지는 것을 보고 백부장은 예수님의 실체를 만난 것이다. 그후로 그의 삶은 전적으로 변화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베드로는 “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하며 고백하였다.
귀신들도 주님을 보고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하며 두려워하며 고백을 한다.
나에게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
주님을 나는 실제적으로 만났는가?
하나님이신 주님을 과연 나는 만났는가?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라는 질문을 갖고 살때
우리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 가게 되며 주님은 창조주이심을 확신하며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귀한 축복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과 함께 배에 탄 제자들이 심한 바람과 파도가 흉용하며 뛰놀며
자신들이 탄 배안에 가득차서 배가 거의 가라앉게 되어 목숨의 위협을 알고는
주여 내가 죽겠나이다. 나를 살리소서 절규할 수 밖에 없었읍니다.
주님께서 나와 같이 풍랑이 이는 배에 타고 계시지만 주님의 임재를 느낄 수 없읍니다.
하지만 주님은 늘 저와 함께 하시며 저를 안전한 포구로 인도하십니다.
삶의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주님의 자비를 배우기를 원하시는 주님.
주님께서는 저의 살려 달라는 절규를 들으시고 “바다야, 바람아, 잠잠하라” 명령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에 그토록 날뛰던 바람과 파도는 잠잠해 졌읍니다.
그 가운데서 주님을 만납니다.
주님의 실체를 만나 주님이 나의 구주이시며 나의 하나님 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한 후로는 때로는 실수와 실패를 하기도 하지만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주님을 따라가는 아름답고 값진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주님은 늘 저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저를 덮치려는 날뛰는 바다와 파도를 보시며 “잠잠하라” 명령하십니다.
주님은 온 우주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만왕의 왕이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런 창조주이신 주님이 저를 부르시며 “내 아들아 내 딸아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세상끝까지 함께 함이니라” 말씀하십니다.
저의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은 “예수님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늘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늘 갖고 있어 늘 주님께 감사하며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느끼며 살아 이 땅에서 미리 천국의 삶을 경험하며 많은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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