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7:16-17) 그들이 다시는 1) 주리지 아니하며 목마르지 아니하고, 2)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3)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4)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본문의 말씀과 비슷한 말씀이 이사야 49장에도 기록되어 있다.
(사49:9-10)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헐벗은 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이며
두 말씀을 종합해보면 잡혀서 포로된 자나 빛을 잃어버려 흑암속에 있는 자나 주리거나 목마른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 있는데 바로 그 분은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시며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낮의 해나 뜨거운 기운으로부터 상하지 않도록 보호하시고 생명수로 인도하시며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다.
성경은 목자와 양의 관계에 대하여 많이 쓰여졌다.
고대 이스라엘은 유목사회이었다. 그래서 인간과 신과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양과 목자로 비유하며,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양으로 왕은 목자로서 표현을 한다. 그리고 종말론적 심판을 설명하기 위해 택하신 자들은 양으로서 버림 받은 자들은 염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주님은 목자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양이다.
양에게는 어떤 특성이 있기에 목자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지를 생각해보자.
“첫째, 양은 시력이 좋지 않아 멀리는 보지 못하고 바로 앞만 식별한다.”
양은 앞에 무엇이 있는지를 모른다. 절벽이 있는지, 강이 가로 막고 있는지 마치 짙은 안개속에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양은 시력은 약하지만 청력은 발달되어 있어서 자신을 부르는 주인인 목자의 음성을 잘 구별한다고 한다.
우리 역시 나의 앞의 일을 알 수 없다. 우리 또한 깊은 안개속에 있어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기도 한다. 목자가 그런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양들을 몰고 들로 산으로 좋은 꼴을 먹이기 위해 인도하듯이, 주님 역시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앞날 또한 어떻게 될 지를 알고 계시기 때문에 내가 옳은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 그리고 양인 우리는 목자인 주님의 음성을 잘 듣고 순종하며 따라 가야 한다.
“둘째, 양은 자신을 해치고자 하는 동물에 대하여 반항 한번 제대로 할 줄도 모른다.”
자신을 먹이로 먹고자 해치는 동물앞에서 잠잠히 자신을 내어 줄 뿐이다. 자신의 목줄을 내리 누리는 짐승앞에 그저 발을 한 두번 발버둥 칠 뿐 자신을 내어 준다. 그래서 양들은 목자가 있어야 한다. 목자는 자신의 돌보는 양들을 호시탐탐 노리는 늑대나 거친 짐승들로부터 밤에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지킨다.
사단은 나를 집어 삼키려 한다. 사단은 호시탐탐 나를 먹이로 먹으려고 한다.
그저 속수무책으로 밖에 당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나를 목자이신 주님은 악한 사단으로부터 지키신다. 사단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도록 주님은 효력적인 무기를 주셨는데 바로 주님의 이름을 사용할 권한을 주신 것이다.
“셋째, 양은 무척이나 이기적이다.”
양은 다른 양에게 양보하며 온순할 것 같지만 실은 자신만을 생각한다. 새끼양들이 배고 고파 자신의 어미가 아닌 다른 어미 양들에게 우유를 얻으려 다가가면 양들은 매정히 뿌리친다. 목자가 없으면 양은 각자 자기 먹이 찾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제멋대로 먹이를 찿아 가버린다.
우리 역시 이기적인 양같이 나만을 안다.
에베소서나 골로새서에 가정의 법칙에 대하여 나온다.
남편과 아내로서 해야 할 일, 자녀와 부모로서 해야 할일, 상관과 종으로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하여 말씀한다. 인간관계는 상호적인 관계이다.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서로가 이해하고 포용하는 관계를 성경은 말씀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양 같아서 각기 자신의 것만을 우선시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목자이신 주님은 어떻게 연약하고 어리석은 양들을 보호하시는지를 살펴보자.
1. 굶주림이 없음
(계7:16)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목자는 양들에게 매일 좋고 건강한 풀을 먹이려고 애쓴다.
(사40:11)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픔에 앉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인도하시리라”의 히브리어의 뜻에는 조심스럽게 보호하면서 데려감을 뜻한다.
목자이신 주님은 어린 양들을 품에 앉으시며 또한 젖먹이는 어미 양들이 어린 양들에게 젖을 잘 먹일 수 있도록 특별한 관심을 가지시고 인도하신다.
우리의 삶 역시 매일 매일 굶지 않고 좋은 풀을 먹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렇지만 삶이라는 것이 내가 열심히 한다해서 모든 어려움들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어려울 때마다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지금까지 보호하고 있었음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안다. 우리의 삶에는 절대주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분은 바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은 곤궁한 자에게 희망을 주신다.
(눅6: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주님은 실제로 궁핍하고 가난한 자의 친구이시며 축복을 주시기를 원한다.
어려웁지만 세상의 염려함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도록 하자.
주님은 가난한 자의 형편을 너무나 잘 아시며 천국의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목자이신 주님은 나를 먹이시고 좋은 곳으로 인도하신다.
내가 굶주릴 때에 먹이시고, 내가 목말라 갈증을 느낄때 시원한 생수로 마시게 하신다.
주님은 우리의 육신의 굶주림 뿐 아니라 우리의 영혼의 갈급함도 먹이신다. 주님은 손수 영혼의 양식이 되신다.
(요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주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육신의 굶주린 자들을 먹이셨고, 또한 생명의 떡이 되셔서 우리의 영혼에게도 필요한 양식으로 먹이신다. 주님은 우리의 영혼육의 곤핍함을 잘 아시고 먹이시는 좋은 목자이시다.
