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15일 일요일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삼상22:18)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였고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우리는시험혹은믿음의 시련이라고도 말한다.
사울은 세마포 입은 여호와의 제사장 85명을 죽이고 제사장들의 성읍인 놉에 거하는 가족들도 죽였다.
단지 다윗에게 빵을 주고 숨겨 주었다는 이유로 제사장 85명과 그의 가족들은 죽어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유도 모른체 아무런 까닭없이 죽어갔다. 여호와를 믿는 제사장이라는 이유로 그들은 죽을 수 밖에 없었다.


A.   사울은 제사장들을 왜 죽였는가?
왜 여호와로부터 택함을 입어 왕이 된 사울은 어떤 이유로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을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게 되었을까?

첫째, 사울은 제사장 사무엘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크게 두 가지 사건이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사울을 버리셨다는 말을 사무엘로 부터 듣게 되는데  사울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것이고 앙심을 품고 사무엘을 미워하게 되었을것이다.

사울이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고 이년후에 블레셋 사람들이 수많은 군사와 함께 쳐들어 온다. 위기에 처한 사울이 사무엘이 약속한 기간인 이레 동안 기다려도 오지 않자 흩으려 지려는 백성들을 다시 모으기 위하여 자신이 직접 번제를 드린다. 사무엘은하나님은 이런 행동을 한 사울을 버리시고 자신의 마음에 합한 자를 왕으로 삼으셨다라고 사울에게 말한다.

(삼상13:14)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이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사울의 나라가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아 가고 있을때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을 사람이나 가축이나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여서 악의 근원을 끊으라고 하셨는데도 사울은 순종하지 않는다. 사울은 왜 모두 진멸하지 않았느냐는 사무엘에게 쓸만한 가축들은 남겨 둔 이유는 좋은 것으로 여호와께 제사지내려 하였기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이에 사무엘은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라고 말한다.
  
(삼상15:23)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둘째, 사울은 악한 영에 사로잡히게 된다
(삼상16: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삼상16:23)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 즉
(삼상18:10) 그 이틑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리매
(삼상19:9)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접하였으므로 다윗이 손으로 수금을 탈 때에

사울에게 여호와의 영이 떠나고 악한 영이 임하여 사울은 악한 영이 임한 세상에 속한 사람이 된다.
세상에 속한 영은 하나님과 하나님께 속한 자들을 미워한다.

셋째,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였다.
 (삼상18:7-8)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사울은 자신보다 더 환호하는 다윗을 보고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는 자로보고 다윗을 시시하게 되었다악한 영에 사로잡힌 세상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을 시기할 수 밖에 없다.

사울은 여호와의 제사장인 사무엘로부터 버림을 받아 제사장들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었는데 제사장들이 자신이 그토록 미워하는 다윗을 숨겨주고 먹여주고 무기도 내어 준 것을 알고는 제사장들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인 근본적인 이유는 악한 영이 지배하는 세상에 속해있는 사울이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을 미워해서 죽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선과 악의 싸움에서 악이 승리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승리는 오직 잠시뿐인 승리임을 성경은 거듭해서 말하고 있다

(6)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요 어둠의 세력과


B.   누가 제사장들을 죽였는가?
사울은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고 주변에 있는 신하들에게 명령을 하지만 어느 누구나 자신의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겠다고 선뜻 나서지 않았다. 그렇지만 도엑은 망설이지 않고 제사장들을 살륙한다.

