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1:2-3) 전도자가 이르되 1)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2)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3)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전도서”로 이름지어진 원어의 뜻에는 “Teacher”의 뜻을 갖고 있으며 “회중에게 종교적 진리를 전하는 자”란 뜻을 갖고 있다.
전도서의 저자는 잘 알려진 솔로몬왕이다. 또 어떤 이는 솔로몬이 아닐수도 있다고 하지만 저자가 왕으로서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은 다 누렸던 사람임에는 틀림없으며 그는 보고 원했던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었고 쾌락의 극치를 누렸던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던 아버지 다윗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기를 원하였고 하나님께 사람들을 다스릴 지혜를 간구하여 이에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지혜와 재물과 생명의 축복을 주셔서 모든 것을 가졌고 모든 것을 즐겼고 모든 것을 다스리던 그였지만 그만 하나님의 첫사랑을 잃어 버리고 세속적인 삶을 추구하였다. 그런 그가 인생의 황혼에 그의 전 인생을 통하여 깨달은 것을 고백하며 하나님을 잃어버린 가운데서 인생을 경험하고 체험해 보니 해아래에서 행한 모든 것에는 새것이 없으며 또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헛된 것”을 NIV에는 “meaningless” KJV에서는 “vain”이라 사용되어 지고 있다.
“헛된 것”이란 아무런 뜻도 없으며 허무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전도서의 저자는 이 말의 뜻을 스스로 정의하고 있는 데 곧 14절에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 이라고 설명을 한다.
바람을 손으로 잡을수 있을까?
세차게 부는 바람을 휙하고 손을 휘저어 잡았다고 생각을 해서 손을 펴보면 손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인생도 이와 같아서 갖고 싶은 것을 가졌고, 즐기고 싶은 것을 즐겼고, 수많은 부인들을 얻었고 눈에 보이는 것을 금하지 않고 쾌락의 극치를 즐겼지만 결국 이런 해 아래에서 수고한 모든 수고가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며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달은 전도자는 말하고 있다.
이 본문을 세가지 1) 헛되다, 2) 해아래, 그리고 3) 모든 수고로 나누어서 살펴본다.
1. 헛되다
“헛되다”가 이번 구절에만 5번 반복되며 인생의 헛됨을 강조한다.
그리고 전도서에는 모두 38번 사용되며 인생 전반에 걸쳐서 행해지는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말하고 있다. 세상의 것은 결국은 허무한 것이며 세상속에 산다면 허무한 세상것들에 굴복할 수 밖에 없다.
(롬8: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롬8:20는 세상은 본래 헛된 것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 인간과 모든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되었음을 가르친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이처럼 헛된 세상에서 구원을 얻는 길은 내 안에 있는 죄를 발견하는 것이며 지금과 같이 아무 의미없이 살게 된다면 결국 허무한 인생에 처하게 될것이다”
나의 삶을 되돌아봐도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야말로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으며 후회만이 있을 뿐이다.
그때에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보다 보람된 나은 삶을 살았을텐데 하며 실망과 후회가 있다.
우리의 인생이란 것은 헛되이 흘러 가는 것과 같지만 지금의 내가 이 곳에 있기 까지 나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삶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했다는 것이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내가 금요일 아침에 장세척에 좋은 것이 소금물을 큰 컵으로 마시면 깨끗하게 씻어 준다는 것을 Internet에서 보아서 실행하였는데 처음 마셨을때 메식 메식하고 토할 것 같았다. 하지만 잘 참고 견디어 내자 약 30분 지나서는 기분좋은 설사를 세번 하였더니 장이 깨끗하게 된 기분을 느낄수 있었다.
이처럼 장세척을 하는 데도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우리의 삶의 순간 순간에 거쳐야 하는 과정이 얼마나 많이 있었겠는가.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과정의 연속이다.
때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도 있고 용서받을 수 없을 만큼 잘못한 적도 있었다. 이제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 기억에 가물 거리지만 가끔가다 생각의 편린을 따라 다가오는 옛날의 아름다운 기억들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형성해 주었다. 하지만 이런 기억에 파뭍힌 나의 옛모습들은 이제는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 없는 헛된 것이다. 아무리 과거로 되돌아가서 다시 나를 만들고 싶지만 이것 역시 망상에 지나지 않는 헛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세상의 것을 쫓다보면 결국은 이 세상의 것은 허무한 것임을 알게 된다.