또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종말의 때가 가까이 오면 먹고 마시기 위해서는 음식들을 사야 하는 데 짐승의 표가 있는 자만이 먹고 마실수 있는 것을 살 수 있게 된다. 주님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자들은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다. 목자되신 주님은 돈이 있어도 먹을 것을 살 수 없어 굶어 죽어야 하는 환경에 처해 있는 믿음을 지키려는 자를 지키시고 보호하신다.
2.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않음
(계7:16)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우리가 잘 아는 시편23편을 보자.
(시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다윗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때 자신을 인도하시는 목자이신 주님에 대하여 쓴 찬양시이다.
평화로운 모습이지만 실은 양은 무척이나 어려움 상황을 체험하고 있다. 양은 사망의 위험에 처해 있으며 원수가 바로 목전에까지 와서 위협을 한다. 무척이나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목자가 양을 지키듯이 주께서 시편 저자를 지켜주신다.
세상은 부지불식간에 나를 해하려 하는 것들이 많다. 또한 사건 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그런 혼란 가운데서도 목자이신 주께서는 성도들을 지켜주신다. 비록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지라도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신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에게는 큰 소망이 있다.
주님의 재림전에 있을 일곱인과 일곱나팔과 일곱대접의 재앙의 심판에서 뜨거워진 태양빛에 의해 대부분의 것들이 타들어 갈 때에도 주님께서는 택한 자들을 지켜 주실 것이며, 또한 알곡과 가라지를 가르는 하나님의 심판에서도 영원토록 뜨거운 불못의 심판을 받지 않도록 은혜를 베푸신다.
3. 생명수샘
(계7.:17)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목자이신 주님은 자녀들을 생명수로 인도하신다.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은 자기가 주는 물은 야곱의 우물에서 나오는 물과 다르다고 하신다.
이 물은 육신의 갈증을 해소하는 물이 아니라 영혼의 갈급함을 채워주는 물이다.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물은 영원히 영혼의 갈증을 풀어줄 뿐 아니라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이다. 예수님의 주시는 생명의 물을 마시게 되면 그 물은 내 안에서 영원토록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
생명수의 근원은 하나님 보좌로부터 흘러 나온다.
(계21:6)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 물의 근원은 하나님 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이시다. 이 물을 마시기 위해서 사람으로부터 대가를 지불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는 주님과 교제하는 주님의 자녀에게 거저 주신다.
4. 눈물을 씻기심
(계7:17)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다. 고통은 눈물을 흐르게 한다.
사람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하며 눈물을 흘린다. 감격의 눈물을 흘릴 때도 있고, 후회할 때 혹은 잘못을 뉘우칠 때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보며 통곡하기도 하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용서함을 받은 가장 큰 감사의 표현은 눈물이다. 주님은 그런 눈물을 보시며 위로하신다.
(눅7:37-38)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죄 사함을 얻은 한 여인은 너무나 감사하여 가장 아끼는 향유를 아낌없이 깨고 그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닦으며 입을 맞추며 눈물을 흘렸다. 이 흘리는 눈물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다.
주님은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주님을 보며 기뻐하며 감격하여 흘리는 눈물을 돌아 보신다.
(눅7: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나의 삶의 모든 것이 눈물의 대상이다.
눈물은 사람의 마음을 표현한다.
그중에서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감격하여 흘리는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
언제 주님께 나의 마음을 드리는 눈물을 드린 적이 있는가?
마지막 때에 성도들은 처한 환경이 너무나 어려워서 눈물이 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목자이신 주님은 그런 위기에 처해 날마다 눈물을 흘리는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나의 눈물을 돌아 보시고 씻겨 주실 것이다.
말씀을 정리하면
목자이신 주님은 양인 우리가 굶주리고 목말라할 때 먹이시고 마시게 하신다. 또한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종말의 때에 믿음을 지키기 위해 먹을 것 마실 것을 살 수 없는 자녀들을 불쌍히 여기사 피할 곳을 마련하여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도록 인도하실 것이다. 그리고 혹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주님의 자녀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케 하는 생명의 떡이시며 생명수이신 주님을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목자이신 주님은 혼돈의 세상에서 악한 무리가 엄몰하여 나의 목숨을 위협할 때에도 지켜주시며 또한 심판의 때에 영원한 불못의 심판으로 뜨거운 기운으로 나를 사르지 못하도록 은혜를 베푸신다.
목자이신 주님은 생명수의 근원이시기에 나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생명수를 원하는대로 마시도록 하신다. 목자이신 주님은 나의 모든 눈물을 돌아보시고 씻겨 주신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주님께서는 목자가 되셔서 어리석고 나만을 아는 강팍한 양인 저를 돌보십니다.
늘 푸른 꼴을 먹게 하시며
생명의 강가에서 흐르는 생명수를 한껏 들이키고 하시며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도록 은혜를 베푸십니다.
늘 죄의 유혹에 어쩔수 없이 비틀거리고 넘어집니다.
순간 순간 원수는 바로 제 앞에서 저를 위협하며 사망은 저를 오라고 손짓을 합니다.
모든 것을 주님의 십자가에 내려 놓으라 하셨지만
내려 놓지를 못하고
제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의 일로 한탄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목자되신 주님
저는 어쩔수 없이 앞을 보지 못하며 저를 방어할 힘도 없는어리석은 양일 뿐입니다.
어리석고 앞을 보지 못해 혼돈의 안개에서 헤매는 저와 같은 양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그 가운데서 흘리는 저의 눈물을 돌아 보시며 불쌍하게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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