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14:3) 예수께서 배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우선 생각해볼 것은 주님은 예루살렘에 들어 오신 후에 베다니로 가셔서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셨다는 것이다. 베다디에는 사랑하는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가 살고 있는 곳이다. 게다가 바로 얼마전에 주님은 죽은지 삼일 지나 썩는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셨다. 감사해서 주님을 초청해서 주님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겠지만 주님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려는 나사로의 집에 거하지 않으시고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셨다.참으로 우리 보통 사람들의 생각으로 전혀 납득이 가지 않은 상황이다. 주님은 손이 썩어 문드려져 가는 나병을 앓고 있는 시몬의 집에사 식사를 하셨다. 나병환자 시몬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고는 생각이 들지를 않는다, 설령 시몬이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명망이 있는 자일지라도 나병을 앓고 있는 자와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결코 쉽게 납득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주님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 자의 친구이시다.
사회적으로 소외받고 있는가?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병이 들어 있는가?
가정에서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서로 연합이 되지 않아 불안한가?
주님앞에 나아가자. 주님은 소외된 자를 기다리고 계신다.
식사를 하고 계실때에 한 여인이 지극히 비싼 향유를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붓는다.
이 여인은 요한복음에는 마리아라고 소개된다.
(요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딱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그런데 눅7:37에는 이렇게 기록되어있다.
(눅7: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성경에는 몇몇의 마리아가 등장을 한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창녀였던 막달라 마리아, 예수님의 제자들인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베다디에 사는 마르다와 나사로와 형제인 마리아.
요12:3의 마리아는 마르다와 나사로의 형제임에는 확실하다. 하지만 눅7:37의 죄를 지은 여자와 동일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이 된다. 왜냐하면 눅7:37에 나오는 이 여인은 아마 창녀인 막달라 마리아일 것이다.
즉 향유를 부은 사건이 한번인지 두번인지 명확하게 구분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한 여인이 지극히 비싼 나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은 것이다.
마리아가 매우 값진 향유를 담은 옥합을 깨고 나드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부었다. 지금도 비싸지만 그 당시 향유는 매우 귀한 것이었다. 이 향유는 일년 월급보다 비싼 향유이니 지금의 기준으로도 매우 값비싼 향유이었다. 어쩌면 이 마리아는 여자로서 과하게 멋을 낼 줄 아는 여인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를 본 제자들은 왜 이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면서 마리아게 질책을 한다.
그런 모습을 보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33절에서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다. 이는 내 장사를 준비하기 위함이라” 말씀 하셨다.
A. 왜 그토록 값이 나가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향유를 예수님께 부을수 있었을까?
1. 가장 소중한 것을 깸
마리아는 어찌보면 멋을 내는 것을 즐겨하던 자매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녀는 그처럼 비싼 향유를 소유하였다. 지금 수준으로도 그토록 비싼 향수를 갖고 있는 여인은 무척이나 드물것이다. 그 무엇보다 마리아는 향유를 깊이 간직하고 보물 여기듯이 대하였을 것이다. 어쩌면 마리아에게 향유는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라비 나사로가 죽었을때에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마리아는 그토록 아끼던 향유를 주님을 위해서는 깨뜨렸던 것이다.
그녀의 귀중함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더 것이다. 마리아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드린 것이다. 마리아는 자신의 오빠인 나사로가 죽었을때에도 쓰지 않았던 향유를 주님을 위해서는 기꺼이 내놓았던 것이다. 이처럼 옥합을 깨뜨려 귀한 향유를 주님의 몸에 부은 마리아는 주님의 장례를 준비하였고, 또한 영원토록 성경에 기록되는 축복을 받았다.
(마26:12-13)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함이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주님보다 더욱 귀하게 여기는 것이 있는가?
그것을 깨야 한다.
그것을 깨야 한다.
2. 말씀을 사모
마리아는 말씀을 사모하던 자매이다.
(눅10: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리아는 주님을 만난 후로는 주님곁에서 말씀을 듣기를 사모하던 자이다.
지금도 교회에서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은 대개 맨 앞자리에 앉으려고 한다.
그당시 유대관습으로 랍비앞에 여자가 앉는 다는 것은 매우 드물었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말씀을 사모하여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었다.
말씀을 사모하던 마리아는 주님으로부터 자신이 곧 얼마후면 세상을 떠나간다는 말씀을 몇번이나 들었으며 이제는 결심하고 주님을 떠나 보낼 준비를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자신이 아끼는 가장 소중한 향유를 주님께 부어 드리며 장례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말씀을 사모하는가?
꿀송이 같이 달고 오묘한 주님의 말씀을 매일 매일 가까이 하는가?
말씀을 사모하자. 마리아가 사랑하는 주님의 장례를 준비할 수 있었듯이, 우리 또한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자.
3. 죄인
또 다른 향유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이 여인은 막달라 마리아이며 그녀는 일곱 귀신이 들렸었고 창녀였다.
그런데 주님께서 많은 죄를 지은 이 여인을 사하시고 고쳐 주셨다.
(눅7:47-48)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래서 용서함을 받은 것이 너무나 고마워서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을 자신의 머리칼로 닦으며 자신이 갖고 있었던 소중한 옥합을 열어서 주님의 발에 향유를 부어 주님의 발을 닦았다.
죄용서 받은 사랑이 너무나 커서 이 죄많은 여인은 향유를 주님께 부었던 것이다.
주님 역시 제자들의 발을 손수 닦아 주셨다.