에돔 사람 도엑은 누구를 의미하는가?
에돔은 에서의 자손이 거하는 땅이다. 에서는 죄가 주관하는 세상사람들을 의미한다.
에돔 자손 에독이 하나님의 사람 제사장들을 죽인 것은 곧 세상사람들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을 죽이도록 미워함을 의미한다.
세상사람들은 지금도 하나님께 속한 이들이 잘 되는 꼴을 보지를 못하며 조그마한 꼬뚜리가 있으면 물고 늘어지며 핍박을 한다


C.   남은 자 아비아달
에봇입은 여호와의 제사장들 85명이 학살당하고 여호와의 소망이 끊어진 듯 하지만, 하나님의 소망은 남은 자 아비아달을 통하여 이어진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인 아비아달은 학살에서 피하여 다윗에게로 도망한다그후 아비아달은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 다윗에게 전하여 주며 다윗을 도와 다윗 왕권의 중요한 초석이 된다. 모든 여호와의 제사장들이 죽임을 당하여서 하나님의 소망이 끊어진 듯하지만,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께 속한 남은 자를 통하여 계속해서 이어지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이 여기에 있다.
모든 것이 끊어진 것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긍휼은 계속 이어져 갔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때로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받으며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어 소망이 거의 꺼져 가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소망은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것이다.

성경 특히 구약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는 남은 자를 통하여 이어짐을 말하고 있다.
비록 우리가 겪는 고난이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소망은 그 가운데에서도 빛을 발하며 나를 통한 구원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음을 늘 기억하자.


D.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받는 성도들

이해 할 수 없는 고난을 받은 예로는 욥을 들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욥과 같이 불행한 이는 없을 것이다

여호와를 잘 섬기는 의인인 욥은 아무런 이유없이 모든 자녀들을 한 순간에 잃었고, 모든 재산과 가축들도 한 순간에 잃었고, 그의 건강 역시 잃었다. 욥은 세상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그와 친한 친구들도 욥을 멸시하며 비판하며 정죄한다. 아무리 욥이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해도 욥의 친구들과 세상사람들은 인정하려 하지 않고 욥이 고난을 받은 이유는 자신들은 모르는 숨켜져 있는 욥의 어떤 죄악됨을 인함이라고 거듭해서 욥을 반박하며 정죄하며 비판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러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각각의 창조물들이 자신들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행하는 수많은 현상들을 이해할 수 있느냐고 반문을 한다.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을 의인이지만 한계가 있는 욥은 이해할 수도 없었고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었다

욥이 받은 고난은 욥은 물론 우리들도 이해 할 수 없는 고난이다.

왜 여호와를 저토록 성심을 다해 섬기는 자인 욥에게 왜 그처럼 혹독한 고난이 찿아 왔는 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주님 또한 우리가 이해 할 수 없는 고난을 받으셨다.
(15:25)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주님께서 병든 자를 낫게 하며 귀신들린 자를 낫게 하며 중풍걸린 자를 낫게 하며 모든 연악한 것을 고치며 천국복음을 전할 때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의 기득권의 권리과 사회적 위상이 흔들린다고 하여 주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였다. 세상에 속한 자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없이 여호와이신 주님을 미워하여 죽인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이런 말씀으로 제자들을 위로하셨다.
(6:22)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며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4:9)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3:13)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제자들 역시 자신의 이름으로 인해 이해 할 수 없는 고난을 받게 될것을 주님은 말씀하셨던 것이다.
주님의 제자들인 성도인 우리 역시 주님을 믿기 때문에 이해 할 수 없는고난을 받을 것이다.
때로는 세상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나를 보고 손가락질 하며 멀리하고 미워하며 욕하며 나를 보고 악하다고 할 수도 있다. 세상사람들은 나를 환난가운데로 넘길 것이며 심지어는 죽일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세상의 기준에서 보는 축복과는 너무나 다르다.


초대교회성도들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받아 핍박을 받았다
주님의 모든 제자들은 순교를 하였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단지 주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사자들의 밥이 될 수 밖에 없었고, 불에 타서 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죽어 갔다. 오직 그들이 믿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굴에 숨어 살다가 발각되어 잡혔을 때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면 살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고 순교하였다.   
초대교회성도들은 현세에서는 불행한 죽음을 당하였지만, 그들은 영원을 바라보며 더 좋은 곳에서의 영원한 삶을 그리며 죽어 갔던 것이다.

