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1:1-3)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니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이 요한계시록이 쓰여진 본래의 목적은 모진 박해를 견뎌야 하는 아시아에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기 위함이었으며 또한 앞으로 반드시 있을 사건에 대하여 말씀을 한다.
요한계시록은 초대교회에 대한 박해가 매우 극심할 때에 쓰여졌다. 많은
이들이 단지 주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순교를 하였고 어떤 이들은 박해를 피해 동굴속이나 바위나 땅을 파서 땅속 깊은 곳으로 피했던 시기이다. 계시록은 이와 같은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용기와 소망을 주기 위해 쓰여 졌으며 또한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주의 자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앞으로 반드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터이니 말씀을 잘 읽고 잘 듣고 잘 지켜서 여호와의 날을 잘 준비하라고
요한을 통하여 사랑하시는 종들인 우리들에게 주신 사랑의 말씀이다.
저자는 1절에서 명기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전승에는 사도요한이 밧모섬에서 노년에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말씀을 받아 글로 옮겼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성경학자들은 사도요한이 저자가 아닐 수도 있는 이유로 자신이 스스로 사도의 칭호를 붙이지 않았으며
자신이 사도들과는 다름을 말한다 (18:20; 21:14). 성경은 몇권을 제외하고는 저자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여기에
또한 성경의 신비가 있다. 성경의 저자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이심을 말하고 있다. 세상의 책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점은 정확한 저자를 모르는데도 성경은 오랜 기간 동안 전해져 내려오며 많은 이들이
성경말씀에 대한 확신을 갖고 읽는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직접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쓰신 말씀이기에
모든 말씀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아로새겨져 있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계시록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일곱교회에 보낸 편지, 둘째는 일곱 입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의 심판, 그리고 마지막에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로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창조로 나눌 수 있다.
지금의 터키인 아시아 지역에 있는 일곱교회에 편지를 보내며 각 교회에게 주시는 주님의 모습과 칭찬과
질책을 하며 이기는 자에게 따르는 하나님의 보상에 대하여 말한다. 그리고 일곱 인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에 대한 심판을 통해서 장차 하나님께서
정하신 마지막 때에는 많은 재앙과 극심한 혼란이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도 믿음과 소망을 잃지 않으면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되어 옛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창조가 임한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 같이 참여하여 만왕의 왕이신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거하게 될 것을 소망하며 “마라나타”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하며 끝을 맺는다.
계시록에는 많은 비유와 상징들이 쓰여져 있어서 해석을 하기에 난해한 구절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하신 종말의 때에 만인들이
보는 가운데 공중으로부터 재림하실 것이며 악을 멸하시고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계시록에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는 만주의 주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다.
주님의 재림이 임하시는 종말의 때에 마침내 온 세상의 어두움의 통치는 끝나고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신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다시 귀속되어 모든 창조물이 원래의 완전함으로 회복이 된다.
계시록은 비록 환난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믿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확신과 소망을 주는 승리의
개선가이다. 이처럼 귀한 말씀이
쓰여져 있는 계시록을 1) 읽는 자와 2) 듣는 자와 3) 지키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복이 있는 자라고 하시며 기뻐하신다. 왜냐하면 4)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말씀을 읽는 자
읽다의 원어의 뜻에는 “소리내어
크게 읽다 (read aloud)”의 뜻을 갖고 있다.
요한 계시록은 회람서신으로
쓰여졌다. 초대교회당시에 인쇄기술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 모든 성경책은 사람이 직접 쓴 필사본이어서 가격도
무척이나 비쌌고 구하기도 어려워서 성경책을 갖고 있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요한 계시록이나 바울의
회람서신들과 같이 성경말씀은 회당에서 제사장들이 읽어야 하였다. 그 당시의 성도들은 성경말씀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었고 오직 회당에 가야지만 성경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축복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아직 성경책을 마음대로 취할
수 없는 곳도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책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에 살고 있다.
성경책이 사방에 널려 있지만
성경말씀을 가까이 하고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개 신자들은 성경책을 갖고
있다. 그런데 성경책을 읽는 신자는 매우 드물다.
주님은 성경 말씀을 읽는 것이
성도의 근본이기에 말씀을 읽지 않는 자에게 이렇게 잘못함을 지적하신다.
너는 이런 말씀을 읽지도 않았느냐? 읽어 보지도 않았느냐?
[막 2: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막 12:10]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생각해 보자.
지난 일주일 동안 얼마나 성경
말씀을 읽었으며 그 말씀에 대하여 깊게 생각해 보았는 지를!
그것이 바로 나의 신앙의 지표이다. 내가 아무리 목사거나 장로거나 권사거나
집사일지라도 성경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복받은 주님의 자녀로서의 마땅히 해야 할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일
것이며 무엇보다 주님은 너는 아직도 말씀을 읽지 않느냐? 읽어 보지도 않았는냐 하시며 나의 잘못을 지적하실
것이다.
