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마가복음은 권능을 가지신 주님께서 일하신 사역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유독 귀신들린 자를 낫게 하시고 병든 자들을 낫게 하신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 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얼마동안 이 땅에 머무시며 많은 일들을 하셨다.
그리고 이제 하늘에 승천하시기 전에 복음전파와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을 말씀하신후에 하늘로 승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영적이며 실체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많은 성도들이 영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대다수의 신자들은 무조건 이단시하거나 광신자로 취급을 하며 도무지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은 너무나 고상한 신앙생활을 추구하려고 한다.
그 결과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신앙인들은 너무나 나약한 신앙생활을 한다.
영적인 표적에 너무나 거부감을 갖지 말아야 한다.
거부감을 갖게 된 이유가 영적인 능력을 가졌다는 사람들이 그 주신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는 자들이 믿음이 온전하게 성숙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어떤 이기적인 목적으로 영적인 능력을 잘못된 방향으로 변형되어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즉 사람들에게는 신적인 모습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죄의 속성으로 인해 많이 가려져 있어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은사로 주신 어떤 능력이 있는지 모른다. 주님을 믿는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각인되어 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내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각인되었다는 사실이!
믿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표적들
1. 귀신을 쫓아냄
주님은 귀신들린 자들을 낫게 하셨다.
주님의 제자들역시 귀신들린 자들을 낫게 하였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사단을 이기셨다.
예수께서 사단을 이기셨으므로 사단은 번개가 떨어지듯 떨어졌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사단은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된다.
재림하시전까지 사단은 역사를 한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는 마귀를 대적하여야 한다.
우리의 삶의 긍극적의 목적은 구원이다.
사단은 내가 구원을 얻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참소한다.
항상 나를 참소하는 존재인 사단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않된다.
그리고 악한 원수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자를 찿고 있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자를 찿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이 말씀에는 대적 마귀에게는 한계가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대적 마귀는 두루 다니며 삼킬자를 찿아야 한다.
사단은 한 곳에 머무르고 있다면 다른 곳의 사정을 알 수 없는 제한적인 지혜를 갖고 있다.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물으신다. 하나님께서 어디에 있었느냐 하고 물으실 떄 사단은 이곳 저곳을 두루 다녀 왔다고 대답을 한다. 즉 여기 있을 때는 저기 일을 모르고, 저기 있을 때는 여기 일을 모름을 나타낸다.
그리고 사단은 우리의 몸은 죽일수는 있지만 영혼을 죽이지는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몸과 영혼을 능히 영원한 불못에서 멸하실수 있기 때문에 사단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섬겨야 한다.
(마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사단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 하며 어떻게 든지 막으려고 한다.
사단에게 질질 끌려 나니는 신앙생활에서 벗어나서 사단을 대적해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간교한 마귀로 부터 이기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잘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
(엡 6:12-13)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늘 말씀안에 거하기를 힘쓰며 기도해야 한다.
근신하라. 깨어라. 대적하라.
성령의 권능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하며 이 땅에 삶을 승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야 한다.
2. 새방언
“새로운”의 원어의 뜻은 전혀없는 새로운, 혹은 지금까지 존재해 왔던 것과 비교할때 전혀 질적으로 새롭고 더 훌륭한 것이라는 뜻을 나타내다.
주님은 “새로운” 표현을 좋아 하셨다.
그래서 “새 포두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않는다” 그리고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라고 주의 복음을 비유로 표현하셨다.
그리고 주님은 새무덤에 장사되셨다.
신약에서 예수님의 구원역사과 관련된 것들은 새로운 것으로 전환이 되며 회복된다.
· 새언약 (마 26:28; 고전11:25; 히8:8): 시내산의 언약이 주님의 살과 피로 인해 새로운 언약으로 완전하게 되었다.
· 새계명 (요13:34, 요일2:7)
· 새교훈 (막 1:27)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전의 랍비의 교훈과는 사뭇 틀리다.
· 새이름 (계 2:17)
· 새노래 (계 5:9)
· 새로운 피조물이라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갈 6:15, 고후 5:17)
· 새사람 (고후 4:16, 골 3:10)
· 새하늘과 새땅 (계 21:1)
· 새예루살렘
우리들이 사용하는 말 역시 새로운 언어로 변화를 한다.
바벨탑 사건때에 하나님 께서는 인간의언어를 혼잡하게 하심으로 사람들을 흩어 버리셔서 더이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지 못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주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신 후로 우리의 말을 성령께서 은사로 주신 말 즉 방언으로 성령안에서 하나의 언어가 되게 하셨다.
방언은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중의 하나이다.