이 세상의 지식을 얻기 위해 전력을 다하여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얻은 지식은 방대한 세상 지식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을 갖기 위해 권모술수로 남을 누르고 그 자리를 차지 했지만, 곧 자신보다 강한 누군가에게 영원할 것 같았던 권세의 자리를 빼앗기고 만다.
재력을 얻기 위해서 남의 것을 가로채기도 하고 부당이익을 취하는 짓도 서슴없이 한다.
서로 물고 뜯는 인간의 세계는 강한 것이 이기는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와 무엇이 다른가.
결국은 한 줌의 흙으로 사라져 버릴 것인데.
얻기 위해 그토록 모든 수단을 가리지 않고 얻었지만 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고는 허무함에 사로잡혀 삶의 의미를 잃어 버리고 자신안에 갖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이 헛되고 허무한 것 뿐이다.
전도서에는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하지만 주님과 함께 한다면 영원을 소망하기 때문에 더 이상 헛된 것이 아니다.
사도바울은 주님의 이름 때문에 수많은 고초와 고난과 핍박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으며 오직 한 길 주예수로 향하여 가가이 다가서는 인생의 달음질에 최선을 다하였다. 그러면서 고백하기를 자신이 이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하여 추구하던 달음질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갈2:2)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주 안에 있다면 더 이상 세상의 것은 헛된 것이 아니며 없어질 허무한 것이 아니다.
주안에는 모든 것이 변하여 새롭게 되어 주 안에서 달음박질 한것은 헛된 것이 아니라 영원을 소유케 하는 축복이다.
2. 해아래
해를 두가지로 나눌수 있다. 하나는 우리가 매일 보는 우리의 삶에 없어서는 않될 만물의 원동력인 물질적인 태양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바로 해이신 주님을 의미한다.
1) 태양
태양은 매일 동쪽에서 떠서 빛을 비추지만 얼마안가 곧 서쪽으로 기울어 더 이상 빛을 발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일이 오면 해는 또다시 동쪽에서 떠오른다.
“해아래”는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한정적인 것이며 일시적이며 제한되어 있는 곳이다.
전도서에서 해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손길이 없는 물질적인 세계의 상태를 말한다.
해 아래에 있는 이땅에서 우리의 인생은 제한되어 있는 한정적인 삶이다. 언제 하나님께서 나의 목숨을 취하실 지 모른다. 오늘일지 아니면 내일일지 언제 내가 마지막 숨을 쉬고 육신이 흙으로 돌아갈는지 알수 없는 극히 제한적인 공간에서의 삶이다.
2) 하나님이신 해
사60:1에서 하나님과 그의 영광을 빛으로 말하고 있다.
(사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라.
또한 눅1:78-79에서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세례 요한을 출생하고 나서 기쁨의 찬가를 부르면서 주님을 돕는 해로 말씀하고 있다.
(눅1:78-79)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돕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이들 곧 선인과 악인에게 골고루 공평하게 하나님의 빛을 비춰주신다고 말씀하신다.
(마5:45)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
하나님의 거룩한 빛은 해아래에 있는 악인이나 선인이나 골고루 비춰주시며 그 가운데서 택함 받은 자가 여호와의 영광을 깨닫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도록 비춰주신다. 그 영광의 빛을 받고 주님께 나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면 나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 영광의 하나님의 빛을 받음으로 거룩한 빛의 자녀가 되어 천국을 소유한 백성이 된다.
전도서에서 말하듯이 해아래에서 행한 모든 것이 헛된 것은 아니다.
오직 해아래에서 주님의 선택된 자녀가 되어 구원을 얻는다면 하나님의 빛을 받아 헛된 것으로부터 복된 것으로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임할 때에 새아래에서 행한 모든 일은 심판을 받게 된다.
여호와의 진노의 심판이 임하여 새시대가 도래하게 되면 더 이상 선민들은 해아래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의로운 빛이 되어 치료하는 광선을 받으며 살게 될 것이다.