세상에 속한 이들은 비참하게 순교당하는 자들을 보면서 자신들은 축복받는 자들이라고 생각들을 하였다. 비록 주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순교를 당한 자들을 세상에 속한 자들이 볼 때 그들은 불행하며 자신의 죄값으로 고난을 받았기 때문이라 생각들을 하였지만, 여호와의 눈에 축복받은 이들은 순교당하는 자들을 정죄하며 비판하며 죽게 한 자들이 아니라,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어리석게도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받으며 순교당한 자들인 것이다.
순교당한 자들은 영원토록 사랑과 공의와 자비의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의 처소에 같이 거하지만, 세상에 속한 자들은 영원토록 꺼지지 않는 뜨거운 불 가운데서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주님을 열심히 믿기만 하면 축복을 받아 환난이나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알고 있다.
어려움이나 환난을 받고 있는 성도들을 볼 때 욥의 친구들처럼 그에게 어떤 죄가 있어서 정죄받아 고난 가운데 있다고 생각들을 한다.

우리의 축복의 기준이 세상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축복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가?
과연 내가 생각하는 축복의 기준이 하나님께서도 허락하시는 축복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혹 나는 욥의 친구들처럼 세상의 축복의 기준으로 사람들이 받는 고통과 고난을 내가 습득한 세상의 경험으로 얻은 잣대로 사람의 축복과 불행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께 회개하고 사람을 함부러 비판하고 정죄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마음을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E.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주는 유익
주님께서는 이해 할 수 없는 고난을 받으셨다.
의인인 욥도 이해 할 수 없는 고난을 받았다
우리 역시 이유할 수 없는 고난을 받고 있고 앞으로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기에 세상은 하나님께 속한 성도인 우리들을 미워하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무엇일까?

1.     고난을 허락하신 여호와를 인정
세상에서 사는 성도가 여호와 안에 있다고 해서 늘 행복만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고난이 성도의 삶에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개입이 된다.
성도는 행복과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 여호아이심을 잘 알지만, 또한 고난도 같이 주시는 여호와이심을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고난도 허락하시기 때문이다.  
(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2.     여호와의 위로
여호와는고난받는 성도들을 긍휼히 여기시며 구원하시며 은총을 베푸신다.
( 49:13)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그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

3.     간구를 들으신다.
고난이 없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수 없다.
고난을 통하여 다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하나님께 간구하며 나아가게 한다.

사람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 있으면 전능자이신 여호와를 의뢰하게 된다.

( 25:16)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롭사오니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 34: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 22:24)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 얼굴을 저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부르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 5:15)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서 저희가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리라. 저희가 고난을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여 이르기를

4.     훈련시킨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인 믿음의 시련인 시험은 성도들을 단련시킨다.
군인들이 전쟁에 대비할 수 있도록 열심히 훈련을 한다. 훈련이 없는 군인은 오합지졸이 될 수 밖에 없다. 훈련은 군인을 단련시킨다. 훈련은 운동선수들을 단련시켜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게 한다.

(벧전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시험은 성도들의 믿음을 단련시키는 훈련이다.
시험이 없다면 성도들의 믿음은 조금만 물에 다아도 허물어지는 모래위에 싸놓은 누각과도 같아 조그마한 어려움에 맞서게 되면 가지고 있다고 믿은 믿음은 허물어지게 된다.
성도들의 삶에 찿아오는 시련을 통해 성도들은 자신의 믿음이 견고한 바위 위에 터를 세우고 견고하게 서 있을수 있도록 훈련을 받게 된다.

