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1:1-3)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본서의 저자는 율법에 정통한 제사장인 에스라이며 느헤미야와 거의 동시대 사람이다.
성벽재건을 주도한 이는 느헤미야이고, 성전재건을 주도한 이는 제사장 에스라였다.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돌아온 유대인들이 성전중심의 예배를 통하여 올바른 선민으로서 회복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결하게 살 수 있도록 가르쳤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께 순종함과 불순종에 따라서 변하였던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 순종하였을때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번영과 평화의 시기를 보냈지만,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을 때는 하나님을 떠난 결과 여러 외세의 침략을 받아 나라가 곤핍해지고 온갖 어려움들을 겪었다.
목이 곧은 백성들이지만 하나님께 불순종함을 깨달아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면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 (출34:6)”께서 다시 회복의 은총을 베푸신다. 그렇지만 그 기간은 오래가지 못하고 얼마안가 다시 하나님께 범죄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본성에는 죄성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평안하다 싶으면 그만 마음이 교만하고 해이해져서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삶에서 자신위주로 삶으로 변화하여 죄를 범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김보다 또 다른 것을 섬기며 하나님을 경외함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 결과 또 다시 목이 곧아져서 자신의 소견대로 살다가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이스라엘 왕조의 마지막 때에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죄악이 너무가 심하자 하나님께서는 결국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에 의해 멸망시키신다.
얼마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아프셨을까.
자녀를 내쳐야 할 수 밖에 없었던 자비의 하나님 아버지.
자녀를 올바르게 다스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징계를 내리실 수 밖에 없으셨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루에 의해 BC722에 그리고 남유다는 바사에 의해 BC539에 멸망당해 결국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 세운 이스라엘이란 나라는 이 땅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정복국가인 바사는 예루살렘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 몇사람만 남겨두고 모두 바벨론으로 강제 이주시킨다. 이들 선민들은 점차로 우상숭배를 하는 문화에 점점 흡수되어 버리며 점차로 암흑 가운데 우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암흑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의 빛이 비친다.
하나님께서 바사왕 고레스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서 예루살렘에 있는 황폐되어 버려져 있던 성전을 재건토록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고레스를 사용하시어 선민들을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셔서 퇴락하고 무너진 성벽을 재건케 하시고 황폐된 성전을 재건시켜 다시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도록 축복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멸망당해 이 땅에서 사라져 버린 이스라엘을 다시 살리시고자 유대인들을 권고하사 바벨론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이주하게 하신다. 약 50,000명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가게 된다.
그 당시 최강국이었던 바사로부터 빠져나온 제2의 Exodus이었다.
1. 하나님의 강권적인 섭리
1) 예언의 성취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예언의 말씀을 주셨다. 이 Exodus의 사건은 우연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하신 일이었음을 분명하게 언급한다.
(스1:1)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예레미야는 유대인들이 70년간 바벨론 포로생활을 할 것을 예언하였다.
(렘25;10-11) 내가 그들 중에서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 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와 맷돌 소리와 등불 빛이 끊어지게 하리니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년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렘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70년이 차자 예언의 말씀대로 유대인들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향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틀림이 없으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구원받은 자녀들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모든 일들은 축복이다. 처해 있는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도 어디를 둘러 보아도 캄캄하여 도무지 앞을 볼 수 없지만 그 가운데 홀연히 비치는 빛. 그 빛안에는 하나님의 평강이 하나님의 소망이 담겨져 있다.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을 찿아 가야 한다. 찿으려 한다면 분명히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녀들인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렘29:11-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노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찿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2) 마음을 감동시키심
(스1:1)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하나님께서는 고레스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셨고 또한 유대인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셨다.
고레스왕은 누구인가? 고레스는 BC539에 바벨론을 정복하고 BC 538에 바벨론 왕이 되었다.
그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뱡인이며,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하나님이 누구이심을 알고 하나님으로부터 나라와 자손의 축북을 받고자 성전을 세우라 명령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를 사용하사 하나님의 자녀에게 은혜를 입히신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이시다.
하나님께서 고레스왕의 마음을 움직여서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성벽재건과 성전재건을 할 수 있도록 모든 특혜를 베풀어 준다.