(말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비록 해아래에서 살고 있지만 주님의 자녀가 되어 주님을 기억하고 경외하게 되면 그곳은 하나님의 빛이 임하는 곳으로 변환이 일어난다. 그곳은 더이상 헛된 것으로 가득한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해아래에서 하나님의 빛으로 충만한 축복의 곳이된다.
3. 모든 수고
우리는 이 땅에서 열심히 살며 나이를 먹는다.
수고도 참 여러종류가 있다. 참된 수고와 보람된 수고도 있지만 헛되고 쓸모없는 수고도 있다.
허식적이고 가식적인 수고도 있다. 별로 소득이 없는 수고도 있고 별반 수고도 하지 않았는데 놀라운 수확을 맺는 수고도 있다. 그렇다. 해아래에서 한 우리의 인생은 수고와 슬픔뿐인 헛된 것이며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이다.
(시90:10)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니이다.
하지만 주안에서 한 수고는 헛되지 않으며 영원하다.
(고전15:58)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다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 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빌2: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세상사람들은 몰라도 주님은 나의 수고를 아신다
(계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이유를 알 수 없는 핍박이 억누르고, 이해할 수 없는 곤란과 환난이 나를 에워싸고, 세상 사람들의 관계에서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모든 사람들은 등을 돌리고 배척을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 있는 나를 이해하고 받아 주시는 오직 한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이 바로 주님이시다. 주님은 내가 겪고 있는 모든 환난과 고통과 어려움을 알고 계시며 갈 길을 인도하신다.
그리고 주님은 세상의 무거운 짐을 어쩔수 없이 지고 가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안에 있는 참평강.
모든 것을 내려 놓은 자유로움.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주신 주님의 은혜의 선물.
주님의 참평강을 소유한 자들은 모든 죄를 사함받아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천국을 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주님은 내가 인생의 수고를 마친후에는 더 이상 수고가 없는 곳으로 인도하신다.
(계14:13)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참 아름다운 세상에 나는 살고 있구나.
이 세상도 주님께서 창조하시고 참 보기 좋았더라고 말씀하신 이 피조물의 세계.
고난 가운데서 이해할 수 없는 곳이지만 세상을 받아 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자.
나의 수고가 필요한 이 세상도 결국은 하나님의 것이지 않는가.
전도서는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로 시작하고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전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전도서의 저자가 오랜 인생의 길에서 마지막 호흡이 가까이 와서 마침내 깨달은 것은 “인생에서 추구하는 모든 것이 헛된 것이기에 젊은 날에 더 늦기 전에 여호와를 기억하며 여호와를 경외하고 여호와의 명령들을 지켜라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기 때문이다”하며 끝을 맺는다.
헛되고 헛된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 최상 최선의 선택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
이는 내가 이 세상에서 숨을 쉬고 있는 동안에만 가능한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화살과도 같고 또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알 수 없는 무확실성의 삶이다.
나의 마지막 숨을 쉬고 난 후에는 나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더 이상 늦지 말자.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는 인생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것”이다.
나의 날이 다하기 전에 여호와를 기억하고 경외하는 것을 배우자.
하늘에 계신 아버지.
지금까지 물질적인 것, 외향적인 모습,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이기적인 삶을 살았읍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없는 삶은 결국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그동안 내가 가지려 추구했고 지키려 했던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은 결국은 없어질 것들 뿐입니다.
그 안에는 참생명이 없고 참소망도 없는 참으로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해 아래에서 저희는 살고 있읍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여러 환난과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고 허락하신 장소입니다.
해 아래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알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 오게 된다면 그곳은 더 이상 태양이 비치는 곳이 아니라
빛이신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전환이 됩니다.
매일 매일 살기 위해 땀을 흘리며 수고합니다.
때로는 지치고 연약하여져서 기력이 쇠잔해 집니다.
그럴때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다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시며 우리를 위로하시는 주님.
주님안에 온전하게 거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안에 있는 인생은 더 이상 헛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소망을 갖고 사는 축복된 인생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도록 은혜와 자비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나에게 영원토록 살길을 주신 은혜와 자비의 주님을 기억하고
하나님 아버지를 영원토록 경외하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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