5.     인내하며 기뻐하라
성경은 야고보서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1:2)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이해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 있다면 기뻐해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은 인내를 만들어 준다. 인내는 성도들에게 필요하며 하나님의 약속하신 영원한 영혼을얻게 하기 때문이다.
(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21: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말씀을 정리하면

단지 다윗을 먹이고 따뜻하게 해서 보냈다는 이유로 여호와를 섬기던 제사장들 85명과 그들의 가족들은 처참하게 죽어갔다. 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가운데 왜 자신이 죽는지도 모르고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이 땅의 삶은 하늘에 속한 자들과 세상에 속한 자들과의 싸움이다.  
지금도 세상에 속한 이들은 하나님께 속한 성도들을 괴롭힌다. 세상에 속한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들며 하나님께 속한 자들을 핍박하며 온갖 어려움을 주며 주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심지어는 죽이기도 한다. 세상에 속한 이들은 하나님께 속한 이들이 조금만 흔들리고 잘못되었을때 이 때다 하며 손가락질하며 매도하며 악하다고 욕을 하며 마구 패댕이를 쳐대며 죽이기도 한다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서도 모든 것이 끊어진 것과 같은 가운데서도 하나님에 대한 소망은 끊어지지 않고 빛을 발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늘 주의 성도들 가운데 있어서 함께 한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주님에게 찿아 왔을 때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며, 욥에게 찿아 왔을 때 욥은 모든 것을 잃어 버렸고 세상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손가락질을 당하였다.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찿아 왔을 때 그들은 세상의 핍박을 피해 산으로 굴로 피신할 수 밖에 없었으며 혹 사로잡힌 자들은 짐승의 밥이 되거나 불에 타서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믿음의 시련인 고난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역시 찿아온다.
주님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 있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며 위로하셨다
(6:22)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며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주님을 믿으면 세상의 축복도 함께 어울려서 받는다고 이제는 착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주님의 축복이 임하면 이 땅의 삶 또한 풍요롭게 살며 많은 이들을 도우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님의 축복은 이 땅의 삶에서 나아가 영원한 삶의 축복을 의미한다. 우리의 눈을 떠서 지금 바로 앞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저 영원한 영원을 사모하며 주님의 축복을 간구하자.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은 우리에게 여러가지의 유익을 가져다 준다. 우선 고난이 없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수 없다. 여호와께서는 고난받는 성도들을 긍휼히 여기시며 구원하시며 은총을 베푸신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주관하시기에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기도 하시며 또한 고난에 처한 우리가 간구할 때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여호와께서는 행복과 기쁨과 평안을 주시기도 하지만, 또한 고난도 같이 주시는 여호와이시다.   
고난이 찿아 올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게 된다.
고난을 통하여 다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하나님께 간구하며 나아가게 한다.
고난을 통해서 나의 믿음을 훈련시키며 견고하게 해준다.
고난을 통해서 참고 기다리는 인내를 배운다. 인내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21: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여호와 하나님.

제사장들은 단지 여호와를 섬기었으며 피신하는 다윗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죽어 갔읍니다. 그들에게 닥친 고난을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읍니다.
세상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을
핍박하고 멸시하고 그들이 불행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성도들을 무척이나 괴롭힙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하나님께 속한 자들을 핍박하며 온갖 어려움을 주며
주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심지어는 죽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있읍니다.
모든 것이 끊어진 것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긍휼은 계속 이어져 갔읍니다.
하나님은 결코 믿는 성도들을 버리지 않으실 것을 믿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은 창세후로부터 있어 왔고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주님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통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읍니다.
욥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만나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세상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였고 멸시를 당하고
모든 것들을 비난받고 정죄받아야 했읍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찿아 왔을 때
짐승의 밥이 되어 순교를 당하면서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찬송하며 죽어 갔읍니다.

우리의 눈을 뜨게 하옵소서.
지금 바로 앞의 축복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저 영원한 영원을 사모하며 주님의 영원한 축복을 간구합니다.
저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고난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고난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고난이 없으면 여호와의 은혜를 깨달을 수 없읍니다.
고난을 통해서 여호와께 나아가서 은혜를 간구할 수 있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고난을 통하여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저의 믿음을 훈련시키며 견고하게 해주십니다.
고난을 통해서 참고 기다리는 인내를 배우며
인내를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주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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