(고전12;10)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오순절날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에 주신 방언은 실제로 각국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이었고 그래서 여러 나라에서 모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신학자들도 있다. 또 어떤 신학자들은 이때 주신 방언은 천국의 언어로서 성령이 모든 믿는 사람들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천국의 언어를 이해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방언은 성령의 은사중의 하나이다.
사도바울은 방언은 하나님과 영으로 비밀을 말한다고 하였다.
(고전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그리고 자신이 각종 방언을 말한다고 하셨다.
(고전14: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왜 방언 말하는 것에 대하여 의심을 하는가?
방언의 은사는 이미 끝이 나서 더 이상 방언을 주시지 않는다라고 주장을 하기도 한다.
(고전13:8-10)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에언도 페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고전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음으로 인해 부분적으로 행하는 모든 것들이 폐하게 되어 방언도 예언도 그쳤다고 주장을 한다. 하지만 사도바울이 이 고린도서를 쓸 때에 이미 주님은 이 땅에 오셨다가 부활하셨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로는 모든 예언과 방언은 폐하여 졌어야 했으므로 사도바울은 방언과 예언을 할 수 없었고 지식도 폐하여졌어야 하지만 사도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며 온갖 영적인 경험을 하였고 그리고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썼고 특히 고린도전서에서 방언의 유익에 대하여 말하며 방언과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
과연 예수님이 부활하신후 2,000년동안 방언과 예언과 지식이 폐하여 졌을까?
어떻게 방언과 예언과 지식의 시대가 끝이 났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내 자신의 일도 어떻게 될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확신한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고전 14: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좀 더 마음을 열자.
하나님의 세계는 우리가 아는 만큼이나 적지 않다.
하나님의 세계는 우리의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어 깊이과 높이과 길이와 넒이를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마치 우주의 크기와 깊이를 우리는 결코 알수 없듯이.
우리가 보는 우주는 우리의 능력의 한도내에서만 보는 매우 제한적이다.
끝이 어디인지를 도무지 알 수 없는 어마어마한 우주를 창조하신 권능의 하나님을 과연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제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제한하지 말자.
방언의 유익은 참으로 많이 있다.
방언은 나를 내가 알지 못하던 또다른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또한 방언은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므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방언으로 말하고 기도하는 것은 억제하고 삼가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고전14: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3. 상하지 않음
독사에 물려도 상하지 않으며 독을 마셔도 해함을 받지 않는다.
사도바울이 탄 배가 파선하여 한 섬에 피신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불을 쬐다가 독사에게 물렸다.
사도바울은 아무러지 않게 물린 뱀을 털어 내었고 원주민들은 사도바울이 어떻게 되는지를 궁금해 하며 지켜보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 나지 않자 그들은 사도바울을 신으로 섬기려 하였다.
또한 뱀이나 독은 이 세상의 악한 것들을 의미하는 듯 하다.
주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보고 독사의 자식들아 말씀하셨다.
(마 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 7:10)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뱀은 악하고 위험스러운 것을 말한다.
믿는 자녀들은 날마다 세상의 악한 것들을 대면하여야 한다.
악하고 독한 것들은 믿는 자녀를 쓰러 뜨리려 하고 이용하려고 한다.
주님은 자녀들에게 악하고 독한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셨다.
(눅 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밞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4. 아픈자를 낫게 함
주님은 주님앞에 나온 모든 병든자들을 낫게 하셨다.
제자들 역시 가는 곳곳마다 안수하여 병든 자들을 낫게 하셧다.
주님은 우리를 낫게 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온몸이 찔리셨고 상하셨고 징계를 받으셨고 채찍에 맞으셨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병에 걸렸는가?
나의 사랑하는 이웃이 병에 걸렸는가?그렇다면 서로 중보하며 기도하라.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긴다면 여호와의 빛이 치료하는 광선이 되어 병이 낫게 될 것이다.
(약 5:16)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말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울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병에 걸렸다면 기도를 해야 하고 또한 세상의 의술에도 의존할 수 있다.
세상의 의술의 지식 또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들이다.
무조건 기도의 힘으로만 낫게 다는 신념도 귀중하지만 세상의 의술의 도움을 받는 것도 또한 하나님 께서 허락하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의술에는 고칠수 있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주님께서 주신 병을 낫게 하는 능력일 것이다.
더 이상 의존할 곳이 없는가? 그렇다면 오직 주님의 손길에 의지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주님께 지친 나의 육신과 영혼을 맡기자. 그리고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것은 각자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땅의 연수가 있다는 것이다. 주님의 은혜로 병이 나음을 입을수는 있지만 영원토록 육신이 산다는 뜻은 아니다. 언젠가는 나의 육신이 생명이 다하는 그날에는 모든 병에서 자유롭게 되어서 고통이 없는 하나님께서 계신 하늘 나라로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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