벌써 바벨론에 강제로 이주하여 살게 된지 70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 당시는 지금보다 평균수명이 짦았을 것이기에 이민 1세대는 이미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2세대 3세대로 바뀌었을 것이다.
이민 1세대인 나는 젊은 나이에 미국에 왔기 때문에 아직 한국문화와 언어를 이해할 수 있지만 같은 이민 1세대라도 어려서 온 이들은 거의 한국문화와 언어를 잊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니 2세대 3세대로 내려 가게 되면 대다수의 이들은 거의 한국문화와 언어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단지 성전을 재건하겠다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정든 집을 떠난 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위해서 떠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감동시키사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강권적인 하나님의 섭리이시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감동을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룰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신다.
나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어떤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 났다면 순종하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를 잘 아시기에 나를 세워서 쓰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는 인생 얼마나 축복받은 인생인가.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녀에게 축복으로 보답하신다. 그 보답은 세상것이 아닌 하늘에 속한 거룩한 것이다.
눈을 들어 하늘보라. 어지러운 세상중에 일할 이를 찿고 계시는 하나님..
2.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 (5)
하나님은 다윗과 언약을 하셨다 (David’s Covenant).
(삼하7:12-16)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영원히 보존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에 합한 자인 다윗과 영원한 언약을 하신다. 곧 다윗 왕권이 영원토록 견고하리라는 약속을 하신 것이다. 이 다윗의 언약은 긍국적으로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언약은 확증이 된다.
그런데 다윗의 후손인 남유다는 바사로 인해 멸망당하고 만다.
모두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하셨던 다윗의 언약은 유다의 멸망과 함께 끊어 졌다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변하시지 않으신다.
영원한 다윗의 왕권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비록 불순종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을 흩어 버리셨어도 그 약속을 기억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신다.
족보의 차이점을 살펴보자.
(스1:5)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첫번째 출애굽때에는 12지파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두번째 출애굽때에는 12지파의 족보대신에 유다지파가 중심이 되어 베냐민 그리고 극소수의 레위지파의 족장들의 이름이 기록된다. 이는 곧 하나님의 약속이 유다자손을 통해 계속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성전재건을 하기 위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Exodus한 이들의 중심에는 유다지파와 베냐민지파의 남은자들이 있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다윗과 하신 언약을 계속 이어졌으며 그리고 약 540년후에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심으로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마침내 이루어 졌다.
3. 자발적인 순종 (3)
또 다시 첫번째 Exodus와 두번째 Exodus를 비교해 보자.
첫번째 출애굽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제적으로 출애굽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애굽에 살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하였다. 이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너무나 강권적인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두번째 Exodus에서는 마음에 원하는 이들만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이주를 했다.
아마도 그당시 바벨론에는 수백만의 이스라엘 자손이 살고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모든 유대인들이 되돌아 간것이 아니고 그 중에서 약43,000명의 유대인들만이 에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느11;2)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성벽을 재건하던 자들이나 성전을 재건하는 모든 자들은 스스로 원하여 자원해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갔던 것이다.
또한 에스라서에서는 어떤 자들이 예루살렘에 갔는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3)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3) Any of his people among you may go up to Jerusalem in Judah and build the temple of the Lord.
개역성경에는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NIV성경에는 “shall” 이라는 동사가 사용되지 않고 “may”라는 동사가 사용되며, 자발적인 뜻을 나타낸다. 그래서 다시 이 개역성경을 쓴다면 이렇게 쓰고 싶다.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중에 원하는 자들은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부르실 때에 자원하는 자들을 기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원하는 심령을 가진 자들에게 그동안 삶의 터전을 쌓아 익숙한 바벨론을 떠나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은 예루살렘에 가서 성전재건을 하며 하나님의 나라로 세우겠다는 열정과 소망과 용기를 주셨던 것이다. 이들 자원하는 심령을 가진 하나님의 선민들은 대개가 바벨론문화에 익숙하였지만 그들 마음 깊은 곳에는 하나님의 택한 자녀로서의 긍지와 선민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가?
나에게도 자원하는 심령을 갖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수동적인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마음에 감동이 일었지만 순종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았는가?
하나님께서는 자원하는 심령을 기뻐하신다.
(시51: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자원하는 심령을 가진 자를 쓰신다.