회당에서 크게 읽혀 졌듯이
우리도 성경 말씀을 소리내어 읽는 훈련을 해보자.
주님께서 주신 말의 권세를
사용해보자.
내가 소리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다면 나의 주변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그렇게되면 내 주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차게 되어 하나님의 말씀이 각인될 것이며 그곳에는 악한 영은 얼씬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찬양과 기도와 말씀선포가 항상 울려 퍼지던 곳에 가게 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은 숙연해 지고 차분하게 되어 하나님의 임재안에 거하게 됨을 경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대로 세상의 잡다한 소음으로 가득했던 곳에 가게 되면 나도 모르게 세상의
생각으로 가득차게 되어 하나님께 집중할 수 없음을 경험해 보지 않았는가?
성경말씀을 기회가 되는 대로
소리내어 읽어보자.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변화하며, 내가 일하는 곳이 변화하며 내가 가는 곳곳마다 주님의 임재와 평강을 경험해 보도록 하자.
성도라면 주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어야 한다.
말씀을 읽지 않는다면 과연
나는 주님의 재림때를 준비하는 성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말씀을 읽고 또 읽으라 아무리
권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말씀을 읽음으로 나의 삶은
변화하기 시작하게 될 것이다.
말씀을 읽음으로 지친 영혼은
새로이 소생되고 또한 육신적으로 곤고하고 어려운 삶에서부터 벗어나서 복된 삶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말씀이
충만한 곳에 주님의 평안이 임하게 될 것이기에.
말씀을 듣는 자
무엇을 듣는다는 뜻인가?
설교를 들으라는 말인가?
일곱 교회에 주시는 말씀의 마지막에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하며
끝을 맺는다. 주님께서는 내게 주시는 살아있는 말씀을 나의 심령으로 들으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듣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마 13: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주님의 자녀에게는 귀한 복을
주셨는데 곧 말씀을 나의 영적인 눈으로 보고 말씀을 영적인 귀로 들을 수 있는 자가 되어 주님을 닮아 가도록 축복하셨다.
많은 이들이 설교말씀만이 말씀을
듣는 것이라고 생각들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정작 중요한 말씀을
읽지는 않고 이곳 저곳의 설교말씀을 듣고 말씀을 들었다고 착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요사이는 말씀의 홍수가 있어
많은 말씀들이 범람을 한다.
그 중에는 실로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살아 움직이며 육신과 영혼을 쪼개는 생동력이 있는 말씀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말씀들은 세상이
원하는 것을 치장하여 보기에는 그럴듯 하지만 속은 아무 것도 없는 죽어 있는 말씀들도 있을 것이다.
교회에서 설교말씀을 듣는 것, internet을 통하며 설교말씀을 듣는 것, CD나 Youtube를 통하여 말씀을 듣는 것 모두 좋겠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 자신이 말씀을 읽고 깨달으려 노력을
해야 하며 또한 나에게 성령님께서 말씀을 들려 주실 때에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가이다.
만일 내게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가 없고 단지 육신에 속한 귀만 있다면 마치 돌 밭에 떨어진 씨앗이 뿌리를 내릴 수 없어 아무런 결실을 맺을 수
없듯이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한 귀로 부터 다른 귀로 흘러 나가 버려 마음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성령님께서
도와주셔야 한다.
인간의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의 이성으로 말씀을 읽고 지식을 얻는다. 성령님께서 말씀하실 때 영적으로 들을 귀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 속한 영적인 자는
영적인 귀가 열려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 하지만 육신에 속해 있는 자는 영적인 귀가 없어
오직 육신에 속한 귀가 있어 말씀을 듣지 못한다.
[요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마음이 혼미하고 강팍하여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사6: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롬11:8] 기록된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성령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을
들려 주실때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가 열려 있어야 한다.
내게 잠잠하게 은은하게 들려
주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어 보자.
그리고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면 말씀을 듣고 깨달아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한다.
[마13: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말씀을 지키는 자
“지킨다”라고 쓰여져 있는 이 단어가 영어성경에는 “Take
to heart what is written in it”라고 쓰여져 있다.
말씀을 듣고 지키는 행함이
있는 믿음은 매우 중요하다.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말씀을 내 마음속에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님께서는 내가 말씀을 읽고
들음으로 내 마음속에 새기게 되면 내가 잘못할 때에 죄를 범할 때 나의 죄악을 헤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주님은 말씀이시다.
말씀이신 주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성도 마음안에 계시면서 말씀을 조명해 주신다.
성령님의 조명함이 없으면 우리는
성경말씀을 깨달을 수 없다.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그래서 내가 죄악 가운데 머무려
할 때 성령님은 나에게 말씀을 들려 주신다.
그 죄로부터 벗어 나라고 말씀하실
때 듣고 순종하게 되면 또 다른 깨달음을 내게 허락하신다.