주님은 나의 발 또한 닦아 주셨다. 그리고 지금도 죄로 더럽혀진 나의 발을 닦고 계신다.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약속하신 주님.
주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지 않는가?
너무나 고마우신 주님께 나는 무엇을 드렸는가?
너무나 고마우신 주님께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향유들은 옥합을 깨뜨렸는가?
4. 감사
주님은 죽은지 삼일이 지나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무덤으로부터 살리셨다.
마리아는 자신의 오라비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께 감사의 보답을 하기를 원하였을 하였을 것이다.
죽은 나를 살리신 주님.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주님.
주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너무나 고마우신 주님.
주님께 받은 사랑이 너무나 큰데 나는 주님께 드린 것이 없다.
B. 성경에 기록된 옥합을 깨뜨린 예
1. 주님
바로 주님께서 자신의 옥합을 깨셨다.
주님은 가장 소중한 목숨을 바로 나를 위하여 버리셨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고통을 받으시고 자신의 목숨의 옥합을 깨뜨리셔서 온 몸이 찢시셨으며 온 몸의 보혈을 쏟으셨다.
(눅22: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마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 아브라함
100세에 난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렸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가장 소중한 옥합이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자신의 분신이요 이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옥합이었다.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브라함에게 가장 소중한 아들 이삭을 내어 놓으라고 요청하신다. 아브라함은 이 아들을 모리아 산위에서 제물로 드림으로 자신의 가장 소중한 옥합을 깨뜨렸다.
아브라함은 이 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창22:12) 네가 네 아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그리고 아브라함은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이곳을 “여호와 이레”로 부르며 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여호와께 감사를 드렸다.
3. 사르밧 과부
사르밧 과부는 마지막 남은 한끼 먹을 양식을 아들들과 먹고 죽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엘리야가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달라는 말에 두말않고 자신과 아들들이 먹을 양식으로 엘리야에게 공궤하였다. 사르밧 과부는 가장 소중했던 배고픔의 옥합을 깨뜨렸다.
(왕상17:1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그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또한 이 사르밧과부의 아들이 죽었지만 엘리야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다시 살릴 수 있었다.
사르밧과부는 가장 소중한 옥합을 깨뜨려 자신과 가족이 굶어죽지 않게 되었으며 또한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하였다.
4. 부자청년과 삭개오
주님은 부자청년에게 네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라 말씀하셨다. 그러자 이 부자청년은 근심하며 갔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왜냐하면 부자청년에게는 재물은 그의 모든 것이요 가장 소중한 옥합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깨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삭개오를 보시고는 너의 재산 모두를 내어놓으라는 말씀을 단 한마디도 하시지 않으셨다. 오히려 주님을 만난 삭개오가 자진해서 자신의 소유물을 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말했다.
(눅19:5, 8-9) 예수께서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리라.
삭개오가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갑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는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삭개오 역시 재물을 그 무엇보다도 아끼고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의 마음속에 거하시게 되자 삭개오는 변하였다.
주님께서 만일 내 안에 계신다면 나는 변할수 밖에 없다.
내가 그동안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이 결국은 없어져 버릴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버리게 된다. 주님을 만난 삭개오는 비로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재물이란 옥합을 깨뜨릴 수 있었다.
말씀을 정리하면,
(마19:27, 29)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적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기까? 내 이름을 위하어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약속하리라.
주님은 여기서 모든 제자들에게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다. 만일 부모나 형제나 전토나 어떤 것이라도 주님을 믿는 믿음에 방해가 된다면 버리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옥합을 깨어 버렸다.
주님을 믿기 위해 방해가 되는 것들은 그것이 비록 가장 소중한 옥합일지라도 깨어 버려야 한다.
그러한 소중한 것을 버린 자들에게 주님은 몇배의 축복과 무엇보다 중요한 영생을 약속하셨다.
나의 가장 소중한 옥합을 깨어 너무나 소중하며 사랑하는 주님께 드렸는가?
나의 가장 가치있는 것을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을 위해 깰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세상에 속하여 있읍니다.
세상에 속한 것들은 아무리 값이 나가는 것일지라도 저의 생명보다 가치가 없읍니다.
그런데 저는 이처럼 결국은 소멸되어 버릴 헛된 것들을 옥합안에 담고 영원토록 간직하기를 원했읍니다.
우리의 생명은 이제 얼마후면 저희의 육신으로부터 분리될 수 밖에 없읍니다.
되돌아 보면 삶의 여정이라는 것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지나가는 화살과도 같이 너무나도 빨리 흘러 버렸읍니다. 이제 앞으로 남은 저의 삶 역시 순식간에 지나가서 마지막 숨을 쉬는 그 순간이 올 것입니다.
그 이전에 늦기전에 제가 소중하게 간직한 옥합을 깨뜨려서 주님께 드리기를 원합니다.
어쩌면 주님보다 더욱 사랑했고 소중하게 여긴 저의 옥합을 결단하고 깨기를 원합니다.
저는 할 수 없읍니다.
내가 너의 집에 오늘 거하리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받아 들인 삭개오는 자신의 옥합을 깨뜨릭 수 있었읍니다.
주여 제 안에 충만히 거하소서.
제가 변하여 저를 주님으로부터 가로 막았던 옥합을 깨뜨리게 하옵소서.
저를 통하여 주님 영광받으소서.
주님을 축복합니다.
주님의 축복이 저에게 또한 임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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