주님 저에게 주의 일을 하려는 자원하는 심령을 주옵소서.
저를 써 주옵서서.
4. 예배의 회복 (36)
이번 Exodus의 중심에는 누가 있었는가? 비록 소수였지만 제사장들이다.
42,360명의 유대인들과 7,337명의 노예. 합해서 약 50,000명정도가 바벨론을 떠나 예루살렘을 향하여 떠나갔다. 그중에 4,289명이 제사장 가문이었다. 이들 약 10%의 제사장 가문은 예배회복을 주도하게 된다.
이들 제사장들은 성전의 기초를 놓고 제일 먼저 한 일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린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성전의 기초석을 놓고 너무나 기뻐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였다 .
(스3:11) 찬양으로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며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기초가 놓음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성전의 기초석이신 주님.
(엡2:20)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주님은 기초석이 되셔서 거듭난 자들의 마음에 계신다.
기초석이신 주님위에 성전을 잘 지어야 한다.
(고전3:16)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리라.
내 안의 성전이 무너졌는가?
그렇다면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워야 한다.
예배를 드리며 무미건조한가?
예배를 드리며 참생명의 기운이 느끼지지 않는가?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예배는 죽은 예배이다.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에배에는 참기쁨과 평안과 사랑이 있다.
예배를 통하여 주님의 마음이 회복되어야 한다.
성전의 기초석이신 주님위에 성전을 세워야 한다.
기초석이 내안에 있으므로 우리는 늘 찬양과 감사의 경배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말씀을 정리하면,
주의 성전에서 주의 자녀들이 드리는 예배를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
황페되어 버린 예배의 처소.
거룩한 빛으로 가득차야 할 그곳에 세상의 어두움으로 가득차 있다.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주의 자녀들이 패역함으로 하나님을 떠난 메마른 삶을 살도록 잠시동안 허락하시지만 그 기간은 결코 오래 가지 않아 다시 부르사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의 예배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강권적으로 역사하신다.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기 보다 이방신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하나님의 임재가 있던 예루살렘에서 쫓겨나가 이방신들의 도시인 바벨론으로 강제 이주되어 70년동안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 주의 백성들이지만 하나님은 다윗과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기적적인 개입으로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사 정들었지만 죄악의 땅 바벨론을 떠나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택한 거룩한 땅 예루살렘으로 옯겨가게 하심은 전적인 하나님의 개입하심이요 하나님의 강권적인 섭리이여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의 성취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는 자발적인 순종을 하는 자를 택하시고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기뻐하며 열정을 갖고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는 자를 지금도 찿고 계신다. 자원하는 심령을 가진 자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
성전의 기초석을 새로 놓은 자들은 너무나 기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하나님께 감사과 찬양의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대부분은 너무나 안이한 예배를 형식적으로 드린다.
몸에 밴 타성적인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받으실까?
전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다가 주일날 받은 말씀으로 만족하는 그런 삶의 예배를 하나님은 기뻐 받으실까?
예배에 심령의 회복이 있는가?
예배를 통하여 주님을 만나는가?
예배의 회복이 있어야 한다.
내 안에 기초석이신 주님위에 성전을 잘 지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워야 한다.
기초석이 내안에 자리잡고 있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감사할 수 밖에 없고 우리의 입에서 끊임없는 찬양과 감사의 경배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저희의 패역한 죄로 인해 제가 서 있는 곳이 황폐해져 버렸읍니다.
저의 죄를 기억하고 주께 회개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주여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저는 참으로 죄성이 많아 끊임없이 주께 범죄하나이다.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
저를 자녀로 삼으신 약속을 기억하사 저를 신원하옵소서.
저는 은혜로서 주의 택함받은 자녀입니다.
저를 불쌍하게 여기시고 저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자원하는 심령을 가진 자를 쓰십니다.
주님 저에게 주의 일을 하려는 자원하는 심령을 주옵소서.
주여 저를 써 주옵서서.
주께서 저를 쓰시고자 마음에 감동을 주실 때
이것 저것 저의 생각과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게 하시고
오직 주의 성령께서 제 안에 활동하시며 제가 온전하게 순종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옵소서.
더 이상 저의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그런 모습에서 벗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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