(막 4:24)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
말씀을 마음에 담고 지켜 행하기
위해서는 “순종”이 있어야 한다.
(눅11:28)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Blessed are those who hear the Word of
GOD and obey it.
“지키는” 이 말씀을 NIV 에서는 “obey it”이라 번역을 하였다.
말씀을 지키는 것은 곧 말씀에
순종함을 의미한다.
말씀을 읽고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면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그것이 곧 행함이 있는 믿음이다.
때가 가까움이라
왜 말씀을 읽고 듣고 지켜
해하여야 하는가?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많은 주님의 성도들이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주님의 재림을 기다려 왔다.
많은 성도들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며 기다리며 순교를 당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정하신 수명대로 살다가 일생을 마감하기도 하였다.
주님의 부활이후 지난 2,000년동안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려 왔다.
분명한 것은 주님의 재림이
지금 그전보다 한층 가까이 왔다는 것이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우리는 종말신앙을 갖는 것이 우리의 신앙에 유익하다고 본다.
마치 오늘이 나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오늘을 살게 되면 우리의 삶은 보다 영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인데
함부로 살지 않게 될 것은 분명하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사람
중에서 어떤 이는 삶을 자포자기하는 이가 있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의 남은 시간을 적극적으로 정리해가며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그런 이들은 자신의 남은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는다. 자신의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용서함을 구할 사람에게 자신의 죄악된 행위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용서할 사람을 용서하며 모든 것에서 홀가분하게 되어 담담하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 들이려고 한다. 그리고 신앙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주에게 자신을 맡기려고 할 것이다. 죽음이 곧 올 것을 알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절대주를 믿는 믿음안에 거하며 잘 준비하는 사람은 하루 하루를
결코 헛되이 보내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남아 있는 시간을 감사할 것이다.
언제 주님께서 다시 오실 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하는
것은 주님의 재림이 도적같이 임하실 그 날을 예비하며 성실하게 믿음 생활를 하며 주님의 재림을 감사하며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주님의 자녀가 거룩하게
사는 것을 원하신다.
교회에서 열심을 다해 헌신하며
봉사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보다 더욱 내가 내 자신의 거룩함을 이루려고 할 때 주님은 더욱 기뻐하실 것이다.
거룩함을 배우기 위해서는 우선
필요한 것이 예배의 회복이다.
진정과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심령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히10:22) 회복되어
성령안에서 거룩하신 주님을 따라 가는 삶을 살려고 할 것이다. 예배의 회복을 통해 나의 영은 더욱 민감하여져서
늘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임재를 느끼게 되며 말씀을 통해서 들려 주시는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마음으로 변화를 하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거룩한 성도들.
오늘이 나의 마지막날 인것과
같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 한다.
나는 나의 마지막 날을 준비하고
있는가?
만일 오늘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을 취하신 다면 나는 주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가?
만일 오늘 천재지변이 갑자기
일어났을 때 그 가운데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해 낼 수 있을까?
만일 오늘 주님께서 다시 구름을
타시고 재림하신다면 나는 주님을 영접하기위해 들림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가?
계시록은 1장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이라 시작하여 마지막 장인 22장에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계22:7) 끝을 맺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자신의 재림이 임박했으니 이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는 복이 있음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약속하신다.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여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되어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는 자가 되도록 하자.
주님의 재림을 믿고 있는가?
오늘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면
나는 준비되어 있는가?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읽고 듣고 마음속에 새겨 지켜 행하여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
성경말씀의 맨 마지막에 기록되어
있는 계시록.
어떤 의미가 있으셔서 성경의
마지막에 기록하셨읍니다.
계시록에는 많은 상징적인 비유와
상징들이 사용되어서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한가지 확신할 수 있음은 곧
주님께서 주님의 신부인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반드시 될 일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비록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서
극심한 재앙과 핍박으로 인해
곤고함과 핍절함이 있을 것이지만 주님의 자녀들은 반드시 주님께서
지켜 주실 것이고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미리
말씀대로 지키고 견딘 자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이
임하여 그 곳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노릇할 것이라며 우리에게 소망과 위안을 주시는
승리의 개선과와도 같음을 믿습니다.
주님은 이 계시록을 통해서
이미 모범답안을 주셨읍니다.
예상 문제와 해답을 친절하게도
미리 우리에게 말씀하셨읍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주님께서 직접
계시하신 이 말씀을 늘 가까이 하여 읽고 듣고
마음속에 새겨 지켜 행하며 잘 준비한 어여쁜 신부가 되어
장차 다시 오실 신랑이신 주님을
맞이하여 기쁨과 환희의 개선가를 주
앞에서 부르도록 저를 인도하시고 축복하옵소서.
다시 오실 주님을 축복하며
사랑합니다.
주여 어서 다시 오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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